[스포츠] ‘0.005초’에 바뀐 운명…단거리 새 황제 라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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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올림픽 육상 남자 100m 우승자 노아 라일스는 천식, 난독증, ADHD, 우울증 등 성장 과정의 난관을 극복하고 세계에서 제일 빠른 사나이가 됐다. 5일 100m 결선 우승 직후 성조기를 펼쳐 들고 환호하는 라일스. [신화=연합뉴스]

5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스타드 드 프랑스.

이날 육상 종목의 마지막 경기인 남자 100m 결선을 앞두고 9만여 관중이 숨죽인 채 트랙을 지켜보고 있었다. 선수 한 명 한 명을 소개할 땐 경기장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8명의 선수는 총성과 함께 폭풍 같은 레이스를 펼쳤다. 7번 레인의 노아 라일스(27·미국)와 4번 레인의 키셰인 톰슨(23·자메이카)을 비롯한 4명의 주자가 거의 동시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선수도, 관중도 누가 이겼는지 알지 못했다. 경기장에 설치된 카메라는 라일스와 톰슨의 얼굴을 번갈아 비췄다. 톰슨은 승리를 자신했고, 라일스는 두 손을 머리에 얹고 초조하게 전광판을 지켜봤다. 잠시 뒤 성조기를 든 팬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라일스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가 되는 순간이었다. 라일스는 가슴에 달린 이름표를 내보이며 스타디움을 돌면서 환호했다.

라일스는 이날 파리올림픽 육상 남자 100m 결선에서 9초79의 기록으로 금메달을 따냈다. 은메달리스트 톰슨의 공식 기록도 9초79로 같았다. 하지만 1000분의 1초까지 판독한 결과, 라일스(9초784)가 톰슨(9초789)보다 0.005초 빨랐다. 동메달은 프레드 컬리(29·미국·9초81)가 차지했다.

7레인에서 출발한 라일스의 출발 반응 기록은 0.178초. 결선에 나선 8명 중 가장 늦었다. 3레인의 컬리가 0.108초로 제일 빨랐고, 30m 구간부터는 4레인의 톰슨이 선두로 치고 나갔다. 그러나 200m가 주 종목인 라일스는 뒷심이 강했다. 중반부터 치고 나가 톰슨을 바짝 따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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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발의 차로 톰슨(위에서 세 번째)을 제친 라일스(아래에서 세 번째). [AFP=연합뉴스]

결국 최종 승자는 라일스였다. 일본 애니메이션 마니아인 그는 드래곤볼에 나오는 ‘에너지파’ 동작으로 승리를 자축했다.

라일스는 대회 전부터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다. 지난해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에서 100m와 200m를 모두 석권했다. 지난 6월 미국대표 선발전에서는 9초83의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우며 1위에 올랐다. 지난달 20일 런던에서 열린 다이아몬드 리그 100m에서는 9초81로 기록을 앞당겼다. 올림픽 전까지 올 시즌 최고 기록(9초77)을 낸 톰슨도 유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지만, 파리에서 또다시 개인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 라일스가 생애 첫 올림픽 금메달을 따냈다.

미국은 이번 대회 전까지 남자 100m에 걸린 금메달 29개 중 16개를 따냈다. 하지만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저스틴 게이틀린 이후엔 우사인 볼트(2008·12·16년)에게 밀렸다.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라몽 마르셸 제이콥스(이탈리아)가 깜짝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라일스가 20년 만에 미국에 금메달을 안기며 자존심을 세웠다. 라일스는 “내가 그토록 원하던 순간이 찾아왔다. 이 순간을 위해 살아온 것 같다”고 했다.

라일스는 육상 선수 출신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케빈 라일스는 1993년 유니버시아드, 1995년 세계선수권 1600m 계주 금메달리스트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라일스는 소아천식, 난독증과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을 앓았다. 우울증도 그를 괴롭혔다. 그러나 이혼 후 그를 홀로 키운 어머니 케이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에 세계 최고의 스프린터로 성장했다.

라일스는 “우사인 볼트를 존경하며 그를 넘어서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볼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2년 런던 대회에서 3관왕(100m, 200m, 400m 계주)을 차지했다. 지난해 세계선수권 3관왕(100m, 200m, 400m 계주)에 오른 라일스는 파리올림픽에서는 1600m 계주까지 4관왕에 도전한다. 볼트를 넘어서겠다는 뜻이다.

아시아 선수 중에선 사니 브라운(일본)과 푸리폴 본슨(태국)이 준결선에 진출했지만, 결선에는 오르지 못했다. 브라운은 개인 최고 기록을 0.01초 앞당기며 9초96을 찍었으나 3조 4위로 탈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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