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아침이슬' 김민기도 기다리다 임종…건보가 외면한 가정호스피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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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현재 파티마의원 원장이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노원구의 한 치매환자의 가정을 방문해 진료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빨리 죽고 싶어."
L(93) 할머니는 이 말을 반복했다. 지난달 19일 오후 2시쯤 서울 노원구의 한 재개발 지역의 낡은 주택. 불도 안 켜고 누워있던 할머니는 이 말을 반복한다. 바퀴벌레, 곳곳에 흩어진 겨울옷·여름옷, 무너질 듯한 처마, 빗물 흔적이 완연한 천장…. 두어달 전만 해도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는데 그나마 나아졌다. 할머니와 개의 분변이 눈에 띄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독거노인 보살피는 왕진의사 

 서울 노원구 장현재 파티마의원 원장은 지난 5월 주민센터의 요청을 받고 처음 할머니를 진료했다. 중증 치매에다 혈압이 높았는데, 약 복용 후 다소 호전됐다. 장 원장은 장기요양 재가센터도 운영한다. 할머니는 요양보호사를 거부하며 심한 욕설을 쏟았고 문을 잠갔다. 대소변이 흩어져 있었다. 요양보호사는 백기를 들다가도 할머니의 딱한 모습에 맘을 돌렸다. 장 원장은 "의사야 의사. 알아보겠어요"라며 능숙하게 할머니를 일으켜서 청진기를 댔다. 할머니는 요양원 가기를 완강히 거부한다. 장 원장의 손길이 없다면 극단적인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장 원장은 "요새 본인도 원하고 가족이 원해 집에서 임종하려는 사람이 많다"며 "왕진 가보면 딱히 응급실에 갈 필요가 없어 보이면 '그냥 집에서 보내라'고 권고한다"고 말했다.

김민기 임종 계기로 살펴보니
재택의료·왕진이 부분적 도움
수가 낮아 호스피스 확산 안돼
"마지막 두달 임종 간병 신설"

 H(70) 할머니는 3년 전 난소암 진단을 받았다.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고 음식을 전혀 먹지 못했다. 남편이 주는 보리차만 마셨다. 경기도 파주시 송대훈 연세송내과 원장이 왕진 가서 통증을 관리했고, 영양제를 주사했다. 송 원장이 주 1회, 간호사가 3회 이상 방문했다. 임종이 가까워지면서 송 원장이 더 자주 갔다. 할머니는 한 달 후 눈을 감았다. 노부부는 호스피스 같은 걸 몰랐다. 어디에서도 알려주지 않았다. 대학병원은 "치료할 게 없으니 퇴원하라"고 했다. 송 원장은 "임종기에 의료진이 더 자주 갈 수밖에 없는데 건강보험에서 보상해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송 원장은 지난달 30일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주최 '존엄한 임종을 둘러싼 사회적 과제' 원탁회의에서 이런 문제점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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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훈 파주시 연세송내과 원장이 방문진료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72개 시군구만 재택의료센터  

 재택임종은 한국인의 꿈이다. 중환자실이나 6~7인실에서 숨을 거두길 원하지 않는다. 병원에 임종실도 없다가 이달에서야 300병상 이상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에 의무화됐다. 뭐니뭐니해도 집이 편하다. 나의 체취가 묻어있고, 부모님의 사진이 있고, 가족이 있다. 이런 꿈이 이뤄지려면 전문가의 도움이 절실하다. 의사·간호사·사회복지사·간병인 등이 그들이다.
 대표적인 게 가정호스피스이다. 지난달 21일 별세한 김민기 전 학전 대표도 이 서비스를 신청하고 기다리다 세상을 떴다. 이 기관이 39개밖에 없다. '가정호스피스 찾아 삼만리'라는 말이 나온다. 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말 발간한 '생애말기 지원을 위한 다양한 사회서비스의 현황 및 활성화 방안' 보고서에서 서울에 사는 말기 암환자의 40대 아들은 "가정호스피스 기관이 가까운 인천의 동생네 집으로 (아버지를) 모시고 왔다"고 말했다. 본인도 이직했단다.
 가정호스피스가 빈약한 이유는 수가가 너무 낮아서다. 의사 첫 방문이 13만 4880원(의원급), 교통비 1만 140원이다. 최진영 중앙호스피스센터장은 "지금 수가로는 전담간호사 한명 인건비를 충당하기도 힘들다"며 "병동형 호스피스를 운영하는 데가 가정형을 같이 하는경우가 많으며 의사나 간호사 구하기가 매우 힘들다"고 말한다.
 장기요양보험의 방문 요양·간호·목욕 등의 서비스, 방문진료(왕진) 제도, 둘이 결합한 장기요양 재택의료센터가 부분적으로 재택 임종 도우미 역할을 한다. 다만 아직은 이런 서비스가 좁고 얕고 따로 논다. 장기요양은 하루 3~4시간 요양보호사가 방문한다. 재택의료센터도 72개 시·군·구에만 있다(3월 기준). 임종 관리는 이들의 본업도 아니다.

"왕진비 환자 부담률 낮춰야" 

 보호자의 임종 돌봄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 장숙랑 중앙대 간호학과 교수는 보건의료연구원 회의에서 "가정형 생애말기 전문 1차의료기관을 신설하고, 생애말기에 최대 2개월 집에서 24시간 간병인을 지원하는 특별임종급여(월 250만원 총 2000억원 소요, 연 4만명)를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유신혜 서울대병원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 교수는 "임종 상황이 되면 온종일 잔다거나 숨이 불규칙해지는 등의 증세가 나타나고 이런 게 자연스러운 과정이라고 보호자가 알아야 하는데, 이런 걸 교육하는 데가 없다"며 "임종 증세를 잘 모르면 환자를 응급실로 데려간다"고 말한다. 보사연 보고서는 "가족이 의사와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응급실을 통해 주기적으로 입원·퇴원을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 교수는 "의료인이 24시간 전화을 받아주면서 보호자의 두려움과 궁금증을 해결해줘야 하는데, 지금은 가정호스피스 외에는 기댈 데가 없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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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준홍 기자

 송대훈 원장은 "독거노인의 재택임종이 가능하게 하려면 요양원·요양병원·지역사회 등이 유기적으로 돌아가야 하며 누군가 조율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현재 원장은 "방문 진료비 환자 부담률(30%)이 너무 높다"고 말한다. 지난해 사망자의 75.4%가 의료기관에서 숨졌다. 재택 사망은 15.5%에 불과하다. 2019년 이후 재택 사망이 조금씩 증가하다 지난해 다시 꺾였다. 보건의료연구원은 '좋은 죽음을 위한 10대 과제'를 선정해 곧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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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복지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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