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샹젤리제 스테이크, 우리집 고기만 못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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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올림픽 유도에서 남자 최중량급 은메달과 혼성 단체전 동메달을 목에 건 김민종(왼쪽)이 5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개선문 앞에서 아버지 김병준씨와 함께 기뻐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아빠, 제가 지금까지 먹은 ‘고깃값’ 한 거 맞죠?” (김민종)

“하고도 남지, 장하다. 우리 아들.” (김민종 아버지 김병준 씨)

파리올림픽에서 한국 유도의 역사를 새로 쓴 ‘헤라클레스’ 김민종(24·양평군청)과 그의 아버지 김병준(54)씨가 지난 4일 프랑스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에 우뚝 선 개선문에서 만났다. 개선문은 1806년 나폴레옹이 전쟁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건설한 50m 높이의 건축물이다.

김민종은 이곳 파리에서 한국 유도 역사에 남을 만한 승전보를 두 차례나 전했다. 지난 2일 유도 종목 개인전 100㎏ 이상급(최중량급)에서 한국 선수 최초로 은메달을 따냈고, 이튿날 혼성단체전에선 한국 유도 사상 첫 단체전 동메달을 이끌었다. 특히 개인전 결승 도중 무릎 부상을 입고도 이튿날 단체전에 진통제를 먹고 출전하는 투혼을 발휘했다. 그는 승부처마다 한판승을 따내며 유도 대표팀에 승리를 안겼다. 아버지 김병준씨는 가족과 함께 파리로 날아가 관중석에서 김민종을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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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종(1m84㎝·135㎏)은 아버지의 외모와 우람한 체격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덕분에 김씨 부자는 파리 시내 한복판에서도 쉽게 눈에 띄었다. 올림픽 개막 이후 경기장 밖에서 아들을 처음 만났다는 김병준씨는 “지금은 웃지만, 경기 땐 긴장해서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김)민종이가 메달을 따고 눈물을 흘릴 땐 ‘무릎이 얼마나 아플까’라는 생각에 나도 펑펑 울었다”고 털어놨다. 김민종은 “아버지께 ‘노란 것(금메달)’을 걸어드리고 싶었는데 아쉽다. 시상대에 섰을 때 부모님 생각에 울컥했다”고 말했다.

힘이 장사인 김민종에겐 ‘헤라클레스’ 말고도 별명이 하나 더 있다. 그는 유도계에서 ‘마장동 둘째 아들’로 유명하다. 서울 성동구 마장동에서 축산업에 종사하는 아버지의 자녀 넷(3남 1녀) 중 둘째다. 김병준씨는 “마장동 우시장 골목 곳곳에 민종이의 은메달 획득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렸다”며 싱글벙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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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장동 육가공 가게에서 도축된 돼지고기 운반을 돕고 있는 김민종. [중앙포토]

어렸을 때부터 체격이 크고 활기가 넘쳤던 김민종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동네 유도장을 찾았다.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는 전국 대회 우승을 싹쓸이했다. 김병준씨는 “민종이의 체격이나 기술은 타고난 게 아니다. 지독하게 노력한 결과물이다. 중학교 시절 민종이가 한여름 지옥훈련을 무척 힘겨워했다. 오죽하면 길 가다 죽은 개구리를 발견하고는 ‘저 개구리가 나보다 더 행복하겠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전했다.

김민종은 “고등학교 때 또래 최중량급 선수들보다 키가 작은 편이었다. 그러자 아버지는 ‘힘을 기르라’며 매일 가게에서 제일 좋은 고기를 가져오셨고, 어머니는 그 고기를 정성스럽게 구워주셨다. 부모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꾹 참고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김민종은 이날 샹젤리제 거리의 한 레스토랑을 찾아 스테이크를 주문했다. 고기 두 점을 썰어 한입에 털어 넣은 그는 “파리에서 먹는 고기 맛도 좋지만, 아버지가 가져오시고 어머니가 구워주신 고기 맛엔 못 미친다”고 했다. 그러자 김병준씨는 “올림픽 뒤풀이로 ‘고기 파티’를 열어서 배 터질 때까지 먹어보자”고 말했다.

김씨 부자는 취미도 같다. 쉴 땐 낚시를 하거나 요리를 한다. 맛집 방문도 즐긴다. 김민종은 아버지와 함께 장을 보고 파스타·김치찌개 등을 뚝딱 만들어 낸다. 김씨 부자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평양냉면이다.

김민종이 메달을 딴 이후 방송 출연 요청도 쏟아지고 있다. 김민종은 “유도계에선 입담이 좋은 편이라서 예능 프로에 나가도 자신 있다. 이 기회에 유도도 알리고 내가 가진 매력을 마음껏 뽐내보겠다”고 했다.

김민종은 당분간 휴식을 취한 뒤 4년 뒤 LA 올림픽을 바라보면서 다시 몸만들기에 들어갈 계획이다. 김민종은 “은메달과 동메달을 땄으니 이제 남은 건 하나뿐”이라면서 “개선문에서 나폴레옹 기운을 받아서 4년 뒤 올림픽에선 금메달을 목에 걸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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