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꿈꾸던 나라' 한국 왔다…필리핀 가사관리사 &#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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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할 필리핀 노동자들이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공항사진기자단

“예전부터 한국에서 일하고 싶었는데, 가장 원했던 케어기버(caregiver·가사관리사) 기회가 열려서 오게 됐어요. 꿈이 이루어진 것 같아 정말 기뻐요. 하지만 한국에 유색인종에 대한 인종차별이 있다고 들어서 걱정도 돼요.”

6일 새벽 필리핀을 떠나 한국에 도착한 가사관리사 아이다(28·가명)는 들뜬 기색으로 중앙일보에 소감을 말했다. 하지만 익명을 전제로 인터뷰에 응한 필리핀 가사관리사 3인은 인종차별 문제, 비싼 생활비 등의 우려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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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가사도우미 9월 국내 첫 도입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서울시, 고용노동부]

고용노동부와 서울시의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선정된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은 필리핀의 상징색인 파란색 재킷을 맞춰 입고 이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이들은 4주간 총 160시간의 특화교육을 받은 뒤 9월부터 본격적으로 각 가정에서 일한다. 시범사업 기간은 내년 2월 말까지다. 이날 인천공항에서 취재진과 만난 가사관리사 글로리 마시나그(32)는 “한국 문화를 많이 알고 싶어서 왔다. 합격했을 때 놀랐고, 주변에서 부러워했다”고 말했다.

수년 전부터 해외 가사관리사로 일하기 위한 공부했던 아이다도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꿈을 다소 늦춰야 했지만, 이후 한국에서 일할 기회가 다시 생겨 기뻤다고 했다. 그는 “필리핀에서 대학 시절에 한국 학생을 가르친 경험이 있고, 어릴 때부터 조카들을 돌보면서 돌봄 경험도 충분히 있다”며 “아직 한국어 회화 능력이 제한적이지만,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한국 문화를 배우는 것도 매우 열의가 있다. 단순히 돈을 버는 것을 넘어서서 한국 문화에 녹아들고 싶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에서 외국인 근로자로 일해본 경험이 있는 소피아(29·가명)는 한국을 ‘꿈꾸던 나라 중 하나’라고 표현했다. 소피아는 “해외에서 가사관리사 수요가 많다는 사실을 알고 8개월에 걸쳐 과정을 수료했고, 한국에서 일할 기회가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기회를 잡았다”며 “한국어 센터에서 열심히 언어를 공부했고, 지금도 독학하고 있다”고 말했다. 에리카(31·가명)도 “한국인들은 친절하고 예의가 바르다고 들었다”며 “이번 기회에 많은 경험과 지식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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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할 필리핀 노동자들이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 공항사진기자단

하지만 이들은 한국에서 당할 수 있는 인종차별에 대한 걱정도 함께 토로했다. 아이다는 “한국에서 한 할아버지한테 ‘유색인종은 버스 타지 말라’는 소리를 들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며 “최근 홍콩에서 피부색으로 노골적인 차별을 당한 경험도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소피아도 “초반엔 말이 잘 안 통하다 보니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있다”며 “고용주들이 잘 대우해줬으면 싶다”고 밝혔다.

보장된 최소 급여 수준이 한국의 높은 물가 수준을 고려하면 충분하지 않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한국은 외국인 근로자도 최저임금(올해 기준 시간당 9860원)을 적용하기 때문에 홍콩 등과 비교해 시급 기준으로 적은 편은 아니지만, 숙소비를 비롯한 생활비는 가사관리사들이 직접 부담해야 한다.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서울 소재 숙소 2곳에 나눠서 생활하는데, 이들이 내야 하는 숙소비는 월 40만원 전후 수준이다. 여기에 교통비와 식비·생활비 등 물가를 감안하면 한 달 생활에 드는 비용은 100만원을 넘을 수 있다.

문제는 계약서상 보장된 최소 근무 시간이 주 30시간이라는 점이다. 다르게 말하면 이들에게 보장된 최소 월수입이 주휴수당 포함 150만원대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번 시범사업 신청자들은 3가지 선택지(하루 4·6·8시간) 중 ‘4시간’을 가장 많이 신청했다. 만일 충분한 근무 시간 배정이 이뤄지지 못한다면 실제 가져갈 수 있는 금액은 얼마 되지 않을 수 있다고 가사관리사들은 우려했다.

에리카는 “다른 생활비 부담이 없다면 충분한 급여겠지만, 숙소비부터 식비까지 직접 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남는 돈은 많지 않을 것 같아 걱정된다”며 “계약 기간도 6개월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국에 오기 위한) 준비에 쏟은 시간과 비용만큼 벌 수 있을까 싶다“고 말했다. 아이다도 “한국에서 생활비를 감당하기 위해선 하루 8시간 이상은 일해야 할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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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민 기자

일각에선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릴 수 있다는 문제제기도 나온다. 계약서상 업무 범위가 아동 돌봄뿐만 아니라 동거가족을 위한 부수적이며 가벼운 가사 업무까지 수행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필리핀 가사서비스 제공 기관 안내문에 따르면 어른 옷을 함께 세탁하거나 단순 물청소 위주의 욕실 청소 등이 가능하다. 하지만 쓰레기 배출, 어르신 돌봄, 어른 음식 조리, 손걸레질 등은 또 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이같이 범위가 모호하다 보니 현장에서 충돌이 빚어질 우려가 있다.

인터뷰에 응한 가사관리사들은 “계약서 내용은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다”고 답했다. 아이다는 “(업무 내용을 보면) ‘내니’(nanny·보모)라고 불리는 게 더 적절해 보일 수 있다”며 “다만 한국으로 정말 가고 싶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구체적인 범위는) 협의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소피아도 “계약서에 가사일도 포함돼 있다는 사실이 명시돼 있다. 전 괜찮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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