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민간사찰" "적법수사" 공수 바뀐 여야…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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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개입 여론조작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이 정치인, 언론인 통신조회는 "적법한 수사 절차였다"고 4일 밝혔다. 연합뉴스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통신조회 관행이 3년 만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가 지난 1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포함한 정치인과 언론인을 상대로 광범위하게 통신이용자정보를 조회(옛 통신자료 조회)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검찰은 “통신 가입자 이름 등 제한적인 내용을 조회했다”고 해명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무차별 민간인 사찰”이라고 맞섰다. 한민수 민주당 대변인은 6일 “당내 전수조사 결과 이재명 전 대표 등 현역 국회의원 19명을 포함해 보좌진·당직자 등 총 139명을 대상으로 149건의 통신 이용자 정보 조회가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며 “통신 사찰을 주도한 강백신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조속히 처리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반면 서범수 국민의힘 사무총장은 이날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적법한 수사 절차를 민주당이 불법 사찰로 둔갑시키고 있다”며 검찰과 정부를 옹호했다.

그런데 지난 2021년 비슷한 통신조회 논란이 있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이른바 고발사주 의혹, 이성윤 전 서울고검장의 공소장 유출 의혹 등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당시 야당인 국민의힘 의원들과 기자, 가족‧지인 등 다수를 상대로 통신가입자 내역을 조회한 것이다. 당시 공수처의 통신이용자정보 조회(전화번호 수)는 2021년 상반기 135개에서 관련 수사에 착수한 같은 해 하반기 6330개로 급증하면서 사찰 논란이 일었다.

여야의 입장은 지금과는 정반대였다. 당시 국민의힘 대선후보였던 윤석열 대통령은 공수처를 겨냥해 “미친 사람들 아니냐”고 강하게 반발했다. 반면에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전 대표는 “법령에 의한 행위를 사찰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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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의원들이 지난 2021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공수처 통신조회 규탄 피켓을 들고 있다. 뉴스1

여야 입장만 바뀐다…반복되는 ‘사찰 논란’

여야의 공수만 바뀔 뿐 수사기관의 통신조회를 둔 ‘사찰 논란’은 매번 반복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헌법학자들은 우선 ▶통신자료 조회(전기통신사업법)와 ▶통신사실확인자료 조회(통신비밀보호법)는 개념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통신자료 조회는 통신이용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주소·전화번호·ID 등 가입자 정보를 알아보는 것이고, 통신사실확인자료는 누구와 언제 통화했는지 착‧발신 내역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 통신자료보다 민감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어 관할법원의 허가가 필요하다. 이를 일반적으로 ‘통신영장’이라고 표현한다. 당사자에게 사후 통지 규정도 두고 있다.

이번 논란에서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조회했다. 윤 대통령 명예훼손 의혹의 주요 피의자인 김만배씨, 신학림씨 등에 대해서는 통신사실확인자료 조회를 통해 착‧발신 내역을 확보했다. 여기서 나온 통화 내역의 상대방을 누군지 밝히기 위해 추가로 통신자료 조회(가입자 조회)를 이어갔다는 것이다. 피의자의 휴대폰에 상대방의 번호가 저장된 경우 가입자 이름을 확인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지만, 검찰은 “실명이 아닌 별명 등 다른 이름으로 저장돼 있을 수 있어 가입자명 조회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일부 언론단체에서는 이렇게 조회된 가입자 정보가 3000여명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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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자료와 통신사실 확인자료. 그래픽=김영옥 기자 xxxxxxxxxxxxxxxxxxxx

“정당한 수사”…“광범위한 개인정보 침해”

사찰 논란은 여기서 불거졌다.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 등 6개 언론현업단체는 5일 “검찰이 윤석열 한 사람의 심기 경호를 위해 아무런 범죄 혐의도 없는 언론인과 노조 관계자, 시민단체 관계자 등 국민 수천 명의 기본권을 유린했다”고 지적했다. 박찬대 민주당 대표 직무대행도 같은 날 당 최고위에서 “대놓고 불법적 정치사찰을 자행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고 비판했다.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를 둘러싼 전문가의 의견은 엇갈린다. 김상겸 동국대 로스쿨 교수는 “전기통신법에 의거해 법 규정 안에서 통신조회를 했다면 문제 삼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창현 한국외대 로스쿨 교수는 “이름과 주소는 수사를 하려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정보”라며 “이를 확보하기 위해 일일이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면 수사는 지연되고,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과정에 해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보이스피싱 조직 같은 대규모 통신 이용 범죄를 신속하게 수사하기 위해 특정 지역, 특정 시간대 광범위한 통신조회가 수사기법상 필요할 때가 있다.

다만 제3자의 견제 없이 가입자 정보 조회가 가능한 현 제도가 수사기관의 무신경한 통신조회 남발을 불러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했다면 이렇게 대규모로 개인정보 조회가 이뤄지진 않았을 것이다. 수사의 편의성이 국민의 인권보다 우선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작금의 정보 조회는 지나가는 사람을 세워놓고 당신 이름이 뭐냐고 묻는 것과 같다. 조회 대상자들에겐 별건 수사를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검찰·경찰·국정원·공수처 등 수사기관이 2020~2022년 3년간 통신자료 조회(가입자 조회)는 1486만 8192건, 통신사실 확인자료 조회는 140만 4973건이었다. 수도권의 한 검사장급 검사는 “납치·강도·마약·보이스피싱 등 신속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수사조차 영장 받는 데 시간을 쓰면 수사에 큰 지장이 간다”며 “매번 같은 사안을 두고 정치권에서 다른 입장을 내는데 수사기관에선 답답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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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왼쪽)와 추미애 의원이 각자 페이스북에 검찰의 통신조회 통지 문자를 올린 모습. 사진 페이스북 캡처

“정쟁만 반복, 제도 개선 안 한 결과”

이참에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통신자료 조회를 입법적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참여연대는 5일 논평을 내고 “법원 통제 없는 무분별한 통신정보 조회는 명백한 헌법 위반”이라며 국회에 법 개정을 촉구했다. 다만 지금까지 여야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찰’로 정쟁화할 뿐이어서 실질적 제도 개선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이창현 교수는 “권력을 잡은 쪽은 문제가 없다고 하고, 권력을 좇는 쪽은 사찰이라는 주장만 반복해왔다. 제도적인 미비나 법의 사각지대를 채우지 못하고 지나온 결과다”고 말했다.

일부 국회의원들은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 시에도 법원의 허가를 받는 방향으로 법 개정에 나설 것이라는 입장이다. 박균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6일 중앙일보에 “인권침해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 발의를 예정 중이다”며 “가입자정보 조회 때도 영장을 받게 하는 등 요건을 만들어 검찰의 권한 남용을 막는 법안 발의를 검토 중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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