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130년전 동학혁명까지 독립유공자 인정?…野윤준병 추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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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윤준병(전북 정읍시·고창군) 의원을 비롯해 같은 당 김준혁·박수현·박희승·이재관 의원 등이 지난 6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는 일제 식민사관 역사학자 논리를 60년 넘게 답습하고 있다"며 "국가보훈부는 항일독립운동의 왜곡된 기점을 제대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이 자리엔 동학농민혁명 유족회와 제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 동학농민혁명계승사업회 등도 참석했다. 사진 윤준병 의원실

윤준병 '항일독립운동 기점 정립법' 대표 발의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족에게 수당을 지급하고 있는 가운데 동학혁명 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 인정하기 위한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130년 전 동학농민혁명이 독립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 불분명하다는 의견도 있기 때문이다.

동학농민혁명 발상지인 전북 정읍시·고창군을 지역구로 둔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은 지난달 29일 항일독립운동 시작 시점을 1894년 7월 23일 일본군 경복궁 점령 사건으로 규정하는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개정안(일명 '항일독립운동 기점 정립법')을 대표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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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김관영 전북특별자치도지사, 김영록 전남지사 등이 지난 5월 11일 전북 정읍시 동학농민혁명기념공원에서 열린 130주년 동학농민혁명 기념식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국가보훈부 직무 유기" 

윤 의원 등은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전인 1894년 일제는 경복궁을 기습 점령하고 고종을 감금하는 등 국권을 침탈했으며, 이어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켰다"며 "그러나 일제의 경복궁 점령에 항거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난 갑오의병과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항일독립운동 역사에서 원천적으로 배제하면서 정작 을미의병은 항일독립운동으로 인정해 독립유공자로 서훈하는 모순되고 편향된 공적 심사가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서 2차 동학농민혁명을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농민 중심의 혁명'이라고 정의한 점을 들어 "2차 동학동민혁명 참여자를 독립유공자 선정 대상에서 제외하는 건 국가보훈부의 직무 유기"라고 지적했다.

현행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선 일제 국권 침탈 전후로부터 1945년 8월 14일까지 일제에 항거한 사람을 독립유공자 대상으로 정의한다. 그러나 '국권 침탈 전후'를 언제로 볼지를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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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이 지난 3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국외 독립운동사적지인 옛 주영대한제국공사관을 찾아 이곳에서 1905년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순국한 이한응 열사를 추모하며 묵념하고 있다. 뉴스1

보훈부 "포퓰리즘 법안" 

그간 국가보훈부는 공적 심사 내규에 국권 침탈 시기를 1895년 을미사변으로 정해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서훈 대상에서 배제했다. 그러나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는 지난해 9월 19일 민주당 의원 5명만 참석한 가운데 1894년 9월 일본군을 상대로 무장 투쟁을 한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 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 서훈하는 내용이 담긴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이에 보훈부는 의견문을 내고 "현재 학계 다수에선 동학 2차 봉기 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그런데도 여야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입법한 건 독립유공자 서훈 체계를 무력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독립·국가유공자는 엄격한 보훈 심사를 거쳐 유공자로 인정하는 반면, 개정안은 대상자를 심사 절차 없이 무조건 유공자로 인정하는 것으로 보훈 관련 법안을 무시하고 형평성도 간과한 과도한 특혜를 주는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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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지난 2월 16일 전북 전주시 전주동학농민혁명 녹두관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정읍시, 유족 수당 지급 

해당 개정안이 21대 국회에서 무산되자 윤 의원은 일부 내용을 손질해 이번에 다시 발의했다. 개정안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가 심의·의결해 결정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중 독립유공 공적이 뚜렷한 사람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서훈 또는 표창을 건의할 수 있도록 하고 문체부 장관은 해당 내용을 국가보훈부 장관에게 전달하는 내용이 담겼다.

문체부 산하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 심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6월 기준 제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로 등록된 사람은 3270명이다. 이 중 유족이 있는 참여자는 481명이다.

이와 별도로 고창군·정읍시는 동학농민혁명 기념·선양 사업과 유적지 정비·복원, 학술 대회 등에 매년 각각 20억원 안팎 예산을 쏟아붓고 있다. 특히 정읍시는 2020년부터 정읍에 주소를 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유족(증손까지)에게 매월 10만원씩 수당을 준다. 이달 현재 80명이 받고 있다. 당시 정읍시는 "유족 대부분이 형편이 어려워 복지 차원에서 수당 제도를 도입했다"고 했다. 하지만 '시 재정 상태가 나쁜데 세금을 왜 쓰냐' '임진왜란 참여자 후손도 수당을 주지 그러냐' 등 항의가 빗발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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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훈부는 지난해 12월 25일 '세계 속의 독립운동’을 주제로 조국 대한민국의 독립을 세계에 호소하며 헌신한 독립운동가 38명을 2024년도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발표했다. 사진 첫 번째 줄 왼쪽부터 이승만, 김원식, 김창환, 데이지 호킹, 마가렛 샌더먼 데이비스, 이사벨라 멘지스, 채찬, 루이 마랭, 프레드릭 에이 맥켄지, 플로이드 윌리엄 톰킨스, 김갑수, 이의경, 황진남, 곽낙원, 이은숙, 임수명, 허은, 박영준, 신순호, 안춘생, 조순옥, 박창운, 임천택, 김영백, 최세윤, 어거스틴 스위니, 토마스 다니엘 라이언, 패트릭 도슨. 뉴스1

"동학혁명은 독립운동 아냐" 반발도 

역사학계에선 반대 의견이 적지 않다. 이주천 원광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항일운동의 기본 개념은 주권 회복 운동이고, 독립유공자 예우법은 주권을 되찾기 위해 투쟁한 사람에게 보상해 주자는 취지"라며 "동학농민혁명은 잃어버린 대한민국을 되찾겠다는 게 아니고 조선 임금이 있는 봉건 체제를 지키겠다는 것이어서 독립운동이라고 볼 수 없고, 입법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런 논리면 임진왜란 때 왜군과 싸운 의병까지 국가가 보상해 줘야 하느냐"라며 "민주당이 개정안을 발의한 것은 그 지역 표를 모으기 위한 정략적 노림수로 역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양심을 파는 짓 못 한다"고 했다.

여당 내부에서도 "동학농민혁명은 항일독립운동으로 시작된 게 아니라 고부 군수 조병갑의 폭정에 의해 발생한 일" "역사 문제는 철저히 역사적 관점에서 깊은 논의와 사회적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등 부정적 여론이 높다.

이와 관련, 보훈부는 "윤 의원 법률안에 대해 해당 부서(공훈심사과)에서 검토 중이어서 공식 의견 발표 계획은 미정"이라고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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