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래디컬 좌파”vs“기괴한 MAGA” 싸움…美 대선서 ‘중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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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5일 미국 대선에서 맞붙는 카멀라 해리스(왼쪽) 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AP=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팀 월즈 미국 미네소타 주지사의 민주당 부통령 후보 지명으로 미 대선 대진표가 마침내 완성됐다. 민주당 러닝메이트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대통령 후보)과 월즈 주지사(부통령 후보) 대(對) 공화당 러닝메이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대통령 후보)과 JD 밴스(부통령 후보) 상원의원 간 대결이다. 유색인종 여성 대 백인 남성 대선 후보 등 여러 대비점 중에서도 강성 진보와 강성 보수의 대결 구도가 어느 때보다 확연해졌다.

통상 미 대선에서 부통령 후보는 대통령 후보의 약점을 상쇄하고 중도ㆍ무당층 표심을 겨냥한 ‘보완재’ 성격의 인사가 선택됐다. 이런 전통적인 선거 문법이 이번 대선에서는 민주ㆍ공화 양당 모두 무너지고 있다.

해리스ㆍ트럼프 ‘지지층 결집’ 최우선시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공화당 부통령 후보군 중 더그 버검 노스다코타 주지사 등 상대적으로 온건한 중도 성향 인사 대신 친트럼프 성향인 밴스 의원을 낙점했다. 트럼프 추종 세력 ‘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앞으로 책임질 ‘젊은 MAGA 기수’로 평가받는 밴스는 낙태·이민 이슈에서 초강경 입장을 견지해왔다. 트럼프를 보완하는 효과 대신 트럼프의 색채를 더한 셈이다.

해리스 부통령은 대선 레이스 파트너로 당내 중도 성향의 조시 셔피로 펜실베이니아 주지사, 마크 켈리 상원의원(애리조나) 대신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을 받은 팀 월즈 주지사를 택했다. 월즈는 주지사 재임 기간 보편적 무상급식, 유급휴가 확대, 성소수자 보호, 총기 구입자 이력 심사 강화 등 좌파 성향 정책을 다수 추진했다. 해리스 역시 중도 확장보다 진보 색채 강화에 주력한 모양새다.

해리스의 러닝메이트 인선 과정에서 유대인 셔피로의 친이스라엘 행보가 당 안팎 진보주의자들의 비토(거부)에 휘말리기도 했다. 셔피로는 해리스가 반드시 이겨야 하는 펜실베이니아에서 득표력이 있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진보 블럭의 거센 반대로 좌초됐다는 얘기가 나온다. 해리스와 트럼프가 정치적 이념 스펙트럼에서 극명한 대척점에 선 것만큼이나 그들이 각각 선택한 월즈와 밴스도 좌우 반대편에서 첨예하게 맞선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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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카멀라 해리스(왼쪽) 부통령과 부통령 후보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가 6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지지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양측 러닝메이트 정치적 스펙트럼 ‘극과 극’

양측 대선 캠프는 레이스 초반부터 색깔론을 꺼내 들어 원색적인 비난전에 나섰다. 해리스 부통령을 “래디컬(급진) 좌파” “마르크스주의 지방검사”로 규정하며 공격했던 트럼프 캠프는 친노동자ㆍ친서민 노선을 펴 온 월즈 주지사를 향해선 “웨스트 코스트 워너비”(West Coast Wannabeㆍ서부 따라쟁이)라 부르며 파상 공세를 폈다. 해리스 부통령이 샌프란시스코 법무장관 시절 범죄자에 관대한 정책 등으로 ‘샌프란시스코 리버럴’로 불렸던 것에 빗대어 “월즈가 캘리포니아의 위험한 진보주의를 확산하는 데 집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해리스 대선 캠프는 트럼프와 밴스를 ‘강성 MAGA’로 싸잡아 부르며 각을 세우고 있다. 월즈 주지사는 트럼프와 밴스, 나아가 MAGA를 두루 비판하는 유행어로 뜬 “그들은 기괴하다(weird)”는 말을 처음 제조한 이력이 화제가 되며 부통령 후보군으로 급부상했다. 한 방송 인터뷰에서 “자녀 없는 캣 레이디”(childless cat ladies)라는 멸칭을 쓴 밴스 발언을 겨냥해 “그들은 기괴하다”고 한 것이 반(反)트럼프 정서를 대변하는 유행어가 됐다.

민주·공화당의 대통령·부통령 후보가 중도 성향 없이 한쪽은 열성 좌파, 다른 쪽은 강성 우파로 짜여진 상황은 양당 모두 중도·무당파 등 외연 확대보다 팬덤 지지층을 최대한 결집시키는 전략이 더 유리하다는 계산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미 현지 정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정치 양극화가 낳은 비극적인 현실”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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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 도널드 트럼프(앞줄 왼쪽) 전 대통령과 부통령 후보 J D 밴스(앞줄 오른쪽) 상원의원이 지난달 15일(현지시간) 위스콘신주 밀워키에서 열린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당 대의원ㆍ당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중도ㆍ온건 성향 유권자 무시…비극적”

6일 중앙일보와 서면 인터뷰한 토마스 슈워츠 밴더빌트대 석좌교수(역사학)는 “이번 대선은 어느 때보다 강한 진보와 강한 보수의 전장이 됐다”며 “양당이 지지층 결집에 총력을 기울이는 사이 중도 성향의 온건한 유권자들이 사실상 무시당하고 있다. 비극적인 일”이라고 진단했다.

슈워츠 교수는 “월즈 주지사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한 해리스의 선택이 성공하기 위해선 월즈를 ‘극좌파 민주당’이 아닌 ‘현실주의적인 정치인’으로 정의해야 한다”며 “하지만 주지사로 월즈가 보여준 행보는 매우 진보적이어서 중도파 이미지 부각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로버트 슈멀 노터데임대 교수(정치 커뮤니케이션)도 이번 대선에서 중도가 뒷전에 밀리는 상황에 우려를 표했다. 그는 “정치적 양극화는 사람들을 왼쪽과 오른쪽 끝으로 끌어당기고 있다”며 “중도는 중요하지만 점점 사라지고 있다”고 짚었다.

투표일(11월 5일)까지 약 3개월 남은 대선 레이스가 어느 때보다 첨예한 진영 싸움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 이미 대선 후보가 유세 도중 총격을 당하는 초유의 유혈폭력 사태를 겪은 시점에서다. 슈멀 교수는 “정치 양극화가 극심하고 진영 간 대립이 깊을 때 폭력 발생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며 “트럼프 피격 사태를 감안하면 미국은 이미 끓어오르고 있다. 선거일이 다가올수록 정치 환경은 더욱 적대적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월즈 주지사를 두고 ‘급진 좌파’라는 공화당 측 비판은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공격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 10번의 미 대선에서 9번 당선인을 맞춰 ‘족집게’로 불리는 앨런 리히트만 아메리칸대 석좌교수(역사학)는 중앙일보에 “미네소타주에서 공화당세가 강한 남부에서 연방 하원의원 6선에 성공한 월즈는 의원 재임 때 비교적 온건파로 통했다”며 “그에 대한 색깔론 공격은 쉽게 먹혀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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