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열대야·올림픽·주식폭락…올여름, 최악 '불면의 계절'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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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와 2024 파리올림픽 야간 시청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는 사람들을 AI 생성형 이미지로 그려낸 모습. 일러스트 셔터스톡

경기 용인에 사는 직장인 문모(53)씨는 최근 몇 주 동안 새벽 3~4시가 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열대야가 계속되면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는 날도 많아졌다. 지난 3일엔 광교의 한 수면 클리닉 의원을 찾아 수면장애 검사까지 받았다. 문씨는 “보통 에어컨을 1~2시간 켜 놓으면 냉기가 몇 시간 동안 이어져 편히 잠들 수 있었는데 최근엔 타이머가 끝나면 더워 바로 깬다”며 “퇴근 뒤 헬스장을 찾아 운동을 해봐도 소용이 없고, 에어컨을 밤새 내내 켤 수도 없고 괴롭다”고 말했다.

올여름은 역대 최장기 열대야를 기록하면서 최악의 불면 계절이 됐다. 여기에 더해 2024 프랑스 파리 올림픽과 해외 주식시장 폭락도 많은 스포츠팬과 주식투자자를 잠 못 이루게 만들었다.

7일 기상청은 지난달 밤 최저기온이 25도 이상인 열대야 일수가 8.8일로 역대 가장 길었다고 밝혔다. 평년(2.8일)과 비교하면 3배가량 잦은 셈이다. 서울을 기준으로 지난달 22일 이후 지난 6일까지 16일 연속 열대야 현상이 계속됐다. 한 대형병원에서 일하는 간호사 박한나(34)씨는 “병원에서 에어컨 온도를 계속 낮추다 보니 전력 과부하로 전기가 나가는 일도 벌어졌다”고 말했다.

지난달 26일 시작된 파리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들이 예상보다 더 선전하면서 ‘7시간 시차’를 극복하고 경기를 보다가 수면장애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겪는 사례도 많아졌다. 직장인 강모(40)씨는 “부인과 자다가 함성에 잠에서 깼는데 남자 양궁 단체전 중이었다”며 “다시 잠이 안 와 그냥 경기를 봤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4학년인 박모(10)군도 “스마트폰으로 부모님 몰래 배드민턴 경기를 새벽 내내 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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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야와 올림픽, 미국 증권시장 약세로 밤잠을 설치는 사람을 AI 생성형 이미지로 그려낸 모습. 일러스트 셔터스톡

이른바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덮친 지난 5일부턴 미국 주식을 하는 ‘서학 개미’들의 밤도 길어졌다. 서울 목동에 사는 박모(31)씨는 “주가가 내려갔을 때 ‘줍줍(주워 담기)’하는 전략을 펴느라 요 며칠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며 “낮에 잠이 와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박씨처럼 밤잠을 설쳐가며 미국 주식을 하는 이들 사이에선 ‘불면증 매매’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문씨도 “지난 5일에 보유하고 있던 주식 가격이 30% 이상 빠져 연일 눈을 못 붙이고 있다”고 말했다.

잠이 들 타이밍을 놓친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유튜브 쇼츠 등을 보며 시간을 보내기 일쑤다. 카카오톡 등엔 불면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모이는 오픈 채팅방까지 속속 생겼다. ‘새벽에 잠 안 오는 분들’이란 이름의 대화방엔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야식이나 야간에 할 수 있는 취미 생활 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불면증 타파’란 방에선 올림픽 경기 일정을 공유하며 “어차피 잠 못 들 바엔 경기를 보며 즐겁게 시간을 보내자”는 사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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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전문가들은 여름철 불면이 계속되면 장기 수면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윤호경 고려대 안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단기적인 수면 장애는 건강한 사람의 경우 주말에 잠을 보충하면 충분히 회복할 수 있지만, 연령대가 높거나 평소 스트레스나 불안도가 높은 사람은 수면 건강이 악화할 수 있다”며 “잠이 오지 않는다고 계속 TV나 스마트폰을 보는 건 상태를 더 안 좋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깨진 리듬을 잡는다고 수면제를 복용하는 건 약에 의존하는 길이 될 수 있어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운동이나 식단 등 수면 리듬을 되찾는 방법을 시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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