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현장에서] "버스 어디에서 타?"…교통 약자 외면한 대전 0시 축제

본문

지난 7일 오후 4시 대전시 중구 대흥동(중앙로) 한 약국에 80대 중반의 여성이 들어왔다. 이 여성은 “나 OO동 가는 데 버스 어디서 타? 정류장에 가봤는데 불(안내판)이 다 꺼져 있어”라며 하소연했다.

17230837423315.jpg

9일 개막하는 '2024 대전 0시 축제'를 앞두고 지난 7일 대전 중앙로가 전면 통제됐다. 신진호 기자

할머니가 약국에 들어온 사연을 이렇다. 사나흘에 한 번씩 중앙로에 있는 병원에 다니던 할머니는 평소처럼 집 앞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기다렸다. 하지만 버스가 중앙로 대신 먼 길을 우회한다는 말에 다른 버스를 타고 가다 중간에 내린 다음 걸어서 병원에 갔다. 시내버스를 타면 30분도 걸리지 않는 데 이날은 1시간20분이나 걸렸다고 한다.

대전역~옛 충남도청 1㎞ 구간 전면 통제

9일 개막하는 ‘2024 대전 0시 축제’를 앞두고 대전시가 행사구간인 중앙로(대전역~옛 충남도청) 1㎞ 구간을 전면 통제했다. 통제 기간은 18일 오전까지 11일이다. 이 기간 승용차는 물론 시내버스도 다닐 수 없다. 중앙로를 통과하는 시내버스 29개 노선은 모두 우암-보문로, 대흥로를 우회하게 된다.

17230837424795.jpg

대전 중앙로의 한 병원 입구에 휴진을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중앙로에 있는 병원 가운데 일부는 0시 축제 기간 중앙로가 전면 통제되자 아예 문을 닫기로 했다. 신진호 기자

이에 교통 약자인 노인과 장애인 등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중앙로에 있는 병원을 이용하는 환자는 고통스러워한다. 이 구간에 있는 병원은 지난 7일부터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이들 병원 환자는 주로 70대 이상 고령자라고 한다. 약국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7일 오후에 찾은 한 약국은 오후 들어 3시간 동안 처방전을 한 건도 받지 못했다. 같은 시간 병원을 찾은 환자가 한 명도 없었다는 얘기다.

고령 환자 발 묶여…병원·약국 개점휴업

더 큰 문제는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다. 대부분의 환자는 평소 이용하는 병원을 고집한다. 일부 병원 관계자는 “환자 가운데는 30년 넘게 다니시는 분이 많다. 멀리 충북 옥천과 충남 금산에서도 온다”고 했다. 우회 구간부터 중앙로까지는 700~900m 정도다. 성인 기준으로 걸어서 10분 정도 걸린다.

도로가 통제되면서 병원과 약국에 의약품을 공급하는 제약회사와 택배차도 출입이 불가능하다.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주차한 뒤 손수레에 싣거나 들고 날라야 한다. 결국 택배기사들은 “너무 멀고 더워서 못 간다”며 배달을 거부했다. 일부 병원과 약국은 주문을 아예 포기했다.

17230837426181.jpg

9일 개막하는 '2024 대전 0시 축제'를 앞두고 지난 7일 대전 중앙로가 전면 통제됐다. 신진호 기자

지난해 비슷한 문제를 겪었던 병원과 약국은 대전시와 중구에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돈도 많이 버는데 이번 기회에 휴가나 가시라”라는 대전시 고위 공직자의 말이었다. 중앙로에 있는 한 병원 원장은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대전시 "돈도 많이 버는데 휴가 가라" 병원에 통보 

이 원장은 “진료를 보고 약을 처방한 뒤 3~4일 뒤에 경과를 보고 부작용 등을 확인해야 한다”며 “이 곳(중앙로)에 있는 병원 가운데는 환자를 진료하느라 30년간 휴가를 한 번도 가지 못한 의사도 있다”고 말했다.

대전 중구는 노인과 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시내버스 우회구간부터 중앙로까지 접근을 돕기 위해 카트와 승합차 운행을 대전시에 건의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한다.

17230837427675.jpg

지난 5일 이장우 대전시장이 9일 개막하는 '2024 대전 0시 축제'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대전시]

대전시는 0시 축제 기간 시민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지하철을 연장·증편 운행하고 행사장 주변에 주차장도 확보한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축제가 끝나는 17일까지 순환버스를 배치, 우회구간 버스 정류장부터 중앙로까지 운행할 계획이다. 배차 간격은 30분으로 요금도 별도로 내야 한다.

시내버스, 노인·장애인 이용하는 교통수단

대전시는 영국의 에든버러축제와 같은 세계적인 축제를 만들겠다며 지난해 0시 축제를 시작했다. 올해는 관람객 200만명, 경제효과 30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하지만 시민이 불편을 겪는다면 의미가 퇴색할 수밖에 없다. “시민 여러분의 양해를 바란다”는 이장우 대전시장의 당부보다 교통 약자를 위한 세심한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32,630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