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의협 들어간 전공의 "정부와 대화는 해야, 그래야 정확한 선택"

본문

17231484204522.jpg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의협) 회관에서 만난 임진수(32) 의협 기획이사. 남수현 기자

"이제는 전공의 단체(대한전공의협의회)가 정부와 대화를 하고, 그 상황을 전공의들에게 공유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임진수(32) 대한의사협회(의협) 기획이사는 지난 5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일반 전공의들은 (의정 갈등)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지 않느냐"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임 이사는 강동성심병원 외과에서 수련 받다 지난 2월 사직한 전공의인 동시에, 선배 의사들이 주축인 의협 집행부에서 6월부터 임원으로 일하고 있다. 양측 모두에 발을 디디고 있는, 전공의 집단에선 '특이한' 존재다. 일종의 중간자 역할로 말을 아껴오던 그가 이례적으로 목소리를 낸 것이다.

전공의 대부분이 내년도 의대 증원에 반발하며 집단사직한 지 6개월째에 접어들었지만, 사태는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 이날 의협 회관에서 만난 임 이사는 "'지피지기'하는 차원에서라도 전공의들이 정부와 대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수차례 밝혔다. 동료 전공의들을 고려해 표현에 신중을 기하긴 했지만, 이른바 '탕핑(躺平·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중국 신조어)' 모드를 벗어나야 한다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임 이사는 최근 3개월 새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전공의 단체 대신 의협에 합류한 그를 두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의협을 향한 불신을 거두지 못하는 전공의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엔 2020년 의정 갈등 당시 막판 합의 과정에서 배제됐다는 기억이 깔려있다.

그 연장선에서 의협이 주도해서 꾸린 범 의료계 협의체인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도 동력을 잃었다. 전공의·의대생 단체가 참여를 거부해 한 달여 만에 활동을 중단했다. 올특위 간사를 맡았던 임 이사는 "멤버 구성부터 활동 방향성까지 모든 걸 전공의·의대생과 논의할 수 있다고 했지만,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불참 입장을 고수한 건 굉장히 아쉽다"면서 "이제 의협이 뒤로 빠졌으니 대전협이 정부와 단독 협의체를 구성하는 등 어떤 식으로든 소통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사직 전공의로는 이례적으로 의협에 합류한 이유는.
"나도 처음엔 의협을 비판하던 입장이었다. 사직 전공의들에 대한 지원이 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지 답답했다. 의협이 전공의 몰래 어떤 일을 꾸미는 게 아닌지 의구심도 컸다. 그래도 밖에서 소리만 치기보다는 안에 들어와서 제대로 견제하고 싶었다."

-직접 내부에서 일해보니 생각이 바뀌었나.
"임현택 회장을 비롯한 의협 사람들이 적어도 뒤통수 칠 사람들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밖에서 보면 의협이 대단히 크고 번듯한 조직이라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일을 하는 데 있어서 검토해야 할 실무적인 문제들이 너무 많더라."

-대전협을 비롯한 대다수 전공의는 침묵 중인데.
"이젠 대전협이 정부와 대화를 하고 정확한 상황을 다른 전공의들에게 공유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전공의 7대 요구' 중 증원 백지화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수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논리를 수긍하고 합의하라는 게 절대 아니다. 다만 정부가 내놓는 대책들에 뭐가 누락돼 있는지, 정부는 대체 왜 그런 방안을 해결책이라고 들고 나왔는지, 전공의들이 들어볼 필요는 있다는 얘기다. 사실 대부분의 전공의는 사태가 정확히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 채로 혼란을 겪고 있다. 우리 카운터파트(정부)의 생각을 듣고 상황이 공유돼야 사직한 전공의들도 올바른 선택을 할 텐데, 정보가 차단돼 있어 아쉽다."

17231484206782.jpg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의협) 회관에서 만난 임진수(32) 의협 기획이사. 남수현 기자

다만 임 이사는 "정부와 빨리 합의를 봐야 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 역시 "근본적 개선이 없다면 수련병원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전공의들이 사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뭔가.
"의료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에) 반영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일례로, 외과 전공의로 일하며 가장 충격받았던 건 최선을 다해 환자를 살려놔도 병원 측으로부터 '이런 식으로 진료하면 손해난다'는 말을 자주 들은 점이다. 최선의 치료가 제한되는 구조인데, 이런 걸 개선하자고 하면 '밥그릇' 얘기라고 치부돼버린다. 정부는 우리가 짚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라, 미봉책만 내놓는 느낌이다."

-정부가 전공의 7대 요구안 대부분을 추진 중이라는 것에도 동의하기 어렵나.
"기본적으로 신뢰가 부족한 문제가 너무 크다. 정부가 의료계와 약속을 뒤집어버린 선례가 많다. 이번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에도 가장 중요한 재원 마련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 (정책이 실현될 거라) 믿기 어렵다."

-정부가 전공의 요구를 수용할 의지가 없는데, 왜 협상에 나서야 하냐는 시각도 있는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말처럼 7대 요구가 우리 생각대로 관철되려면 많은 논의와 협상 과정을 거쳐야 하고, 정책적인 디테일이 구축돼야 한다. 7대 요구안이든, 그 이상의 무언가든, 협상장에 전공의들이 나가야 그 결과를 받아들 수 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32,803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