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독립투사 흔적 찾는데 인생 걸었다" GIC 한국 대표 출신 국제금융 큰손,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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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센터(SFC)ㆍ강남파이낸스센터(GFC)를 사들였던 국제 금융 전문가가 잊혀진 독립운동가의 흔적을 찾는 데 인생을 걸고 나섰다.
주인공은 머큐리 프라이빗에쿼티(PE)의 김창희(55) 대표. 투자은행 업계에서는 유명 인물이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세계은행(WB) 산하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에서 국내 기업의 구조조정 등을 담당했다. 그는 이후 글로벌 국부펀드인 싱가포르투자청(GIC)의 한국 대표 등을 지냈다. 당시 그는 서울 광화문의 서울파이낸스센터(SFC)와 강남파이낸스센터(GFC) 인수 등을 주도했다. GIC가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큰 손’으로 군림하게 된 기틀을 닦은 셈이다.

싱가포르 투자청 한국 대표 지낸 김창희 머큐리PE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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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프라이빗에쿼티(PE)의 김창희(55) 대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세계은행(WB) 산하 국제부흥개발은행(IBRD)에서 국내 기업의 구조조정 등을 담당했던 인물이다. 그는 이후 글로벌 국부펀드인 싱가포르투자청(GIC)의 한국 대표 등을 지냈다. 당시 서울 광화문의 서울파이낸스센터(SFC)와 강남파이낸스센터(GFC) 인수 등을 주도했다. 그는 최근 잊혀진 독립운동가인 이규준 선생에 대한 책을 냈다.

그런 그가 주목하는 독립운동가는 이규준 선생이다. 이규준 선생은 신흥무관학교 설립을 주도한 이석영 선생의 장남이다. 이규준의 숙부가 대한민국의 초대 부통령인 이시영이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규준 선생은 30대 초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때까지 독립을 위해 생을 바쳤다. 15세의 나이로 아버지 이석영 선생과 함께 서간도로 망명한 뒤 항일투쟁을 했다. 비밀 결사인 다물단을 이끈 것도 이규준 선생이다. 이후 일제 검경의 집요한 추적을 받았다. 독립운동 중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는 2008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지만, 최근에서야 국립서울현충원에 위패가 봉안됐다.

'자손 끊겼다' 오해에 자손들이 직접 나서야 하는 상황 놓여 

남부럽지 않은 커리어를 쌓아오던 김 대표가 이규준 선생에 주목하는 건 그의 가족사와 관계가 있다. 김 대표는 이규준의 둘째 딸 이숙온의 손자이자, 독립운동가 이석영의 고손자다.
지난 6일 만난 김 대표는 “수년 전 이석영ㆍ이규준 부자의 후손이 절손(絶孫ㆍ대를 이을 자손이 끊어짐)되었다는 잘못된 사실이 기정사실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자손들에게는 날카로운 못이 돼 박혔다”며 “어머니와 가족들은 자신들이 독립운동가 이규준의 후손임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고 과거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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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가 만든 이규준 선생의 수감 자료. 좌우 양손의 지문이 찍혀있다. 자료 말미에는 신장 등도 상세히 기재돼 있다고 한다. 김창희 대표 제공.

‘이규준 흔적 찾기’는 그때부터 일생일대의 과업이 됐다. 직장생활과 병행해야 했던 만큼 어려움은 더 컸다. 주요 활동 무대가 중국이었던 만큼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었다. 그는 “A4 용지를 기준으로 작은 방 한 가득 이상의 문서를 다 확인한 것같다”며 “1900년대 초반의 총독부 경찰기록 등은 일본인 조차 해석이 어려워 그 뜻을 풀어줄 전문가를 별도로 찾아야 했다”고 했다. 최근 수년간 가족간 대화는 대부분 이규준 선생과 관련한 것이 전부였다고 했다. 독립운동가들의 특성상 이 선생이 여러 다른 이름(이명·異名)을 사용했다는 점도 어려움을 배가시켰다. 김 대표는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이 살아남기 위해 썼던 이명이 광복을 맞은 조국에서는 그 분들의 이름을 가리는 장막이 되어 버렸다”고 답답해 했다.

이들 가족이 이규준의 진짜 후손임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자료는 대만에서 나왔다. 어렵사리 연락이 닿은 대만의 친지가 전해준 호적등본에는 ‘부(父) 이규준, 모(母) 한씨의 3녀(三女)’라는 글자가 또렷이 기입돼 있었다. 이석영-이규준-이온숙ㆍ숙온ㆍ우숙으로 이어지는 직계가족의 존재가 공문서를 통해 확인된 것이다.

노력은 결실로 이어졌다. 2022년 2월 국가보훈부는 ”독립운동가 이석영 선생, 사후 88년 만에 직계 후손 확인“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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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희 머큐리PE 대표가 최근 낸『이규준 평전』의 표지. 부제는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 삶을 살았던 독립운동가’라 달았다. 조선 시대 최고 엘리트 가문의 후손으로 태어났지만, 일찍이 부친인 이석영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에 투신,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이규준 선생의 이야기를 담았다. 김 대표는 이규준의 둘째 딸 이숙온의 손자다.

김 대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최근 『이규준 평전』이란 책을 냈다. 부제는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 삶을 살았던 독립운동가’라 달았다. 잊혀져 가는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고 했다. 책을 쓰고 자료를 다시 수집ㆍ검토하는 데에만 2년이 넘게 걸렸다. 그는 지난 3월 열린 이석영 선생 90주기 추모식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남긴 말로 당부를 대신했다.

“후대가 기억해야 불운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습니다. 할아버지를 비롯한 수많은 애국지사들 덕에 오늘날이 왔습니다. 그들의 희생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한 가족의 역사가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의 한 페이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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