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집콕 아니면 해외로…휴가철 무색한 ‘내수 가뭄’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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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더 말라버린 내수

5년 차 직장인 김모(32)씨는 입사 후 처음으로 ‘집콕’ 휴가를 보냈다. 여름 휴가 때면 짧게라도 국내·외 여행을 다녀왔는데 올해는 휴가를 2주 앞두고 코로나19에 걸려서다. 친구들과 가기로 한 강릉 여행을 취소했다는 김씨는 “어차피 폭염에 나가기도 힘들 것 같아 집에서 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오는 12일 베트남으로 일주일간 휴가를 떠나는 이모(30)씨는 “예전엔 여름철 동남아 여행은 생각도 안 했는데 이제는 한국도 40도를 넘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어 한국보다 가성비가 좋은 베트남을 선택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여름과 비교하면 해외여행 수요가 약 40% 정도 증가했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에 기록적인 폭염으로 여행·관광업계가 휴가철 특수를 기대하기 어려워지면서 내수 부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관광공사 빅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지역별 외지인 방문자 수는 총 2억4157만명으로 지난해 7월(2억4847만명)보다 약 700만명 줄었다. 전체 방문자 중 관광객을 따로 분류하지 않은 숫자이긴 하지만 사실상 내국인의 국내 관광이 1년 전보다 줄어든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연택 한양대학교 관광학부 명예교수는 “최근 국내 소도시를 여행하는 ‘로컬 투어리즘’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었는데 코로나19 재발과 폭염 등이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라며 “이럴 경우 여행을 가지 않거나 대도시·근거리 호캉스 여행 등을 선호하게 돼 성수기에 나타나는 지방경제 활성화에 큰 도움을 못 줄 것”이라고 말했다.

휴가철 특수가 해외로 넘어갈 경우 내수 부진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6월 여행수지는 9억 달러(약 1조2000억원) 적자로 나타났다.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 아니고 공휴일도 전월에 비해 적었음에도 5월(-8억6000만 달러)보다 적자 폭을 키웠다.

11일 통계청에 따르면 2분기 소매판매액지수는 지난해 같은 분기보다 2.9% 감소했다.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은 2009년 1분기(4.5% 감소)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이다. 소매판매는 지난 2022년 2분기 0.2% 감소한 이후 9개 분기 연속 감소 행진이다. 1995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 가장 긴 감소 흐름이다.

내수 상황을 보여주는 다른 지표인 서비스업생산지수도 소비자와 밀접한 분야를 중심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2분기 전체 서비스업생산지수는 전년 동기보다 1.6% 증가했지만, 도매 및 소매업 생산은 2.1% 줄었고, 숙박 및 음식점업 생산도 1.8% 감소했다. 두 업종 모두 5개 분기 연속 감소세다.

내수 부진 장기화에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낮추는 글로벌 투자은행(IB)과 기관이 속속 나오고 있다. 소비는 움츠러들고 빚은 불어나 민생의 어려움이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관측에서다. 8곳 IB의 평균 한국 성장률 전망치(지난달 말 기준)는 2.5%로 전월 대비 0.2%포인트 하락했다. UBS는 기존 3%에서 2.3%로 하향했고, 골드만삭스는 2.5%에서 2.3%로 내렸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내수 회복을 어렵게 하는 최대 요인으로 ‘고금리 기조’를 지목했다. KDI는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할 경우 가계 소비 여력과 기업 투자 여력이 제약되면서 내수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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