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여성·이민자 이중차별 뚫고 지휘자 꿈 이룬 지우아니, “4% 가능성 쟁취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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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베르티멘토'(7일 개봉)에서 주연 배우 울라야 아마라(왼쪽)와 실존 모델 자히아 지우아니 모습이다. 사진 찬란

출신 배경도, 성별‧인종도 상관없이 누구나 클래식을 즐길 수 있다. 열정과 용기만 있다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파리올림픽‧패럴림픽 개막 사전행사로 센생드니 대성당을 무대로 다문화 음악공연을 펼친 심포니 오케스트라 ‘디베르티멘토’의 모토다.
디베르티멘토는 1995년 파리 북동부 공업지역 센생드니에서 만들어졌다. 당시 교향곡 중심의 관현악단 창단을 이끈 건 알제리계 이민자 가정의 17세 소녀. 지금껏 디베르티멘토 오케스트라와 함께 전세계 빈민, 장애인, 재소자 등 문화 소외계층을 위해 1000회 이상 공연해온 프랑스 지휘자 자히아 지우아니(46)의 시작점이었다.
전세계 6% 비율의 여성 지휘자가 4%에 불과할 만큼 보수적인 프랑스 클래식 음악계에서 바늘구멍보다 좁은 꿈의 문턱을 넘은 그는 클래식을 통한 평등한 교육과 꺾이지 않는 희망의 상징이 돼왔다.

영화 ‘디베르티멘토’ 실존모델 #아랍계 프랑스 지휘자 지우아니 #17세에 직접 오케스트라 창단 #2024 파리올림픽‧패럴림픽 공연

첼리스트 쌍둥이 자매와 매년 청년 2만명에 음악 교육

가난한 가정 형편 탓에 어릴 적 여러 악기, 지휘를 독학으로 익힌 그는 10대 때 루마니아 마에스트로 지휘자 세르주 첼리비다케의 눈에 띄어 제자로 수련했다. 지금은 그 자신이 디베르티멘토 아카데미를 통해 매년 2만명 넘는 청년에게 음악을 전파하고 있다. 첼리스트인 쌍둥이 여동생 페투마와 함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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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베르티멘토'(7일 개봉)의 실존 인물인 알제리계 프랑스 지휘자 자히아 지우아니를 중앙일보가 e메일 인터뷰로 만났다. 사진 찬란, Patrick_Fouque

지난 7일 개봉한 영화 ‘디베르티멘토’(감독 마리-카스티유 망시옹-샤르)는 그가 부유층 음악학교에 실력으로 편입한 뒤 여성과 이민자의 이중 차별의 벽을 뚫고 오케스트라를 세우기까지의 여정을 담았다.
“음악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사람은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하는 지우아니를 지난달 말 e메일로 인터뷰했다. 파리올림픽 공연 소감을 묻자 “올해 신설 종목 브레이킹 댄스를 접목한 클래식 음악을 선보였다”면서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다양성과 역량을 알릴 수 있어 기뻤다”고 답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클래식 음악은 어떻게 입문했나.  

“영화 첫 장면이 실제 있었던 일이다. 어릴 적, 클래식 애호가였던 아버지가 베토벤 ‘전원교향곡’을 들려줬고 여동생과 함께 이 곡을 영화관‧TV에서 같이 감상하곤 했다. ‘전원교향곡’을 들을 때마다 섬세한 멜로디에 깊이 감동받는다.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어 이런 평온함과 아름다움을 항상 느끼며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휘자를 꿈꾸게 된 계기는.   

“비올라를 연주하면서 오케스트라의 세계에 눈 떴다. 지휘는 다양한 악기와 음악가를 한 방향으로 이끌면서 조화를 이룬다는 점에 사로잡혔다.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오랫동안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특히 권위를 가진 지휘자는 지금도 여성이 갖기 어려운 자리다. 그래서 나만의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첼리비다케에게 배우기 전에 독학을 통해 내가 되고 싶은 지휘자의 이미지도 구축할 수 있었다. 다양한 세계를 만나는 호기심 많은 지휘자의 모습 말이다.”

女이민자라서…지휘봉, 바게트 빵으로 바꿔치기 모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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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베르티멘토'(7일 개봉)는 1995년 파리, 이민자 가정 출신의 17살 ‘자히아 지우아니’가 지휘자의 꿈을 위해 자신만의 오케스트라 ‘디베르티멘토’를 결성하면서 세상과 음악으로 화합하는 여정을 그렸다. 사진 찬란

-클래식은 엘리트 음악이란 인식이 강하다. 영화에서 부유한 학생들이 당신의 지휘봉을 바게트 빵으로 바꿔 놓는 장면이 나오던데.   

“다들 내가 클래식 음악, 지휘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디베르티멘토는 클래식 음악이 다양하고 강렬하며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클래식 음악은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여성 지휘자는 남성 지휘자를 흉내 낼 뿐'이라는 고정관념에 어떻게 반박하고 싶나.  

“나는 절대 모방하지 않고,내 방식대로 독창적인 예술 방향을 가진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왔다. 음악이 없는 곳에 음악을 전하고 젊은 음악가들을 키웠다. 내 모습 그대로 내가 꿈꿔온 21세기형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당신의 음악 인생에는 3명의 스승이자 동반자가 있는 것 같다. 아버지와 첼리비다케, 그리고 쌍둥이 페투마.  

“아버지와 첼리비다케가 엄격함을 가르쳐줬다. 페투마를 비롯해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충성심과 탁월함을 배웠다. 성공을 이루려면 주변에 아이디어, 걱정, 의심, 야망까지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첼리비다케가 “단 한 음도 음악이 안 되고 있다”고 당신을 꾸짖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첼리비다케는 항상 ‘같은 음표를 두 번 이상 연주하지 말라’고 했다. 연주 방향, 열정, 생동감이 보이지 않을 때 질책한 말이었다. 무대에 모든 걸 쏟아야 한다. 작품의 역사도 이해해야 한다. 왜 연주하는지, 어떻게 연주할지 음악의 서사를 헤아려야 한다.”

-영화 제작진에게 사전에 부탁한 게 있다면.  

“교외 지역에 대한 선입견, 가난만 부각시키지 말아 달라고 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정과 인내를 갖고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걸 영화 속 음악과 함께 말하고 싶었다. 더 많은 여성 지휘자를 세상에 보여주고 젊은 여성들이 자신도 지휘자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야 한다. 교외 지역, 시골에도 음악 교육 기회를 넓혀야 한다.”

"언젠가 임윤찬과도 협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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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베르티멘토'(7일 개봉)에서 배우 울라야 아마라(왼쪽)와 극중 연주 지도를 직접 맡은 실존 모델 자히아 지우아니 모습이다. 사진 찬란

-20대 때 디베르티멘토의 첫 대형 콘서트를 개최했다고 들었다. 

“기회를 직접 만들었다. 우리를 알리려고 많은 곳에 연락한 끝에 대형 무대에 초청되기 시작했다. 손수 트럭으로 의자‧악기대를 운반해 설치했다. 덕분에 콘서트 준비의 전 과정을 잘 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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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베르티멘토'(7일 개봉)에서 가난한 알제리계 지휘자 지망생 자히아 지우아니에게 지휘의 정수를 가르쳐준 루마니아 마에스트로 지휘자 세르주 첼리비다케의 영화 속 모습(왼쪽)과 실존 인물 모습이다. 사진 찬란

-1000번에 가까운 공연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는.  

“2010년 파리 음악박물관에서 열린 첫 대형 콘서트와 2011년 알제리에서 알제리 음악가들과 함께한 콘서트, 얼마 전 생드니 대성당에서 디베르티멘토 아카데미 청년들과 함께한 콘서트다. 생드니 대성당은 프랑스 왕들이 묻힌 곳인데 다양한 문화 배경의 젊은이들이 이 상징적인 장소에서 멋진 공연을 만든 게 자랑스러웠다.”

-한국 공연 계획은 없나.   

“한국에 간 적은 없지만, 디베르티멘토 오케스트라에서 프랑스의 재능 있는 한국 음악가들과 함께한 적이 있다. 뛰어난 피아니스트 임윤찬과도 언젠가 함께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

-꿈을 향해 정진하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자신의 꿈을 믿어야 한다. 노력과 인내, 열정이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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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디베르티멘토'(7일 개봉)는 올해 파리올림픽 개막식 사전쇼에서 오케스트라 지휘를 맡은 지휘자 지우아니의 실화를 담았다. 사진 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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