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정주영 '상상 못할 일' 터졌다…손자 정의선에 닥친 숙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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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3위 너머’ 바라보는 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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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소에서 후퇴는 없습니다.” 지난 5월 10일 경기 용인 현대차 마북환경기술연구소에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탄소 배출 없는 수소에너지 연구에서 현대차그룹은 세계에서 가장 앞선 기업으로 꼽힌다. 그만큼 먼저 뚫어야 할 기술적·사업적 난제도 많다. 토요타·BMW의 성공 공식을 빠르게 좇던 시절과는 다른 경쟁을 해야 한단 얘기다. 세계 3위(차량 판매 기준) 그 이상을 추구하는 지금, ‘정의선 연구’가 10회에 걸쳐 소개한 정 회장 앞에 놓인 숙제를 다시 짚어본다.

“밑 빠진 독 물 붓기로 보여도 사명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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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정 회장은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 현장에서 수소전기차 개발과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후대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답했다. 수소전기차는 수소와 산소의 화학반응으로 만든 전기로 모터를 구동하는 자동차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 탄소 중립을 위해 수소 에너지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그의 확신을 재확인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현대차의 수소차 넥쏘는 2018년 출시 첫해 국내외에서 954대가 팔렸다. 2022년 1만525대까지 판매량이 늘었지만, 지난해엔 판매량이 절반 이하(4552대)로 줄었다. 올해 1~4월까지는 해외에서 단 9대 팔렸다. 이 때문에 현대차 내부에선 ‘수소차 넥쏘 일병 구하기’에 한창이다. 정 회장은 올해 초 수소 붐업을 주요한 경영 과제 중 하나로 제시했다. 이르면 올 연말에는 수소차 넥쏘 새 모델도 공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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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기아 실적

수소가 아버지 정몽구 명예회장에게서 이어받은 사업이라면 자율주행과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은 오롯이 정 회장 본인이 시작해 풀어가고 있는 사업이다. 페달을 밟아 속도를 높이거나 멈추고 운전대를 돌려 방향을 잡는 기계적 방식이 기존 자동차라면, SDV에선 스위치나 터치패드로 대부분의 기능을 구현한다. 다만 정 회장은 비야디(BYD) 등 중국 전기차 기업이나 테슬라와의 SDV 경쟁에서 선도가 아닌 추격자 입장이란 걸 인식하고 있다. 올해 1월 기아 오토랜드 광명에서 열린 신년회에서 그는 “소프트웨어 경쟁에서 다소 뒤처진 면이 있지만 열심히 해서 우리가 따라잡을 수 있다”며 “품질과 소프트웨어를 다 같이 잘 하는 회사가 돼야 한다”고 직원들을 독려했다.

이밖에 미래항공모빌리티(AAM), 로봇, 달 탐사 차량 개발까지 정 회장의 미래 사업 추진엔 포기가 없다. 그리고 당장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도 그는 안다. 그는 기아 K시리즈의 성공을 함께 한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 투자하면 아마 10~20년 뒤에야 성장을 볼 수 있을 겁니다. 현재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보이더라도 사명감을 가지고 투자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기계공학 주류 문화, IT 인재 영입엔 숙제
성과를 내기 위해선 인재가 필요하다. 정 회장은 글로벌 인재들을 영입해 성과를 낸 경험이 있다. 2006년 정 회장의 삼고초려로 기아에 온 피터 슈라이어 전 현대차 디자인경영담당 사장(현 고문)이나 2016년 현대차에 합류한 루크 동커볼케 현대차 최고디자인책임자(CDO) 겸 최고크리에이티브책임자(CCO)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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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의 도전 분야

하지만 이는 내연기관차 시대의 이야기다. 미래 사업 성공을 위해 IT(정보기술) 인재들이 필요하지만 이 분야 인재들에게 현대차그룹은 1순위 일터가 아니다.

문제는 보상과 조직문화다. 글로벌 IT 기업의 보상 체계와 현대차의 간극은 크다. 현대차 입장에서 줄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노사 합의로 전 직원에게 일괄 적용하는 현대차 보상 체계를 뒤바꾸기 어려워서다. 이 같은 급여 체계는 전체 직원의 평균 연봉을 높이는 효과는 있지만, 개인의 성과에 따라 확실한 보상을 원하는 글로벌 인재들을 영입하는 데는 걸림돌이다. 현대차의 한 전직 인사 담당자 A씨는 “IT 인재들은 ‘빵빵’ 터지는 성과급을 원하는데 현대차 보상체계는 평등주의적이라서 해외 석·박사 출신 IT 인재들이 현대차를 선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계공학 전문가 중심의 조직문화도 IT 분야 인재들을 영입하는 데 장애물로 꼽힌다. 정 회장은 “우리는 IT 회사보다 더 IT 회사다운 곳이 돼야 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현대차에선 내연기관차 전문 인력의 파워가 여전히 막강하다. ‘기계공학 VS 전자공학’으로 상징되는 사내 신·구 세력 갈등이 있다는 점도 회사 관계자들은 부인하지 않는다.

48배 커진 현대차 “이미 퍼스트 무버”
정 회장이 늘 배우고 싶어하는 그의 할아버지 정주영 선대회장은 “힘 있는 사람에게 잘못 보이면 괴로운 일을 당한다”(1988년 ‘5공 청문회’)고 말했었다. 정치권력의 개입이 노골적이던 시절 기업인의 고충을 털어놓은 것이다. 달리 생각하면 당시는 기업이 눈치 볼 곳은 한국 정부가 유일하던 때기도 했다. 그 당시 현대차 매출은 3조4111억원이었지만 지난해에는 162조6636억원(현대차그룹은 432조1839억원)으로 35년 새 약 48배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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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자율주행 기술 종합 순위

할아버지 때의 현대차가 국내 기업이었다면 정의선 회장의 무대는 이미 한국을 벗어난 지 오래다. 미·중 무역 갈등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의 세계에서 현대차그룹은 지정학적 위기에 더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중국의 전기차 공세도 현대차그룹을 압박하고 있다. 최근 발생한 전기차 화재 사건과 관련해선 한국 정부뿐만 아니라 미국·유럽연합(EU)의 규제 동향이 현대차·기아의 전기차 전환 스케줄에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강성 노조도 한국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조지아에 전기차 생산공장을 준비 중인 현대차에 대응해 전미자동차노조(UAW)는 현대차공장 노동자들을 위한 전용 홈페이지까지 만들어 놓고 노조원을 모집하고 있다. UAW가 새 조합원을 끌어들이는 데 쓰는 구호는 ‘현대차 노동자여 일어나라(Hyundai workers stand up)’다. 이들은 “외국 회사가 들어와 미국인이 낸 세금 지원까지 받았지만, 정작 우리는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미 언론에 따르면 앨라배마 등 현대차 공장의 노조 가입률은 30%에 이른다.

정 회장과 가까운 재계 인사들은 그가 경영 고민의 열쇠를 할아버지 정주영 선대회장에서 찾는다고 전한다. 그는 2022년 고려대 졸업식 축사에서 “사업 초기 화재로 전 재산을 잃고 전쟁까지 겪으면서도 결국 기업을 일으킨 아산 정주영 회장님께선 ‘어떤 실수보다도 치명적인 실수는 도전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소개했다. 사회 진입을 앞둔 이들에게 전한 말이자 본인을 향한 다짐이었다. 정 회장의 자문 그룹 중 한 명인 이무원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는 “그동안 ‘패스트 팔로어’로서 성장을 이뤄온 현대차그룹은 미래사업·인사·노무 분야 등 많은 분야에서 이미 ‘퍼스트 무버’가 된 상태”라며 “현대차가 치고 나가는 길이 업계의 룰이 되게 하려는 게 그의 노력”이라고 짚었다.

현대차 모빌리티 기업 혁신의 중심엔 경영자 정의선이 있습니다. 그는 정주영의 손자, 정몽구의 아들을 넘어 100년 기업을 꿈꿉니다. 더중플에서 현대차의 미래 전략을 보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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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뚝심경영’ DNA 잇다…정의선, 혹독했던 후계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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