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야근 없앴더니 출생률 3배 됐다…일본 '이토추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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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토추(伊藤忠)의 기적’이라고 했다. ‘쓸데 없는 야근을 줄이고, 회사에서 직원들에 아침밥을 줬더니, 직원들은 아이를 더 낳았다. 거짓말처럼 10년만에 회사의 출산율이 3배로 뛰었다’는 얘기다.

한국의 역대 최저치 출생률(0.72) 보다 낮은 출생률(0.6)을 보이던 이 대형 종합상사는 어떻게 기적을 만들어냈을까. 지난 10년새 출생률을 3배로, 일본 대학생 사이에서 가장 입사하고 싶은 회사로, 일본에서 가장 직원들이 행복한 회사로 변모한 이토추상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달 22일 일본 도쿄에 있는 이토추상사 본사에서 고바야시 후미히코(小林文彦·67) 대표이사 부사장(CAO·최고관리책임자)과 100여 분에 걸쳐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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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시 후미히코 이토추상사 대표이사 부사장이 지난달 22일 일본 도쿄 이토추상사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현예 특파원

비결이 뭐냐고 묻자 그는 옛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2010년 오카후지 마사히로(岡藤正広) 현 회장이 사장이 됐을 때 일이다. 당시 이토추는 타사와 비교해 업계 4위에 그쳤다. 업계 톱이 되기위해 일하는 방식 개혁에 들어갔다. 이토추는 다른 상사에 비해 직원수가 30% 정도가 적다. 사람을 늘려 경쟁사와 싸우는 방법도 있지만 한명 한명의 생산성을 올려서 싸우기로 했다. 효율적으로 일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동기부여를 주지 않으면 경쟁할 수 없었다.”

이토추는 당장 그해 사내 회의를 줄였다. 인쇄물 자료도 줄였다. 사내 어린이집도 세우고 직원 1인당 40만엔(약 380만원)에 달하는 교육 투자를 했다.

그리고 2013년 ‘110운동’에 들어갔다. 고바야시 부사장의 설명이 이어졌다. “110운동은 회식은 1차, 10시에 끝내자는 것이다. 10년이 넘은 지금도 철저하게 하고 있다. 위반하고 문제를 일으킨 직원은 지금도 엄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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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부터 아침형 출근제를 도입하면서 이토추는 이른 아침 출근하는 직원들을 위해 아침식사를 제공한다. 지난달 19일 오전 7시 아침 식사거리들을 들고가는 이토추상사 직원들. 편의점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풍경인데, 매일 아침을 무료로 먹을 수 있다. 김현예 특파원

생산성 향상을 막는 가장 큰 골칫거리는 야근이었다. 이토추 본사 건물은 새벽 4시까지 불이 훤했다. 회사 앞엔 야근하는 직원을 기다리는 택시들이 즐비했다. 전세계와 거래하는 종합상사의 특징이기도 했다. 그런 이토추가 오후 8시 이후 잔업을 금지하고 대신 아침형 근무제를 도입했다. 오전 5~8시 근무를 야근과 똑같이 인정해 수당을 1.5배를 주고, 오후 3시면 퇴근할 수 있게 했다. 전체 4100여 명 직원의 절반 가까이가 아침형 근무를 택해 일한다.

전세계와 거래해야 하는데 아침형 근무로 가능한가.
“야근하는 이유를 조사했다. 물론 정말 바쁜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잔업이 가치있다고 생각하거나, 상사가 안가고 있으니 따라 남는 경우가 많았다. 낭비였다. 그래서 야근을 없애자, 아침에 일하자고 한 거다. 이곳이 오전 7시면, 미국 동부는 저녁 6시고 유럽은 전혀 거래처 대응에 문제가 없었다. 아침형 근무로 거래처로부터의 항의는 여태 단 한 건도 없었다. 아침형 근무를 도입하면서 일찍 퇴근한 직원들은 가정을 돌보고, 개인 생활을 즐기기 시작했다. 비용도 줄었다. 택시비, 전기료 등 관련 비용이 6%나 줄었다.”

이토추의 아침형근무제는 일본에 반향을 일으켰다. 2014년 일본 정부가, 이듬해인 2015년 일본 대표 재계단체 게이단렌(經團連·일본경제단체연합회)가 각각 나서 아침형 근무제 권장에 나섰다. 도쿄 지하철은 이 때문에 아침 운행 시간을 30분 앞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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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추상사가 지난 2010년부터 설치한 사내 어린이집. 김현예 특파원

이토추는 어떤 회사를 지향하는 건가.
“일본 제일의 좋은 회사가 되는 거다. 계기가 있다. 2017년 한 잡지에서 '사원이 행복한 회사' 랭킹이 실렸다. 이토추는 2위를 했다. 당시 오카후지 사장이 크게 기뻐했다. 직원이 행복한 회사만큼 좋은 회사는 없는 것 아닌가. 사내 게시판에 기사를 공유했다. 그걸 본 한 사원이 보고 메일을 보냈다. 오카후지 사장의 옛 부하로, 오랜 시간 휴직하고 암투병을 하던 직원이 병상에서 사장에게 보낸 것이었다. ‘지금껏 선배, 후배, 동료로부터 받은 서포트와 회사가 지금껏 해준 지원을 생각하면 저에게 있어 우리 회사는 틀림 없이 일본 제일의 좋은 회사입니다’라는 거였다. 메일을 받은 사장은 본인 허락을 받고 사내 게시판에 공유했다. 2주 뒤. 해당 사원이 안타깝게도 눈을 감았다. 그 직원의 고별식이 열렸는데, 내 옆에 서있던 사장은 눈물을 흘렸다. 영전 앞에 선 사장은 맹세했다. ‘반드시 회사를 일본 제일의 회사로 만들어 보이겠다’는 거였다. 그리고 회사로 와 그 직원의 사망 소식을 전사에 알리면서 선언했다. ‘이토추란 회사를 일본 최고로 좋은 회사를 만들겠다’는 것이었다.”

암투병 중이던 한 직원의 메일에 이토추는 ‘암과 일의 양립지원'이란 제도를 만들었다. 고바야시는 말을 이어갔다.
“간단히 말하면 이거다. 사원이 암에 걸리도록 하지 않겠다. 암에 걸리더라도 철저히 치료하고 치료비를 전액 지원한다. 만약 직원이 사망한다면 가족을 돌보겠다. 아이가 몇명이든, 몇살이든, 교육을 마칠 때까지, 사립대를 다닐 수 있는 수업료를 지불한다. 배우자가 일하지 않으면 안 되니, 그룹 내 일자리를 마련한다. 그리고 자녀가 장래 그룹에서 일하고 싶다고 한다면 반드시 일자리를 준비한다는 것이다. 직원들이 만약 암에 걸려도, 회사로부터 철저한 서포트가 있으니 안심하고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직원들이 어떤 상황에서든 ‘내가 머물 곳은 이토추’라고 생각하는 데에서 직원들이 능력을 가장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만든 정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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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일찌감치 사내 어린이집(2010년)을 만든 이토추는 2016년부터 육아 등으로 사정이 여의치 않은 직원들에겐 재택근무를 할 수 있게 했다. 일련의 제도들은 회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도 가져왔다. 그중 하나는 출생률 상승이다. 2012년만해도 이토추 직원들의 출생률은 0.6이었는데, 2021년엔 1.97까지 치솟았다. 이토추는 이후론 출생률 집계를 하지 않는데, 이유를 고바야시 부사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앞서 말했듯, 노동생산성을 올리자는 것으로 시작했다. 출생률 결과는 한참 뒤에 나온 것이었다. 경이로운 건 맞지만, 이런 숫자를 제시하는 것이 회사로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를 생각해야 했다. (직원 중엔) 독신도 있고, 여러 이유로 아이를 낳지 않거나, 낳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토추에서 일하는 것을 통해서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숫자를 제시한 것이다. 다만 이 수치를 계속 제시하게 되면 직원들의 가치관이 있는데 출생률을 늘리자는 회사 정책으로 혼동할 수 있어 더이상 공표하진 않기로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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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시 이토추상사 대표이사 부사장이 지난달 22일 회사 어린이집을 다니는 아이로부터 받은 편지(오른쪽)를 보여주고 있다. 고바야시 부사장은 이 편지를 '보물'이라고 불렀다. 김현예 특파원

애초 목표로 했던 생산성 향상이란 목표는 이뤄냈을까. 이토추의 노동생산성은 2010년 대비 5.2배 늘고, 연결기준 순이익은 5배가 불어났다. 배당도 2010년 대비 11.1배가 증가했다. ‘투자의 신’으로 불리는 워런 버핏도 투자한 이토추상사의 주가는 지난 7월 기준 2010년 대비 10.4배 올라갔다.

인터뷰 말미, 고바야시 부사장은 “꼭 보여주고 싶은 보물”이 있다며 편지 한 장을 꺼냈다. 직원 자녀가 그의 앞으로 보낸 손편지다. 지난 5월 인근 야구장에서 열린 경기에서 선수를 에스코트하는 행사에 참여했던 소년이다. “저는 야구를 매우 좋아합니다”로 시작한 편지 내용은 이랬다. “엄마와 함께 (회사 어린이집에) 다니고, 집에 가는 길에 친구, 그리고 친구의 엄마와 함께 돌아가기도 해서 즐거웠어요.” 고바야시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에서 제일 좋은 회사, 어떤 회사일까. 일본에서 제일 돈을 많이 버는 회사라면 도요타다. 최근 이토추는 일본 학생들에게 인기 기업 1위를 하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좋은 회사는 어떤 회사일까. 역시 지속가능한 회사여야 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학생들 눈에 좋은 회사로 보이는 것이, 이토추가 일본에서 제일 좋은 회사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반드시 제일 좋은 회사가 되어 투병하다 숨을 거둔 직원에게 보고할 수 있도록 하겠다.”

이토추상사는

일본을 대표하는 종합상사로 1858년에 세워졌다. 삼베 장사로 시작해 현재는 세계 61개국과 섬유, 에너지, 기계, 금융 등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1963년 한국에도 진출했다. 일본의 버블경제기 땐 회사가 존립 위기에 놓이기도 했지만 오카후지 마사히로 회장이 2010년 당시 사장에 취임하면서 회사 변혁에 들어갔다. 당시 일본 종합상사 대표 5개 회사 중 4위였던 이토추상사는 '적은 숫자로 경쟁사와 싸워 이기는’ 방식을 선택한다. 이토추의 전략은 성공해 현재 일본 종합상사 1·2위를 경쟁사와 다투는 자리까지 올라섰다. ‘투자의 신’ 워런 버핏이 지난 2020년 투자한 회사로 유명한데 주가와 실적이 오르며 올들어 처음으로 10조엔(약 93조원) 클럽에 들어갔다. 본사는 도쿄, 전체 직원은 4190명이다. 본사 초석 앞엔 '한명의 상인, 셀 수 없는(無數)의 사명'이란 글자가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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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에 있는 이토추상사 본사 건물 바로 옆엔 직장 어린이집과 어린이를 위한 시설들이 들어서있다. 김현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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