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101년간 부정한 일본 정부, 사과 받지 못한 간토대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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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23 간토대학살’에서 일본 시민단체가 지난해 9월 3일 간토대학살 현장 중 한 곳인 도쿄 아라카와 둔치에서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를 열고 6661명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종이 조형물을 설치한 장면이다. [사진 영화특별시SMC]

일제강점기인 1923년 9월 1일, 도쿄·요코하마를 비롯한 일본 간토 지방을 진도 7.9 대지진이 강타했다. 사망자 10만명, 이재민이 340만명에 달했다. 간토 지역에 머물던 조선인들은 더 끔찍한 재앙을 맞았다. ‘조선인이 폭탄을 던져 화재가 계속되고 있다’ ‘우물에 독을 탔다’ 등 유언비어가 퍼졌다. 당시 여러 기록에 따르면, 일본 군인과 경찰의 총·칼·죽창에, 산채로 불태워져 학살된 조선인의 수가 6661명에 달한다. 미국 뉴욕트리뷴, 영국 맨체스터 가디언 등 외신 기사로도 알려진 내용이다.

그간 일본 정부는 간토대학살에 대한 정부 책임설에 “사실관계를 파악할 기록이 없다”(2017, 아베 신조 총리)며 부인해왔다. 그런 일본 정부야말로 “유언비어를 만든 주체였다”고 주장하는 다큐멘터리 ‘1923 간토대학살’(감독 김태영·최규석)이 오는 광복절에 개봉한다. 간토대학살이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다름없는 “인종청소”였음을 생존자 유족, 일본인들의 인터뷰와 일본 안팎의 민·관 사료를 통해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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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군마현 후지오카 경찰서에서 재일조선인 17인이 자경단과 군중에 살해당한 후지오카 사건 희생자 기림비.

정성길 계명대 역사·고고학과 객원교수의 수집 자료 중 1923년 9월 요코하마 부두에 정박했던 영국 기함 호킨스호의 고위 장교가 부둣가에 학살 시신이 쌓인 장면을 촬영한 흑백사진도 중요한 증거다. 공동 연출을 맡은 김태영 감독은 13일 본지와 통화에서 “이 사진을 접하며 느낀 부채감이 다큐 제작으로 이어졌다. 역사의 진실을 추적해 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일본의 주요 인사들도 이례적으로 다큐를 통해 증언에 나섰다. 지난해 요코하마의 조선인 학살을 공식 보고한 가나가와현 정부 문서가 처음 공개되는 등 일본 내에서도 정부의 역사 은폐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잇따르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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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항 조선인 대학살 사진을 제공한 근대사진 수집가 정성길씨.

다큐에 출연한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전 총리는 “(조선인에 대한) 유언비어 자체를 당시 내무성이 유포했다”고 말한다. 다큐는 “3·1운동으로 조선에 대규모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본 지배층의 위기감이 커졌다”(아즈사와 가즈유키 일본변호사연합회 인권옹호위원), “간토대지진 이듬해 일본은 군국주의화로 나아갔다”(일리노이대 동아시아학 이진희 박사) 등 대학살 발발 정황도 제시했다.

다큐에는 그간 알려지지 않은 사료도 대거 담겼다. 일본 정부 기관인 중앙방재회의 ‘간토대진재 보고서’가 한 예다. 스즈키 준 도쿄대 일본근대사 교수에 따르면, 이 보고서는 군대·경찰에 의해 살해된 (조선)사람들도 있었다는 점을 거듭 기록했다. 1923년 11월 22일 뉴욕타임스가 요코하마 부두 부감독인 미국인 헤드스트롬을 인용해 “가능한 많은 조선인을 죽이라는 공식 명령이 내려졌다” “1923년 9월 2일 250명의 조선인이 5명씩 묶인 채 산채로 불태워졌다” 등 특종 보도한 내용도 공개했다.

김 감독은 “일본 방위성 방위연구소는 자료 열람신청부터 허가까지 6개월이 걸렸다. 일본 정부는 ‘자료가 하나도 없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막상 찾아보니 당시 군대 관련 증거 기록이 적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방위연구소에 보관된 군대보고서에서 간토대지진 당시 계엄군 15연대가 조선인을 총살한 기록을 확인했다. 또 도쿄공문서관서 발견한 ‘관동계엄사령부 상보 제5권’을 통해선 일본 정부의 의도적 기록 삭제 정황을 의심했다. 한때 기밀 문서였던 이 자료는 1923년 당시 무기사용 기록 중 제11장 목차와 내용이 잘려나간 상태였다.

김 감독은 “일본에도 야마다 쇼지 릿쿄대학교 사학과 교수처럼 역사를 제대로 알려는 ‘양심’들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이 다큐가 일본 국회 시사회를 열 수 있었던 데는 스기오 히데야 입헌민주당 의원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시사회에서 스기오 의원은 “일본 정부도 (조선인 학살을) 인정하고 사죄해야할 것은 사죄할 필요가 있다”고 발언했다.

김 감독은 “시사회를 본 NHK·아사히·마이니치 등 현지 언론으로부터 자료 공유 요청도 받았다. 자기들이 못 건드린 부분까지 취재한 것에 놀라더라”면서 간토대지진에 대한 일본 정부의 인정을 끌어내는 과정이 쉽지 않으리라 내다봤다. “최근 사도광산만 해도 조선인 징용 명단이 있는데도 공개 안 하지않냐. 6600명 넘게 학살한 사료를 쉽게 내놓지 않을 것”이라며 “간토대학살 입증이 더욱 중요한 이유”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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