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CEO 아닌데 수백억 받았다…남의 회사 키워야 사는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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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생태계 동반자, VC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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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원 스타트업 투자유치 기사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진다. 이 큰돈을 끌어오는 사람들 정체는 뭘까. 모험자본가, 벤처캐피털리스트(VC)다. 단순 투자자가 아니다. 창업자와 함께 위험을 감수하고 혁신 생태계 최전선에서 미래를 앞당기는 동반자다. J커브 성장을 노리는 멱법칙(거듭제곱법칙·the power law)의 신봉자로 스타트업을 빅테크로 키우는 연금술사이기도 하다. 현직 VC 7명 대면 인터뷰와 55명 대상 설문조사를 통해 VC의 세계를 심층분석했다. VC의 선택을 받고 싶은 스타트업 창업자부터 옆동네 투자 비법이 궁금한 VC, 이 업계에서 일하고 싶거나, 스타트업이었던 지금의 빅테크가 어떻게 성장했는지 궁금한 이들을 위해 VC의 모든 것을 담았다.

스타트업 골라 투자·회수…유니콘 만드는 ‘연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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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1971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팰로앨토에 세쿼이아캐피털을 세운 돈 밸런타인의 별명은 ‘실리콘밸리의 대부’. 그가 발굴한 구글·애플·엔비디아·오라클·인스타그램·왓츠앱·링크드인·페이팔 등이 실리콘밸리를 넘어 세계를 호령하고 있어서다. 그는 생전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 강연에서 “거대한 나무는 어떻게 자라나. 먼저 나무가 자랄 땅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땅 위에 나무를 심고 가꿀 사람이 필요하다”는 말로 VC의 역할을 설명했다.

투자조합을 꾸리고(펀드레이징), 투자회사를 찾고(딜소싱), 심사를 거쳐 투자를 집행하고, 사후관리를 한 다음 투자금을 회수(엑시트)해 이를 분배하는 모든 과정이 VC의 업무다. 투자심사 관련 전반을 담당하기에 ‘투자심사역’, 줄여서 ‘심사역’이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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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민 기자

설문에 응한 국내 VC 55명 가운데 17명(약 31%)은 VC 업계에 진입하기 전 컨설팅·투자자문사에서 일했다. 23%는 스타트업에서 일했거나 창업자 출신이었다. 바이오나 헬스케어처럼 기술력에 사업 성패가 달린 분야는 VC도 전공 지식을 가진 경우가 많다. 정일영 신한벤처투자 팀장은 약학을 석사까지 전공했다. 간호학을 전공한 정나영 SBVA 책임은 전공을 살려 의료 AI 스타트업인 루닛에서 일했고, 이후 심사역으로서도 헬스케어 섹터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김하정 다성벤처스 책임심사역은 VC가 되기 전 오늘의집·LG생활건강·클래스101에서 마케팅 업무를 주로 했다.

심사역들이 한손에 꼽는 건 네트워킹의 중요성이다. ‘우리는 심사를 하는 직업이 아니라 좋은 창업자들을 발굴해 내는 것(박은우 매쉬업벤처스 파트너)’ 이라 말할 정도다. 스타트업 대표들, 학계 전문가들과의 네트워킹이 어떤 기회로 돌아올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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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산업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은 많을수록 좋다. 안혜원 카카오벤처스 선임심사역은 창업자들에게 질문을 계속 던져 “파고 파고 내려가다 보면 사업계획서에서 보이지 않는 이면의 것들이 많이 나오기에 호기심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철수 삼천리인베스트먼트 상무는 “주식·코인·부동산·미술품 상관없이, 투자에 어느 정도 관심과 재능이 있는 사람이라면 VC에 재능이 있을 수 있다”면서 “뭐든 자기만의 논리로 투자해서 성공해본 경험이 있다면 충분히 잘할 수 있다”고 했다.

알음알음 채용? 공채 늘어…의학·마케팅 전공자도 활약 

설문조사에서 VC 필수 역량으로 ‘커뮤니케이션 스킬’(50.9%, 중복 응답)이 가장 많이 꼽혔다. 정나영 책임은 “스타트업 대표를 만나 ‘투자하고 싶다’고 얘기할 때 대표가 우리 회사를 선택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설득 과정이고, 우리 내부 투자심사를 하면서 동의를 얻는 과정도 일종의 설득”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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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정일영 팀장은 “스타트업 대표뿐 아니라 회수 시장에 대해 얘기해줄 수 있는 여의도 증권사 직원들, 법·회계·특허 등 다방면 전문가 모두에게서 인사이트를 얻고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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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VC는 기본 연봉이라고 할 수 있는 ‘베이스 샐러리’에 투자 성과에 대한 성과급(인센티브)을 받는다. 일반적으로는 펀드가 청산될 때 수익 초과금의 비율을 회사와 VC가 나눠 갖지만, 개별 포트폴리오사의 엑시트 때도 인센티브를 주는 회사도 있다. 에이티넘인베스트 김제욱 부사장은 투자 성과 인센티브와 연봉을 더해 2022년 282억5600만원, 2023년 210억9500만원으로 2년 연속 200억원대 보수를 받았다. 그는 업비트 운영사 두나무가 스타트업이던 2016년 투자했고 유니콘이 된 뒤 2022년 엑시트하는 전 과정을 주도했다.

VC들은 미래의 유니콘, 스타트업을 어떻게 찾아낼까. 박은우 파트너는 창업자와 ‘라포’(친밀감)를 형성할 정도로 오랜 기간 관계 맺으며 도움을 주는 것을 첫손에 꼽았다. 그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바로 투자하기보단 그 사람이 1~2년 뒤 창업할 때 투자하는 게 제일 좋다는 생각으로 일한다”며 이 과정을 “너처링(nurturing·양육)”이라고 불렀다. 그는 “내 시간이 100이라면 예비 창업자를 만나는 데 60, 기존 투자사를 만나는 데 40을 쓴다”며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창업자를 마주할 때 그를 진심으로 존중할 줄 알아야 좋은 VC”라고 했다.

방경내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심사역은  “‘나도 이 회사 가서 일하고 싶다’는 기분이 들 때 투자를 결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안혜원 심사역도 비슷한 의미로 ‘탤런트 마그넷(인재 유인력)’이라는 개념을 꼽았다. 그는 “스타트업을 키울 땐 누구 혼자서만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결국 인재를 끌어들이는 힘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호기심 많은 ‘인싸’가 유리…벌이 괜찮지만 고충도 많아 

VC는 미래를 보는 업이다. 남보다 한 발짝 앞에 있다는 만족감이 크다. 정나영 책임은 “산업의 최선단에서 새로운 기술이나 시장의 개화를 누구보다 빠르게 접한다는 점이 제일 좋은 것 같다”며 “새 기술도 쏟아져 나오고 새 산업도 많이 만들어지기 때문에 산업과 시장의 ‘키 드라이버’가 무엇일지 계속 공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일영 팀장은 “다른 직업이라면 만나지 못할 사람들에게 배우고 성장하고, 다시 이를 투자에 활용하는 선순환이 이 직업의 가장 만족스러운 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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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창업자의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만큼, 창업자가 울면 VC도 같이 운다. 박은우 파트너는 “(창업자의) 고충이 전이될 때”가 힘들다. 그는 “실제로 전화하다가 우는 경우도 있고, 새벽 두세 시에 전화가 올 때도 있다”며 “어떻게 내가 해줄 수 없을 때도 있지만, 감정은 전이되는 게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안혜원 심사역은 “초기 투자다 보니 데스밸리(스타트업이 경영난에 직면하는 시기) 스타트업을 마주할 때가 있다”며 “이때 평정심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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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원래 VC 채용의 문은 잘 열리지도, 보이지도 않았다. 공개채용이 적고, 지인을 통해 알음알음 채용이 이뤄지곤 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바뀌었다. ‘유니콘 명가’ 알토스벤처스가 지난 6월 창사 이래 처음 심사역 공개채용을 진행했다. 추천 방식으로 진행된 전형에서 2명의 심사역을 채용했다. 최근 엑스플로인베스트먼트·위벤처스 등도 공개채용 공고를 올렸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가 운영하는 ‘벤처투자 전문인력 양성’ 교육은 1~2주간 진행되는데, 현업 VC 강의, 인턴 연계 등 출발을 도와준다. 설문 응답자 중 21%가 VC가 되기 위해 협회 교육을 받았다고 답했다. 현직 VC들도 블록체인 기술이나 엑시트 과정 등 특화 과정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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