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외국인 주주 모신다더니, 한글 초대장 보냈다…美는 주총 생중계 [밸류업 반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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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장은 워렌 버핏 회장의 투자 철학 등을 직접 들으려는 이들이 매년 몰린다. 지난 4일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장 모습.

#1. 국내 대표 주류기업인 하이트진로는 시가총액을 기준으로 주주 10명 중 1명(10.4%)이 외국인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최근 3년간 ‘외국인 주주가 이해할 수 있는 주주총회(주총) 소집 통지를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2. 남양유업의 외국인 지분율도 6.7%로 무시할 수 없는 규모지만, 회사에는 외국인 주주를 위한 영문 사이트는 물론 외국인 투자자와 소통이 가능한 전담 직원도 없다.

정부가 국내 증시 부양을 위해 해외 자금을 국내 증시로 유도하고 있지만, ‘밸류업(기업가치 제고)’의 주체인 상장기업들의 외국인 투자자 소통은 크게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3일 코스피시장 시가총액에서 외국인 비중은 35%로, 31~32%를 오가던 지난해보다 뚜렷이 올랐다. 올 상반기엔 밸류업 기대감 등으로 코스피시장의 외국인 비중이 36%를 돌파하기도 했다. 국내 증시 대장주인 삼성전자, 현대차, SK하이닉스 등도 외국인 지분율이 40~50%대로, 이미 ‘글로벌 주식’이 된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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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이처럼 외국인 투자자가 국내 증시 등락에 미치는 영향은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한국 증시의 ‘형님’격인 코스피 기업 3곳 중 2곳은 외국인 주주에 제대로 된 주주총회(주총) 소집 통지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중앙일보가 올해 ‘기업지배구조보고서’를 공시한 코스피 상장사 496곳을 전수조사해 보니 ‘외국인 주주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주총 소집 통지를 한다’고 밝힌 기업은 32.9%에 불과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 주주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란 ▶영문 공시 게시 ▶영문 홈페이지 등에 기업 정보 게재 ▶한국예탁결제원에 대행 위탁 등 3가지가 대표적이다. 이 중 하나라도 시행하면 되지만, 70% 가까운 코스피 상장사들이 ‘준수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주주가 자신의 의사를 표명할 수 있는 정당한 기회이자 ‘소통’의 기본인 주주총회에 참석하기조차 힘든 현실이다.

외국인 주주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주총 소집 통지를 한다고 밝힌 163개 기업 중에서도 33.1%는 외국인 주주 소통 전담 직원을 두지 않았고, 8.5% 기업은 영문 사이트조차 없었다.

특히 496개 기업 중 국가대표급 기업이라 할 수 있는 코스피200으로 범위를 좁혀봐도, 이 항목을 준수한 기업은 54.3%에 그친다. 나머지 절반가량은 외국인 주주와의 소통이 미흡한 셈이다.

주초 소집을 통지받았다고 해도 해외 선진국에 비해 주총 참석 자체가 까다롭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 상장사는 상법에 따라 주총 개최일 14일 전에만 주주에게 알리면 된다. 호주와 영국 등에선 최소 21일 전에 공고해야 한다. 한 외국계 기관투자자는 “여러 나라에 투자하는 글로벌 기관의 경우 열흘 남짓한 기간 안에 서류를 검토하고 의결권 자문사 의견을 받아 주총에 참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지난 3월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 회원사인 외국계 자산운용사들은 LG화학의 정기주총에 참석하기 위해 미국·유럽·홍콩 등에서 일정을 잡아 방한했지만 주총장 앞에서 제지당했다. 기업측이 개인 통역사의 동반 입장을 막았기 때문이다. 결국 한바탕 실랑이를 벌인 끝에 통역사없이 외국 주주들만 입장할 수 있었다.

반면 미국 상장사들은 오프라인 현장에서 진행하는 주총을 온라인으로 생중계하며 주주 편의를 극대화하고 있다. 물리적으로 미국까지 오기 어려운 해외 주주를 배려한 결과다. 대표적으로 워렌 버핏 회장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는 매년 주총을 온라인으로 생중계하며 전 세계 투자자의 관심을 받고 있다. 테슬라·애플·스타벅스 등도 온라인 주총을 제공한다. 여기에 주총을 언론사를 통해 생중계 하면서 현재 주주는 아니지만 ‘미래의 주주’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주주와의 소통은 상장사의 당연한 책무인데, 기본조차 하지 않으니 외국계 투자자들 입장에서 한국 기업에 투자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며 “외국에서 한국 밸류업에 관심이 매우 높은 만큼 일반주주와 외국주주를 포함해 모든 주주가 공평하게 대우받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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