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살인자" "죄 없나" 충돌…여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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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다발로 분출했던 여·야 협치론의 유통기한은 일주일에 불과했다. 1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김건희, 윤석열이 살인자”(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의원)라는 발언이 나오자 여권이 격하게 반발해서다. 앞서 지난 7일 박찬대 민주당 당대표 직무대행은 영수회담을 요청하고, 이에 대통령실은 “진지하게 논의해보겠다”고 화답했지만 1주일만에 정국의 온도는 차갑게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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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김영철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 '탄핵소추사건 조사'와 관련한 청문회에서 권익위원회 고위 간부 사망과 관련한 의사진행발언을 하던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왼쪽)과 이를 항의한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오른쪽)이 설전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8월 임시국회 ‘정쟁 휴전’을 제안했던 국민의힘도 강경 노선으로 돌아섰다. 국민의힘은 14일 ‘살인자’ 발언을 한 전현희 의원의 제명 촉구 결의안을 소속 의원 108명 전원의 명의로 제출했다.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은 “협박성 발언을 하는 등 공직사회를 압박해 고인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민주당”이라고 맞대응했다.

이날 국회 법사위는 김영철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 탄핵 청문회를 개최했다. 정작 이날 오전 증인석에 모습을 나타낸 이는 사건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임은정 대전지검 부장검사가 유일했다. 민주당이 증인으로 부르려 했던 김 검사와 김건희 여사, 이원석 검찰총장 등은 모두 출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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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전현희 의원은 14일 국회 법사위 청문회에서 “김건희, 윤석열이 (국민권익위 간부를) 죽인 것이다. 살인자다”라고 외쳤다. 연합뉴스

그러자 여야 간 험한 말이 오갔다. 문재인 정부에서 국민권익위원장을 지낸 전현희 민주당 의원이 권익위 고위간부 사망 사건을 꺼내면서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의 청탁금지법 위반을 덮기 위해서 권익위 수뇌부가 유능하고 강직한 공직자 한 명을 억울하게 희생했다”고 했다. 이에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은 “본인이 고생시킨 것 생각하라. 그분의 죽음에 본인은 죄가 없느냐”고 맞받아쳤다.

곧바로 민주당에서 막말성 발언이 쏟아졌다. 장경태 의원은 “김건희 때문에 사람이 죽지 않았느냐”고 했고, 서영교 의원은 송 의원을 향해 “김건희한테 그렇게 딸랑딸랑해도 (여당) 사무총장은 못 하더니만 양심이 있어야지”라고 했다. 전현희 의원은 “김건희, 윤석열이 (국민권익위 간부를) 죽인 것이다. 살인자다”고 소리쳤다.

점심시간 이후 속개된 오후 회의에서 정청래 법사위원장은 전 의원의 ‘살인자’ 발언에 대해선 별다른 지적을 하지 않은 채, 송 의원의 사과를 요구했다. ‘본인은 죄가 없느냐’는 송 의원 발언이 “전 의원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욕”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송 의원이 사과를 거부하자, 이번엔 “사과하기 전까지 발언권을 중지하겠다”며 위원장 직권으로 송 의원의 발언권을 박탈했다. 야당 의원들의 항의엔 “재량권 남용이 아니다. 위원장은 다 할 수 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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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김영철 서울북부지검 차장검사 '탄핵소추사건 조사' 관련 청문회에서 정청래 법사위원장이 자신의 의사진행 발언 신청을 건너뛰자 퇴장하고 있다. 뉴스1

국민의힘 소속 법사위원들은 이날 오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사위 회의장에서 민주당 의원의 막말과 망언이 쏟아졌다”며 민주당의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전 의원의 ‘살인자’ 발언에 대해 입장문을 내고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반인륜적 폭언”이라며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은 누군가를 살인자라고 공개 지목해도 되는 갑질의 권한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대통령 부부에게 살인자라고 외치는 것은 삼권분립 헌법 체계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도 직접 나섰다. 정혜전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오후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공직자의 안타까운 죽음마저 또다시 정치공세에 활용하는 야당의 저열한 행태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 민주당은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국민이 뽑은 대한민국 대통령의 가족을 향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내뱉었다”며 “근거 없는 일방적 주장에 근거해 거친 말을 쏟아낸 것은 한 인간에 대한 인권 유린이고 국민을 향한 모독”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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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1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불법적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선임 등 방송장악 관련' 2차 청문회에서 최민희 위원장에게 선서문을 전달한 뒤 자리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날 국회 곳곳에선 크고 작은 감정싸움이 벌어졌다. MBC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선임 과정을 따지겠다고 야당이 소집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청문회에선 야당 의원과 방통위원이 대립했다. 탄핵 소추로 직무가 정지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은 수차례 “저는 탄핵 중이고 제 직무와 관련해서는 답변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실랑이를 벌였다.

이훈기 민주당 의원이 “여기 왜 나왔느냐”고 하자, 이 위원장은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이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몇몇 동물들은 더 평등하다’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고 했다. 이 의원이 “방문진 이사 6명을 누가 오더(명령)를 줬는지”라고 하자 이 위원장이 “오더를 받았다는 것은 증인이지만 굉장히 모욕적”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야당 의원들은 김태규 방통위원장 직무대행(부위원장)과도 수차례 충돌했다. 노종면 민주당 의원이 “KBS 이사, 방문진 이사가 누구인지 말해 보라”고 질문하자, 김 대행은 “기억력 테스트하는 자리가 아니지 않으냐”고 답했다. 노 의원이 언성을 높이자 김 대행은 “잘 들리니 언성을 높이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민주당에선 “건방 떨지 말라”(노종면),“의원이 질의하고 나면 웃긴가”(한민수) 등 김 대행의 태도를 지적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결국 김 대행이 공영방송 이사 선임 과정에 대해 “비공개로 진행된 내용이라 말씀드릴 수 없다”고 답변을 수차례 거부하자, 야당은 김 대행을 고발하기로 했다.

여야의 극한 대립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광복회와 야당은 김형석 독립기념관장 임명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8·15 광복절 경축식 행사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민주당 출신 우원식 국회의장도 고심 끝에 정부 주최 경축식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건국절을 둘러싸고 보수-진보 진영이 이념 전쟁 양상을 벌이는 와중에 살인자 발언까지 더해져 여야가 접점을 찾기란 더 어려워졌다는 관측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한민국 건설 과정에 대한 평가를 두고 반목하고 이념에 따라 분열된 모습이 마치 1945년 해방 공간을 연상시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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