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금은동 품게 된 천재소녀…동화 같은 ‘리디아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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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인사이드

인생을 골프에 비유합니다. 골프엔 수많은 이야기가 응축돼 있기 때문입니다. 골프에는 완벽함이 없습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의 저자인 심리학자 스콧 펙은 “골프는 육체적·정신적·영적으로 성숙한 인간이 되는 연습”이라고 했습니다. 골프 인사이드는 이처럼 불완전한 게임을 하는 완벽하지 못한 골퍼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전체 연재 콘텐트는 중앙일보 프리미엄 디지털 구독 서비스인 The JoongAng Plus에서 볼 수 있습니다. 리디아고 전문은 다음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27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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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을 목에 걸고 눈물을 흘리는 리디아 고. ‘최연소 타이틀’ 제조기로 불렸던 그는 올림픽까지 제패하며 ‘골든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김성룡 기자

2003년 뉴질랜드 북섬 오클랜드 인근의 푸푸케 골프클럽.

동양인 여성이 여섯 살 난 딸의 손을 잡고 골프 클럽에 들어가 레슨을 부탁했다. 22세의 젊은 헤드 프로인 가이 윌슨은 거절했다. 소녀가 너무 어리고 작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어를 못했다.

11일 파리 올림픽 여자 골프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뉴질랜드 교포 리디아 고(27·한국이름 고보경)의 연대기를 쓰려면 이렇게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리디아 고의 성장기는 동화 같다. 할머니가 “아이 혼자라 너무 외로우니 한 명만 더 낳으라”고 아들에게 6년을 종용해 태어난 아이가 고보경이다. 언니와 여덟 살 차다. 다섯 살 때 골프채를 잡아봤는데 재능을 보였고, 가족은 잔디에서 공을 칠 수 있는 뉴질랜드로 갔다. 그때 처음 만난 선생님이 윌슨이었다. 윌슨은 결국 리디아를 가르치기로 했다. 성격이 밝고 착한 데다 재능도 있는 리디아 고에게 금방 반했지만, 이렇게 대단한 동화를 쓸 줄은 윌슨도 몰랐을 것이다.

리디아 고는 이듬해 지역 대회에 나가 꼴찌를 했다. 성인 대회에 출전한 일곱 살 소녀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때 1등한 선수가 14세의 샤론 안, 한국 이름으로 안신애였다. 리디아 고는 한동안 하늘 같은 안신애를 졸졸 따라다니며 함께 연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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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5세의 아마추어로 LPGA 투어 캐나디언 오픈에서 우승한 리디아 고. 성호준 기자

『리디아 고, 10대 골프 천재 소녀의 초상화』를 쓴 뉴질랜드의 기자 마이클 도널드슨은 “2000년대 초 샤론 안, 세실리아 조(조정민), 리디아 고가 차례로 두각을 나타냈다. 세 선수 모두 열심히 했고 최고 자리에 올랐지만, 리디아 고는 특별했다. 리디아 고는 수업을 받으면서 새벽과 저녁은 물론 점심시간도 아껴 훈련했다”고 썼다.

2012년 4월 미국 하와이 코올리나 골프장에서 열린 LPGA 투어 롯데 챔피언십. 리디아 고는 그날 김효주, 에리야 주타누깐과 동반 라운드했다. 모두 10대 주니어 아마추어 선수였다. 첫날 리디아 고의 성적이 가장 나빴지만, 최종 결과는 리디아 고가 가장 좋았다. 가장 어린 리디아 고가 프로 대회에서 4위를 했다. 그해 가을 캐나디안 오픈에서 리디아 고는 역대 최연소 LPGA 투어 우승을 거뒀다.

리디아 고는 최연소 LPGA 우승, 최연소 여자 메이저 우승, 최초 10승, 최연소 세계랭킹 1위 등 최연소 기록 제조기였다. 17세이던 2014년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명에 포함됐다.

그러나 리디아 고는 20대에 접어들면서 슬럼프에 빠졌다. 매사에 긍정적이었던 리디아 고는 어른이 되면서 두려움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 같았다. 우승은커녕 톱10에도 들지 못했다. 그런 리디아 고에게 백마 타고 온 왕자님이 나타났다. 2022년 리디아 고는 3승을 하며 부활했는데 그가 다시 우승하기 시작한 건 남자친구를 사귀기 시작한 시기와 얼추 일치한다. 리디아 고는 그해 말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의 아들인 정준씨와 결혼했다.

결혼 직후 기자와 만난 리디아 고는 “남편은 골프선수 리디아 고가 아니라 인간 고보경을 좋아해 주는 사람이었다. 내가 잘 치든, 못 치든 상관없이 격려해 줬고 그게 힘이 됐다”고 했다.

리디아 고는 올림픽에 애정이 많다. 2016년 첫 올림픽에서 리디아 고는 “눈물이 나려고 하는데 금메달리스트인 박인비 언니가 울지 않으니 은메달리스트인 나는 울 수 없어서 억지로 참았다”고 했다.

리디아 고는 착한 사람이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전쟁터 같은 투어에서 따뜻한 마음으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게 대단하다. 21년 전 남반구의 조그마한 골프장에서 시작된 리디아 연대기는 파리에서 드라마틱한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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