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부르카 벗은 그 소녀는 지금…카메라 든 정은진, 아프간 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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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저널리스트 정은진 씨. 서울 마포구 상암동 중앙일보 스튜디오에서 자신의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현장을 함께 누빈 필름 카메라다. 김경록 기자

또랑또랑한 눈망울의 아프가니스탄 소녀 아미나. 포토 저널리스트 정은진 씨가 수도 카불에서 아미나를 만난 건 2006년 10월이다. 카페트 짜는 가내 수공업 집안의 딸인 아미나는 하굣길에 정 씨를 만났고, 그의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얼굴을 드러내는 히잡을 쓰고 있기에 꾹 다문 입술도 눈망울도 정 씨의 렌즈에 생생히 담겼다.

지금 이런 사진을 찍는 건 불가능하다. 눈까지 다 가리는 부르카를 쓰지 않으면 여성은 외출이 허용되지 않아서다. 탈레반은 2021년 8월 15일 재집권한 뒤부터 여성의 교육을 금지하고 남성 동반 없는 외출을 금지하는 등, 여성 인권을 억압하고 있다. 정 씨가 카불에 체류했던 시기는 2006~2007년으로, 당시는 '카불의 봄'이었다. 2001년 9ㆍ11 테러의 여파로 미국이 아프간에서 탈레반을 축출했다. 정 씨도 그 덕에 아프가니스탄 곳곳을 다니며 취재를 할 수 있었다. 아시아인 여성이 거의 없었기에 자주 달갑지 않은 주목을 받아야했던 삶은 고달픔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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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을 덮는 부르카를 착용한 포토 저널리스트 정은진 씨. 2006년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다. 본인 제공

그럼에도 그는 카불을 기회로 치환했다. 아미나 같은 피사체는 물론, 현지 병원의 열악한 산모 사망 실태를 고발한 사진은 그에게 2007년 프랑스 페르피냥 사진 페스티벌에서 그랑프리를 안겼다.

그러나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카불의 봄은 2022년 끝났다. 살아있다면 31세인 아미나는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 궁금하지만 카불엔 갈 수 없다. 팬데믹도 있었지만, 아프가니스탄은 여행 금지 국가다. 그는 대신 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탈레반 재집권 3년이 되는 15일을 잊지 말자는 의미를 담았다. 전시는 서울 인사동 코트 갤러리에서 13~20일까지 열린다. 그가 필름 카메라 세 대와 디지털 카메라 두 대를 목에 걸고 다니며 찍은 10만 장 중 선별한 사진이 관람객을 만난다. 팬데믹 와중에 낸 사진 책 『아프가니스탄』도 함께 선보인다.

그를 무심코 "정 작가"라고 부르면 "난 작가 아니다, 기자다"라는 답이 단칼에 돌아온다. "사진 조작 없이, 있는 그대로의 현장 사진으로 사실을 전하는 게 나의 사명"이라는 설명과 함께.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5120km 떨어진 아프가니스탄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제3세계의 현재는 한국의 과거였다. 부르카가 조선시대 여성의 장옷과 다를 게 뭔가. 일본군 위안부의 아픈 역사도 있다. 이들의 비참한 현재는 불과 몇 십년 전까지 우리의 현재였다는 걸 잊지 말자."  
정은진만의 다른 시각은 뭔가.
"많은 서방 기자들과 때론 일본 기자들이 분쟁 지역에서 취재 활동을 한다. '나까지 꼭 해야 하나'란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강대국 출신으로 식민지화의 주체였던 국가 출신이 아닌, 한국 기자로서, 그것도 여성으로서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입장과 시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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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2007년 아프가니스탄 카불 체류 당시 사진. 카메라를 주렁주렁 목에 걸고 다녔다. 당시엔 히잡만 써도 여성이 외출을 할 수 있었던 때였다. 본인 제공

구체적 사례는.  
"나이지리아나 우간다 등에서 성노예 생존자 소녀들을 인터뷰 할 때면 '한국도 식민지와 전쟁의 아픔을 겪었다'고 시작했다. 좋은 사진은 현장에서 만난 인물을 존중하고 공감할 때 태어난다. 그리고 꼭 '소중한 시간 고맙다'라는 인사를 했는데, '다른 기자들은 그런 이야기를 안 한다'며 고마워하더라."  
중동부터 아프리카, 동일본 대지진 등 현장을 누비는 생활을 20년 넘게 해왔다.  
"죽음이 일상이었고 신변의 위협도 있었다. 힘들 때마다 악몽도 자주 꿨다."  
트라우마가 악몽으로 이어진 건가.  
"아니다. 카불에 있을 때 주로 악몽을 꿨는데, 포토 저널리스트로서의 이름을 남기지 못한 채 서울 거리를 휘적휘적 걷는 거였다. 내 인생을 걸고 아프가니스탄에 왔는데 의미있는 작업을 못하면 어쩌나 싶은 게 가장 큰 악몽이었다."  

그 악몽은 더 이상 꾸지 않는다. 그는 2007년 페르피냥 그랑프리를 받은 데 이어, 2008년엔 콩고 성폭력 생존자들을 조명한 작업으로 보도사진계에서 유명한 피에르 앤드 알렉산드라 불라 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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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 저널리스트 정은진 씨의 꿈은 환갑이 넘어도 현장에 있는 것이다. 김경록 기자

서울대 동양화과를 나왔는데.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싶고, 영어도 잘 하고 싶어서 유학을 결심했다. 그러다 뉴욕대(NYT) 티쉬(Tisch) 예술대에서 보내준 졸업전시 자료가 삶의 터닝포인트가 됐다. (뉴욕타임스 소속) 이장우 기자가 출품한 홈리스 여성을 찍었는데, 마음을 흔드는 힘이 있었다. 나도 그런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먹는다고 그런 삶을 살지는 않는다.  
"9ㆍ11 테러가 또다른 삶의 전환점이 됐다. 무엇 때문에 자기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이런 일을 저지르게 되는 걸까, 그 핵심으로 파고들고 싶었다. 미주 한국일보를 그만두고 미주리 대학원에 다니면서도 사비로 이스라엘에 가서 취재 여행을 했다. 하마스 창시자 아흐메도 야신이 암살 당했을 때도 현장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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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카불의 취재원들과 찍은 사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정은진 씨다. 본인 제공.

목표는.  
"나이가 들어도 세계 현장을 누비며 현역으로 계속 뛰는 모습으로 젊은 여성 후배들에게 롤모델이 되어주고 싶다. 포토 저널리스트 폴라 브론스틴을 존경하는데, 꼭 20년 전 인도네시아 지진해일 피해 현장에서 만났을 때 그의 나이가 환갑이었는데, 몸을 사리지 않고 현장을 누볐다. 이제 내가 그의 나이가 되어간다. 폴라는 아직도 현장을 뛴다."  
여성의 시선을 강조하는 까닭은.  
"지금까지는 백인 남성의 시선으로 전쟁이 기록됐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사진도 일본계 미국인 남성이 남태평양에서 찍은 것이다. 한국인 여성의 감성과 시선으로 위안부 취재를 할 수 있었다면 많은 상황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강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슬람 문화권에선 특히나 여성만이 할 수 있는 여성 인권 취재 영역도 있다. 이젠 여성의 눈으로 역사를 기록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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