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최다 금메달, 정신건강은 노메달…"나약한 선수로 낙인 찍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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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2024 파리 올림픽에서 금메달 13개, 은메달 9개, 동메달 10개 총 32개 메달을 획득했다. 전문가 사이에선 앞으로도 고된 훈련과 정신적 압박을 견뎌야 하는 엘리트 선수를 위한 정신건강 체계와 인식이 개선돼야한다고 말한다. 뉴시스

2024 파리올림픽은 대한민국은 최소 선수단으로 최다 금메달 획득 기록을 세웠지만 선수 마음을 보살피는데 ‘노메달’이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격 10m 공기권총에서 은메달을 딴 김예지(32)는 귀국 후 기자회견 도중 ‘과로’로 갑자기 실신해 후송되기도 했고, 배드민턴 금메달리스트 안세영(22)은 협회의 선수 관리 소홀 문제를 폭로했다.

중앙일보가 지난달부터 전·현직 스포츠 엘리트 선수와 지도자 등 85명을 대상으로 ‘종목별 정신건강 지원 수준’에 대한 설문을 진행한 결과도 비슷했다. 설문은 지난 2008 베이징올림픽부터 2021 도쿄올림픽에서 국내 대표팀이 금메달을 획득한 11개 종목과 프로스포츠(야구·축구·농구) 종사자를 대상으로 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지난 5월 발간한 ‘엘리트 선수 정신건강 툴키트(toolkit)’를 참고해 정신건강 지원 수준을 금(모범 사례), 은(우수), 동(최소 조건), 전혀 없음(미흡)으로 분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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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디자이너

선수·지도자 85명 설문…38% “정신건강 지원 전혀 없다” 

설문 결과 정신건강 지원 시스템이 ‘전혀 없음’이라고 응답한 경우가 32명(37.6%)으로 가장 많았다. 현직 아마추어 체조선수는 “업계에서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밝히면 ‘나약한 선수’로 낙인이 찍힌다”고 답했다. 한 현직 수영(경영) 코치는 “업계에선 결과만 중시할 뿐 선수 정신건강은 관심사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수영선수는 “선수가 심리 상태를 공개하는 것은 철저히 경쟁적인 스포츠계에서 약점을 드러내는 일”이라며 “가까운 부모님에게도 말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유도 선수는 “정신적으로 힘들때 무조건 연습하면 나아질 거란 말만 들었다”고 답했다.

다음으론 ‘동메달’이란 응답이 23명(27.1%)으로 뒤를 이었다. 동메달은 최소 요건으로 소속 집단에서 스포츠 정신건강 전문가를 찾는 법을 안내하는 경우 등이다. 주기적으로 상담을 제공하는 ‘은메달’ 수준이라는 답은 19명(22.4%)이었다. 한 수영 선수는 “현 소속팀과 연계된 스포츠 정신건강 전문가의 지원을 필요시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금메달(정신건강 전문가 상주 등)’을 선택한 이들은 11명(12.9%)에 그쳤다. 비교적 경제적 지원이 많은 프로 스포츠 종목에서 응답이 많았다. 한 프로야구 코치는 “선수에게 놓인 사회적 압박, 개인 및 팀 성적 관련해 스트레스를 완화해주는 전문가의 역할이 크다는 것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반면에 한 프로야구 선수는 “과거 전문가가 상주했지만 상담한 내용을 구단에 공개해 신뢰를 잃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선수 정신건강 지키는 데도 온 마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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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여자 복싱 임애지와 태권도 박태준이 13일 오후 파리 올림픽을 마치고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2024파리올림픽에서 총 32개의 메달(금 13, 은 9, 동 10)과 종합순위 8위라는 '역대급 성과'를 기록했다. 뉴스1

개선할 점을 묻는 문항(중복 선택 가능)에선 ‘정신건강 전문가 접근성 강화(53명)’가 가장 많았다. 팀에 정신건강 전담 코치를 고용하거나, 시스템을 갖춰야 한단 내용이다. 이어 유소년 시기부터 정신건강 관리 교육(42명), 사회적 인식 개선(41명), 코치·감독진의 정신건강 관리 교육 강화(26명)가 뒤를 이었다.

국제스포츠심리학회(ISSP) 소속 에드손 필호(Edson Filho) 보스톤대 스포츠·운동수행 심리학과 교수는 중앙일보와 e메일 인터뷰에서 “선수도 보통 사람처럼 정신·심리적 시행착오에서 배우고 성장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수가 스스로를 돌보는 ‘자기연민(Self-compassion)’과 ‘긍정적인 자기대화(Positive self-talk)’, 그리고 직면한 상황을 위협이 아닌 도전으로 인식하는 법을 익히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어 “다양한 유형의 사회적 지지 체계도 필수적”이라며 “선수의 정신건강을 보살피는 데에도 주변 사람 모두가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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