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3대가 국가유공자…“증조부·조부·부친, 한 곳에 모셨으면” 소방관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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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소방서 공병삼 소방위가 경기도 오산시에 있는 증조할아버지 공칠보 의사의 독립항쟁의사 추모비에서 아버지 고(故) 공남식씨와 함께 찍은 사진. 공병삼 소방위 제공

경기 부천소방서 공병삼(49) 소방관(계급 소방위)의 가족사는 남다르다.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아버지 모두 국가 유공자다. 3대가 국가 유공자로 인정받은 사례는 전국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고 한다.

공 소방위의 증조할아버지는 독립유공자 공칠보(1884~1939) 의사다. 1919년 3월 29일 오산시(옛 수원군 성호면) 장날에 300여명의 군중에게 태극기와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면서 만세 시위를 주도한 7명 중 한 명이다. 현장에서 체포된 공 의사는 일제에 의해 6개월간 모진 고문을 받았다. 석방된 이후에도 일본 경찰 등에 저항하다가 경찰서로 끌려가 고문을 받고 여러 차례 수배되기도 했다.

공 의사는 한쪽 다리를 제대로 쓰지 못하는 등 고문 후유증을 앓다가 1939년 순국했다. 정부는 1995년 8월 15일 공 의사에게 대통령 표창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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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 소방위의 증조할아버지·할아버지·아버지가 받은 표창장 및 국가유공자증. 공병삼 소방위 제공

공 소방위의 할아버지인 고(故) 공진택씨는 6·25 참전 유공자다. 당시 백마고지 전투에서 날아온 폭탄 파편에 맞아 시력을 모두 잃었다. 그래서 군 입대 뒤에 태어난 아들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아버지인 故 공남식씨는 월남전 참전 유공자로, 생전 고엽제 후유증을 앓았다. 1977년부터 21년간 소방관으로 일했고, 2004년 공 소방위가 소방관이 되면서 부자(父者) 모두 소방공무원이 됐다. 공 소방위는 “아버지께 ‘불을 끄다 죽는 게 무섭지 않으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죽는 게 무서우면 소방관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해 주셨다”며 “아버지의 말을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 했다.

공 소방위 본인은 2020년 대한적십자로부터 헌혈 유공자 명예장을 받았다. 공 소방위는 처음 소방관의 길에 들어섰을 때부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며 헌혈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꾸준히 이어온 헌혈은 193회를 기록했다. 광복회와 대한적십자사 등에도 수년간 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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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후손 초청 오찬에 참석한 부천소방서 공병삼 소방위가 독립운동가 허석 선생의 5대손이자 2024 파리 올림픽 유도 은메달리스트 허미미 선수와 사진을 찍고 있다. 공병삼 소방위 제공

공 소방위 가족은 지난 6월 국가보훈부가 주관하는 ‘명예로운 보훈 가족’에 선정됐다. 지난 14일엔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독립유공자 후손 초청 오찬에 초대받았다.

공 소방위의 꿈은 화성·용인 선산에 모신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신 아버지를 한 데 모셔 ‘3대 국가유공자 묘역’을 만드는 것이다. 공 소방위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여러 상황 등으로 증조할아버지와 할아버지, 아버지를 화성과 용인, 대전에 각각 모시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한 곳에 모셔서 부자의 정을 나누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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