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색시 나오는 술집서 일했다" 서울대 나온 이문열의 방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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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더중플 - 이문열, 시대를 쓰다

누구보다 큰 사랑을 받았고, 누구보다 격렬하게 미움 받았던 작가 이문열. 오늘의 '추천! 더중플'은 '이문열, 시대를 쓰다'(https://www.joongang.co.kr/plus/series/222)입니다. 이문열의 회고록 가운데 작가가 되기 전, 방황하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추려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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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시 나오는 술집서 방우 노릇, 젊은 날의 방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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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고등학교 1학년 때. 맨 오른쪽이 이문열씨다. 사진 이재유

나는 어렵사리 들어간 서울사대 국어과에서 한 학기도 버티지 못하고 귀향했다. 이듬해 봄 다시 학교로 돌아갈 때까지, 집 나가 떠돌며 1968년 가을에 겪었던 일들을 1981년 출간한 소설 『젊은 날의 초상』에 써먹었다. 이 소설의 3부 '그해 겨울'에서 작중 화자는 경상북도 어느 산촌의 술집에 '방우'로 있던 시절을 회상한다. 방우는 불목하니, 즉 땔나무를 베고 물을 긷는 허드레 일꾼을 뜻하는 보통명사였다.

실제의 나는 방우 노릇을 산촌이 아니라 고향 석보(경북 영양군 석보면)의 장터에서 했다. 당시 큰 형님이 여인숙 겸 술집을 차렸다. 소설에서처럼 색시가 있었다. 나는 술병 하나, 석유병 하나씩 꿰차고 아홉 개 방을 돌며 군불을 때곤 했다.

직업 작가로서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품었던 것은 '방우' 노릇을 끝내고 학교로 돌아가 1969년 서울사대 문학회 활동을 할 때였다. 학생운동권이 박정희 대통령의 삼선개헌 반대 데모에 나서는, 무척이나 어수선한 상황이었다. 200자 원고지 60쪽 분량의 ‘역(驛)의 의미’라는 단편을 부리나케 써서 소위 합평회라는 데서 발표했다. 작품을 통독(通讀)하는 데 45분쯤 걸렸을 것이다. 읽는 내내 쥐죽은 듯 조용했다. 읽기를 마치자 ‘악~’ 하면서 사람들이 깨어나는 게 느껴졌다.

사람들의 갈채. 누구보다 열심히 산다고 살았지만 아직 아무것도 아니었던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맛본 성취의 기쁨이었다. 잠깐이었지만 정신이 멍해질 정도였다. 그제야 내 안에 강한 자기현시(顯示) 욕구나 갈채에 쉽게 도취되는 특성, 문사적인 기질이 있음을 알아차렸던 것 같다.

내 문학열은 불붙었다. 69년 한 해 동안 나는 열 편 넘는 단편과 한 편의 장편을 썼다. 그런데도 나는 문학을 나의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운명을 거부하는 싸움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젊은날의 나는 작은 성취일망정 애써 이루어놓은 것들로부터 한사코 떠나려 했다. 사범대라고 하지만 그래도 서울대인데, 70년 초 사법고시에 도전하겠노라며 다시 훌쩍 떠난 뒤 결국 돌아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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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시 술집 ‘방우’ 일도 해봤다…탄광·사시, 내 방황의 긴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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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 아버지의 유산, 삶의 원형은 떠돌이였다 

반복되는 출분(出奔)의 원인은 보다 근원적인 데서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우리 가족의 삶은 돌이켜 보면 거의 구걸에 가까운 적빈(赤貧) 속에 방치되다시피 한 경우가 많았다. 정들만 하면 떠나야 했다. 경찰에 소재 파악만 되면 언제 어떻게 잘못될지 모른다는, 어머니의 병적인 피해의식 때문이었다.

어느새 내 삶의 원형은 떠돌이였고, 존재의 양식은 외로움이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한사코 집이라는 울타리를, 정든 학교를, 틈만 나면 떠나려고 했던 것은. 학교에 돌아가기도 마땅치 않고, 집에 있자니 가족들의 시선이 따가워, 말하자면 해 질 녘에 길 떠났다가 겪은 일들이 『젊은날의 초상』에 나오는 일탈과 방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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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중플-이문열, 시대를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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