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에스파와 함께 돌아왔다, 추억의 MP3 '아이리버' 부활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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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멘터리

브랜드에도 걸음걸이가 있다고 하죠. 이미지와 로고로 구성된 어떤 브랜드가 사람들에게 각인되기까지, 브랜드는 치열하게 ‘자기다움’을 직조합니다. 덕분에 브랜드는 선택하는 것만으로 취향이나 개성을 표현하고, 욕망을 반영하며, 가치관을 담을 수 있는 기호가 됐죠. 비크닉이 오늘날 중요한 소비 기호가 된 브랜드를 탐구합니다. 남다른 브랜드의 흥미로운 디테일을 들여다보고, 그 설레는 여정을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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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파 정규 1집 앨범 '아마겟돈'이 지난달 CDP 버전으로 출시됐다. SM엔터테인먼트

흥행과 별개로 눈여겨볼 건 이 CDP를 만든 곳입니다. 바로 한때 MP3플레이어로 유명했던 ‘아이리버(현 드림어스컴퍼니)’예요. 2000년 초까지 이 단일 품목으로 국내·외 시장 1위를 휩쓸었던 회사는 애플 아이팟이 등장하면서 소리소문없이 대중의 기억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그러다 최근 K팝을 이끄는 걸그룹 에스파와 손잡고 갑자기 존재감을 드러냈죠. 세기말 트렌드를 대표하던 기업이 20여년 만에 당시의 감성을 들고 다시 나타난 겁니다. 지난 20여년간 아이리버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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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버'를 만든 양덕준 레인콤 대표. 중앙일보

잠시 과거로 떠나 봅니다. 2000년 출시된 삼각 스틱형의 아이리버 MP3는 당시 충격적인 디자인이었어요. 소니 워크맨 등 카세트에 테이프를 넣거나 CD를 넣어 음악을 들었던 80~90년대와 비교하면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믿기지 않는 기술이었죠. 이후 점점 큰 용량을 가진 제품이 소개되면서 아이리버의 MP3 신제품 구매는 당시 중고생들의 자랑거리 중 하나였습니다. 미키마우스 모양 등 다양한 디자인으로 출시되면서 패션 아이템으로 여겨지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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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버가 최초로 출시한 MP3인 'iFP-100'. 드림어스컴퍼니

소비자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건 당연했습니다. 아이리버 MP3는 삼성전자도 밀어내고 국내 시장의 70%를 차지하더니, 2001년엔 미국 진출 6개월 만에 미국 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합니다. 덕분에 아이리버를 만든 회사(당시 사명은 레인콤)는 창립 3년 만인 2002년, 코스닥 시장에 안착하고, 5년만인 2004년엔 4540억원의 매출을 만들었습니다. 한국 중소기업의 벤처 신화가 시작된 거죠. 삼성전자 출신으로 회사를 세운 양덕준 대표는 당시 신흥 갑부 대열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경쟁 기업으로 삼고,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가 극찬할 정도로 세계적 인기도 대단했죠.

애플 씹어 먹으려다가 되려 씹힌 아이리버

아이리버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애플이 2005년 저렴한 가격에 세련된 디자인을 무기로 아이팟을 출시하면서 아이리버의 경쟁력이 약해집니다. 아이팟에 아이튠즈 음악 서비스가 연동되는 음원 시장이 열리면서 아이리버의 새로운 모델은 해외 시장에서 외면받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리버는 미국 전역에 사과 씹는 광고를 내고, 마이크로소프트와 협업하면서 애플에 대항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EBS가 2014년 방영한 다큐멘터리 ‘패자부활전 하프타임’에서 정석원 당시 아이리버 마케팅실 상무는 “음악 중심 생태계가 아니라 제품에만 포커스를 맞췄기 때문에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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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리버가 2004년 낸 애플 씹는 광고. 드림어스컴퍼니

아이리버는 생존을 위해 전자사전∙블랙박스∙내비게이션 등 제품 다각화를 시도하지만, 회사를 일으킬 정도의 성과를 내진 못 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폰 열풍이 불자 아이리버는 기업 존폐 위기에 직면합니다. 한때 약 4500억원의 매출을 냈던 기업이 2013년 매출 500억 원대로 뚝 떨어지고, 적자도 쌓였죠.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 론칭…가장 잘하는 일로 찾은 돌파구

아이리버는 그렇게 시장에서 조용히 사라진 듯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아이템으로 기사회생합니다. 바로 고급 음향기기입니다. 아이리버는 당시 고화질 TV가 등장하면서 여기에 걸맞은 오디오를 누리고자 하는 소비자의 욕구를 발견합니다. 국내를 넘어 일본∙유럽 등 해외에서도 프리미엄 오디오 시장이 커지고 있던 때였습니다.

아이리버는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 ‘아스텔앤컨(Astell&Kern)’을 만들고, 2013년 10월, 첫 고음질 음향기기 모델 ‘AK100’을 출시합니다. 음향기기는 MP3 제조사로서 노하우를 쌓은 아이리버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였죠. 대형 오디오 장비로만 들을 수 있었던 고음질 음악을 스마트폰 크기의 휴대용 기기로 감상할 수 있게 되자 70만 원대라는 다소 비싼 가격에도 소비자들은 호응했습니다. 출시 3개월 만에 100억원 매출을 냈고, 적자의 늪에 빠졌던 아이리버는 흑자로 전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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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텔앤컨의 첫 프리미엄 음향기기 'AK100'. 드림어스컴퍼니

아스텔앤컨은 아이리버 부활의 1등 공신이었습니다. SKT가 아이리버를 인수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2014년 SKT는 스마트 액세서리 사업 강화와 고음질 기술 노하우를 얻기 위해 생환에 성공한 아이리버를 295억원에 인수하고, 지분 약 39%를 가져갑니다. 아이리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죠.

음원 유통부터 MD까지…기기 넘어 음악 산업에서 찾은 기회

음향기기 제조에만 집중했던 과거와 달리 아이리버는 음악 시장 전체를 노리기 시작했습니다. 2017년 SM엔터테인먼트가 협력 차원에서 아이리버의 지분을 가져가면서 아이리버는 음원과 음반을 유통하는 것은 물론, 최근까지 SM의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해 만든 응원봉과 굿즈 등 MD 상품 제작도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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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싸이 흠뻑쇼 공식 MD와 ARTMS 공연 MD. 드림어스컴퍼니

이 외에도 JYP, 하이브(당시 빅히트)의 음원과 음반을 유통하고, 2019년부턴 SKT의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 ‘플로(FLO)’ 운영도 맡으면서 음악 시장을 이끄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때 사명도 아이리버에서 ‘드림어스컴퍼니’로 바꾸죠. 현재 드림어스컴퍼니 매출은 지난해 기준 약 2700억으로, 이 중 85%가 FLO∙음원 및 음반 유통∙MD∙공연 등 음악 부문에서 나올 정도로 음악 산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드림어스컴퍼니가 전자 기기 시장을 완전히 놓은 건 아닙니다. 아이리버 브랜드를 유지하면서 MP3∙이어폰∙CDP 등 음향 가전과 함께 제습기∙무선충전기 등 생활가전을 만들고 있죠. 김준환 드림어스컴퍼니 아이리버 사업유닛장은 “과거 아이리버는 MP3에만 집중했는데, 소비자의 일상에서 쓰이는 라이프 스타일 디바이스 브랜드로 나아가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비크닉’ 유튜브 채널의 ‘B사이드’에선 아이리버의 근황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다뤄봅니다. 음모론적인 질문으로 브랜드의 의도를 파헤쳐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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