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옥 촬영만 30년간 150채…사진집 3권 동시에 낸 이동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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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이동춘이 찍은 대구 광거당. 사진 이동춘

“전국이 장마전선 영향을 받겠다”는 일기예보를 들으면 사진작가 이동춘(62)은 집안 방수 걱정을 하는 게 아니라 SUV 차량에 시동을 걸고 남쪽으로 향한다. 장마가 잠시 소강상태일 때 물안개가 피어오른 경북 안동의 고택들이 얼마나 몽환적일지 상상만 해도 가만있을 수 없어서다. “막상 내려가면 비가 그쳐 쨍쨍하곤 해요. 연 주행거리가 평균 4만~5만㎞인데 촬영 허탕 치는 게 열 번, 제대로 찍는 건 한두번? 그저 기다림과의 싸움이죠.”

그렇게 30년을 매달린 그가 최근 3권의 한옥 책을 동시에 냈다. 사진집 『덤벙주초 위에 세운 집』 『궁궐 속의 한옥』과 2021년 출간했던 해설집 『한옥·보다·읽다』(공저 홍형옥)의 영문판이다. 『덤벙주초…』는  민가나 서원·향교 사진이 주축이고 『궁궐 속…』은 창덕궁 내 연경당·낙선재의 사시사철을 담았다. 모두 10년, 20년씩 걸려 ‘기다림과의 싸움’ 끝에 포착한 한옥의 멋과 아름다움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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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이동춘이 찍은 상주 양진당. 사진 이동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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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이동춘이 찍은 창덕궁 연경당. 사진 이동춘

지난달 31일 그를 만난 곳은 서울 북촌 한옥마을. 소나기 빗방울을 머금은 한옥 지붕들을 둘러보던 그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서울은 옆집과 간격이 좁아서 한옥 처마가 이것밖에 안 나오지만, 전통 처마를 제대로 빼면(길게 뻗게 하면) 툇마루로 비가 들이치지도 않고, 들이쳐도 금세 말라요. 서울이 마치 표준처럼 돼버렸는데, 원형 그대로의 한옥이 사라지기 전에 나라도 기록해두자 했던 게 벌써 세월이 이렇게 됐어요.”

잡지 『행복이 가득한 집』출신의 그가 한옥 촬영에 본격 뛰어든 건 2004년 고속철도(KTX) 개통이 계기였다고 한다. 프리랜서 사진가로 전국의 KTX 노선·역사 홍보 촬영을 맡았는데, 드론이 없던 시절에 교각 위의 열차를 찍으려면 산중턱까지 올라가야 했다. “소위 명당 자리엔 항상 무덤 아니면 제사(第舍·살림집과 정자를 통틀어 이르는 말)가 있는데, 거기서 저녁 짓는 연기라도 모락모락 올라오면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어요. 막 40대 들어선 터라 앞으로 난 뭐할까. 누구는 소나무, 누구는 야생화를 죽자고 찍는데 그럼 난 한옥을 찍자 싶었죠. 이동춘이 찍는 한옥 사진은 뭔가 다르다는 말을 이미 듣던 터였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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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들고 포즈를 취한 이동춘 사진작가. 박종근 기자

마음먹고 찾아간 안동 고택은 각오했던 것 이상이었다. 부모가 북한에서 월남한 그에게 족보를 따지는 게 낯설었고, 1년에 수십 번씩 도포에 갓 차림으로 제사 지내는 풍경은 “조선 왕조가 망한 지 100년이 넘었는데 이게 뭔가” 싶게 어리둥절했다. 1~2년이면 그럴 듯한 한옥 사진 건질 거라 생각한 게 오산이었다. 이색 풍경에 “이건 왜 이런 거죠?” 물어도 대꾸 않는 이들 속으로 파고들어야 했다. 모르는 여자가 종가(宗家)에 얼씬거리는 걸 못마땅해하는 어르신을 설득하며 짧은 머리에 남자옷 차림을 자처했다. “제례 근접 촬영을 위해 문턱을 넘는 데 3년 걸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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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이동춘이 찍은 안동 군자리 후조당. 사진 이동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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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이동춘이 찍은 창덕궁 낙선재. 사진 이동춘

그래선지 그의 한옥 사진은 어딘가 다르다. 밖에서 힐끗대며 찍은 게 아니라 안방에 턱 걸터앉아 밖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대를 이어 같은 집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생활에서 수백년 묵은 아름다움을 잡아낸다. “그분들은 매일 사는 곳이라 ‘이렇게 예쁜지 미처 몰랐다’ 해요. 안방 벽지에 깃든 햇살을 따사롭게 잡아낸 사진이 있는데, 그 집 주인이 ‘이건 우리 아니고 옆집 같다’고 해서 제가 정확한 촬영 시점까지 콕 짚어드린 적도 있어요.”

그 멋을 그는 차경(借景, 경치를 빌리다)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집의 창과 문을 액자처럼 활용해 밖의 경치를 잠시 빌려 감상한다는 뜻으로 전통 한옥의 건축미학이기도 하다. 이런 찰나의 자연을 카메라에 담으려면 어지간한 상상력과 노력으론 안 된다. “고즈넉한 마루에 앉아서 이 풍경에 눈이 오면 어떨까 상상했다가 눈 소식에 냅다 달려가는 거죠. 그렇게 수시로 드나들려면 그 집이 제집 같아야 하고 그분들도 저를 내치지 않으셔야 하니, 사진 찍기 앞서 정을 쌓는 게 우선이었죠.”

그 중에서도 그를 매료시킨 안동 군자마을 후조당은 임진왜란 전에 지어졌다. 1974년 안동댐이 생기면서 수몰 위기에 처하면서 현재 위치로 옮겨왔는데 이 과정에서 건물을 뜯다보니 상량문 외에 고려말 입향조(入鄕祖·맨 처음 터를 잡은 사람)의 문서부터 600년전 분재기(分財記·재산의 상속과 분배를 기록한 문서)까지 나왔다. “서울 한옥은 기껏해야 100년인데, 600년 운운하니 가슴이 설레더라고요. 건물만이 아니라 그 세월을 담고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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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이동춘이 찍은 안동 만휴정. 사진 이동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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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이동춘이 찍은 병산서원 배롱나무. 사진 이동춘

알 수록 달리 보인다고, 물어물어 편액(현판)의 뜻을 알고 나면 또 달라 보였다. 예컨대 후조당의 후조(後彫)는 논어의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歳寒然後知松柏之後凋)’에서 왔다.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드는 것을 안다, 즉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선비의 지조를 뜻하죠. 더 뒤에 그려진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歲寒圖)에도 등장하는데 이런 걸 알고 나면 겨울에 또 찍고 싶어지죠.”

“여태 찍은 한옥이 150채가 넘는다”는 그는 그간 미국 LA한국문화원을 비롯해 독일과 헝가리, 불가리아 등에서 전시회를 열었고 올해 초엔 프랑스 파리의 갤러리에서 전통 한지에 프린트한 고택 사진을 선보여 주목 받았다. 이번에 『한옥·보다·읽다』 영문판을 낸 것은 세계에 한옥의 멋과 특색을 보다 널리 알리고 싶어서다. 총 3권 동시 출간에 크라우드펀딩을 포함해 제작비 마련에 쩔쩔 맸으면서도 다음 사진을 궁리 중이라고 했다.

“저는 전통 한옥이 손글씨 같다고 표현하는데, 같은 재료란 게 있을 수 없고 같은 목수가 지어도 다 달라요. 대구 광거당(廣居堂)의 회화나무 꽃이 마당에 눈처럼 쌓일 때가 정말 고운데 아직 제때 포착을 못했어요. 이렇게 집집마다 다르고 계절마다 다르니 아직 찍을 곳, 알릴 곳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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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이동춘이 펴낸 『덤벙주초 위에 세운 집』 표지. 사진 이동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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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이동춘이 펴낸 『궁궐 속의 한옥』 표지. 사진 이동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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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작가 이동춘의 『한옥·보다·읽다』 영문판 표지. 사진 이동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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