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평생 안 내놓았던 소품에서 본 ‘아버지의 바다’…'프리즈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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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에 대해 말을 아꼈던 아버지의 1964년도 ‘작품’(136x194㎝)에 아들은 ‘대지(Terra Firma)’라는 부제를 붙였다. 이번 전시작 중 가장 크다. 사진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여름엔 마당에서 러닝셔츠 바람으로 못을 입에 문 채 캔버스 틀을 직접 짜느라 땀을 뻘뻘 흘리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유진 이사장이 기억하는 아버지 유영국(1916~2002)의 모습이다. ‘유영국의 자연: 내면의 시선으로’가 서울 삼청로 PKM 갤러리에서 21일부터 열린다. 전시된 1950~80년대 유화 34점 중 21점이 한 번도 공개되지 않은 채 유족들이 간직하던 그림들이다. 19일 전시장에서 만난 유영국재단 유자야 이사는 “겨울에는 난방비를 아끼려고 작업실을 나와 안방 앞 좁은 마루에서 소품을 그리셨다. 사람들이 소품이니까 싸게 사려 하자 아버지가 ‘가격은 그렇게 매기는 게 아니’라며 아예 팔지 않고 보관해 오던 것들을 이번에 선보이게 됐다”고 말했다.

PKM갤러리 ‘유영국의 자연: 내면의 시선으로’ #'프리즈 서울' 앞두고 화랑가 ‘장외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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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서울 약수동 집 앞마당에서 작업중인 유영국. 사진 유영국미술문화재단방배동 집 화실의 유영국

색과 면으로 이뤄진 그림을 그리며 “추상은 말이 없다”고 했던 유영국이다. 유진 이사장은 “아버지는 과묵했다. 어릴 적 어떤 그림이 좋은지 여쭈어도 ‘네가 좋은 게 좋은 거다’ 하고는 그만이셨다”고 돌아봤다. 이중섭(1916~56)의 2년 선배로 1938년 도쿄 문화학원을 졸업했고, 미술창작가협회에서 활동했던 유영국이다. 그러나 일제 말 고향 울진에까지 특별고등경찰의 감시가 미치자 고기잡이에 나섰고, 6ㆍ25로 피란 와서는 양조장을 운영했다. 유진 이사장은 "아버지의 그림에서는 울진 앞바다, 배후의 산, 고기잡이배에서 만났을 일출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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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기가 작아져도 색과 형태로 추구한 밀도는 그대로다. ‘작품’(1964ㆍ25.2x35.5㎝). 사진 유영국미술문화재단

풍경화도 아니건만 빨강과 녹색을 주조색으로 한 그의 그림에서 사람들은 산과 바다를 본다. 자연을 모티프 삼은 '유영국 월드'는 소품에서도 그대로다. 그린 뒤 긁어내거나, 화면을 다 채우지 않고 흰 여백을 군데군데 남긴 그림도 있다. 고(故) 정병관 미술사학자는 생전에 유영국에 대해 “구상과 추상 사이에서, 전통과 현대성 사이에서, 화면 구성의 지혜에 있어 중도를 걷고 있다. 강한 것과 유연한 것 사이에 그 자신의 독특한 회화 세계를 구축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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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국의 자연: 내면의 시선으로’ 전시장면. 가운데 노란 그림에서 아들인 유진 유영국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은 “고기잡이 배에서 맞았을 일출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사진 PKM갤러리

김환기와 함께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꼽히는 유영국의 전시는 최근 해외에서도 활발하다. 지난해 뉴욕 페이스갤러리에서 해외 첫 개인전을 열었다. 올해는 세계 최대의 미술제인 베니스 비엔날레의 공식 병행전시로 퀘리니스탐팔리아 재단에서 유럽 첫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PKM 갤러리는다음 달 초 열리는 국제아트페어 ‘프리즈(Frieze) 서울’에서 유영국의 1973년도 대작을 주요작으로 소개한다. 전시는 10월 10일까지, 무료.

#세계 최대 갤러리 거고지언 국내 첫 전시…뜨거운 ‘키아프리즈’  장외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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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릭 애덤스의 ‘Where My Girls At?’. 사진 거고시안

9월 4일 서울 코엑스에서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프리즈가 개막한다. ‘키아프리즈’는 아트 바젤과 함께 세계적 아트페어로 꼽히는 프리즈와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키아프가 공동으로 여는 미술품 견본시로 올해 3회째다. 글로벌 화랑들도 프리즈 서울에 맞춰 페어장 밖에서 전시를 열며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세계 최대 화랑 중 하나인 미국 거고지언(Gagosian)은 서울 아모레퍼시픽 미술관 캐비닛에서 9월 3일부터 10월 12일까지 데릭 애덤스(54)의 개인전 ‘더 스트립’을 연다. 도시 쇼윈도에 놓인 색색의 가발을 쓴 마네킹 두상을 경쾌하게 그린 신작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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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스트 안테스, 아침 집, 1986, 목판에 아크릴. 사진 마이어 리거

독일 화랑 마이어 리거는 베를린ㆍ카를스루에ㆍ바젤ㆍ뉴욕에 이어 서울에 아시아 첫 지점을 연다. 9월 3일 개관전으로 호르스트안테스(1958~2010) 개인전을 준비했다. 신형상회화를 이끈 독일 대표 구상 화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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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 No, 16, 1951. 사진 페이스갤러리

페이스 갤러리 서울은 다음달 4일부터 10월 26일까지 ‘조응: 이우환과 마크 로스코’를 연다. 1960년대 후반 일본 전위예술 그룹 모노하를 주도한 이우환이 로스코 유족과 협업해 기획에 참여했다. 로스코(1903~70)는 뉴욕 화파의 선구자로 거대한 색면 회화로 숭고미를 불러일으킨다. 이우환(88)의 2018~23년작과로스코의 1950~60년대 회화가 갤러리 2개 층에서 함께 전시되며 붓질과 색채로 사색을 유도한다. 강철판에 무거운 돌이 떨어지는 모습의 조각인 이우환의 신작 ‘관계항-조응(Relatum-Correspondence)’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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