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강원·제주도 가장 위험하다…한반도 덮칠 이상기후 재앙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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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와 폭염이 계속되는 가운데 지난달 29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 고랭지 배추밭에서 농민들이 배추를 수확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에서 고도가 높은 지역 중 하나인 강원도 태백시 매봉산 인근의 고랭지 배추밭 40만평 중 30%는 올해 휴경에 들어갔다. 전국에서 가장 서늘한 곳이지만, 올여름엔 한낮 기온이 33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닥치면서 배추 농사가 예전 같지 않아졌다. 지난해 집중호우 직격탄을 맞았던 이곳 농민들은 올해에는 폭염 피해에 울상이다. 농업진흥청은 기후 변화에 따라 2050년대엔 여름 배추 재배지가 눈에 띄게 줄고, 2090년대에는 아예 사라질 거란 전망을 내놨다.

기후변화가 농림어업 등 산업 생산에 주는 악영향이 갈수록 커지자, 한국은행이 이상 기후 지표인 ‘기후위험지수(CRI, Climate Risk Index)’를 최초로 개발해 내놨다. 기후 변화 추이를 종합적으로 포착하고,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함이다. 19일 한국은행 전북본부 정원석 기획조사팀 과장 등 연구진은 ‘이상기후가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발표했다.

기후위험지수는 ▶이상고온 ▶이상저온 ▶강수량 ▶가뭄 ▶해수면 높이의 변화 추세를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지표다. 1980~2000년을 기준 기간으로 두고, 2001~2023년의 기후 변화 추세를 포착했다. 기준기간의 월별 상위 10%에 해당하는 기온보다 높거나 낮은 날의 빈도 수, 매월 비가 가장 많이 내린 5일에 대한 강수량 합계, 월별 평균 해수면 높이 등을 표준화해 하나의 기후위험지수로 나타낸다.

연구진 분석에 따르면 2001년 이후 이상 기후 위험성은 눈에 띄게 증가했다. 1980~2000년 기후위험지수 평균을 0으로 설정했을 때, 2001~2023년 기후위험지수 평균은 1.731로 상승했다. 해수면 높이가 갈수록 높아지고 이상고온 빈도가 높아지면서 전체적인 기후위험지수를 끌어올린 것이다. 가뭄 빈도가 2015년 이후 잦아진 것도 영향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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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변화 추이를 지역별로 분석해 보면 강원도와 제주도에서 기후위험지수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지난해 12월 기준 전국은 2.77을 나타낸다면, 강원(3.73)과 제주(3.63)에선 이를 상회하면서다.

강원도에선 이상고온 빈도 증가세가, 제주도에선 해수면 높이 상승세가 전체적인 기후위험지수를 끌어올렸다. 1985~2023년 사이 타 지역 평균 기온이 3도 상승했을 때, 강원도에선 4.3도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해의 수온 상승에 따른 열팽창효과가 발생한 영향으로 분석된다. 제주에선 1985~2023년 사이 해수면 높이가 19㎝ 상승해 타지역 평균(11㎝)을 크게 웃돌았다.

이는 각 지역의 산업 전반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제주에서는 이상기후 충격이 지역 산업생산을 최대 0.65%포인트 깎아내릴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당장 올여름 제주에선 폭염으로 인해 수온이 28도를 넘어 양식 어류 집단 폐사가 잇따랐고, 당근 등 농작물도 가뭄 피해를 보고 있다.

산업생산 깎아내리는 이상기후

최근 들어 산업생산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은 더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정원석 과장은 “과거(1980~2000년)에는 이상기후 변화가 산업생산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2001년 이후에는 부정적 영향이 과거에 비해 크고 지속적인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특히 농림어업의 경우 이상기후가 성장률을 최대 1.1%포인트 깎아내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폭염이나 폭우 등 예상치 못했던 기상 이변이 발생하면 약 12개월 뒤 산업생산 증가율을 0.6%포인트 깎아내린다. 원자재 수급에 차질이 생기고, 재고 유지비용이 증가하면서다. 노동생산성도 줄어든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구 온도가 21세기 말까지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상승한다는 전제하에 2030년 노동시간 감축 규모를 풀타임 일자리 개수로 환산하면 8000만개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기후가 끌어올린 물가, 상승세 더 오래간다

이상기후가 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다. 연구진은 예상치 못했던 기상 이변이 발생하면 물가를 최대 0.03%포인트 끌어올리고, 물가 상승세가 6개월가량 지속한다고 봤다. 과거(1980~2000년)와 비교하면 이른바 ‘기후 충격’으로 인한 물가 상승 지속성이 2개월 정도 더 길어졌다. 대표적인 게 농산물 등 식료품 물가다. 이상기후가 식료품 물가에 미치는 영향만 따로 떼서 보니, 지속 기간은 9개월 정도로 분석됐다. 지난해 사과값이 전년 대비 2배 넘게 오르자 다른 과일 수요까지 끌어올려 '도미노 물가 상승'을 유발한 것이 그 예다. 농산물 가격은 다른 가공식품 가격에도 시차를 두고 영향을 준다.

한편 연구진이 최근의 물가 상승세를 별도로 분석해보니, 이상기후가 지난해 물가 상승분의 약 10%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물가를 움직이는 주요 요인으로 기후 변화가 비중 있게 자리잡은 것이다. 지난 6월 한국은행은 월 평균 기온이 장기 평균 대비 1도 상승할 경우, 1년 후 농산물 가격은 2%, 전체 소비자물가는 0.7% 상승할 것이라고 분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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