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나 화장실 갈거야, 예약해줘"…공유 오피스의 비밀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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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레디 빌딩, 공유 오피스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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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풍경이 바뀌고 있다. 빌딩숲 속 네모난 사무공간에서, 첨단 디지털 기술과 서비스 콘텐트로 무장한 ‘테크레디’(Tech Ready) 빌딩으로다. 테크레디 빌딩의 핵심은 건물 내 콘텐트를 잇는 ‘연결성’(Connectivity)이다. 건물 운영은 운영체제(OS) 기반 애플리케이션으로 한다. 사물인터넷(IoT)과 클라우드를 활용해 출입·공조·보안 등 각종 데이터를 한데 모아 관리한다. 입주 기업들이 건물 자체를 기술 테스트베드(실험 무대)로 쓸 수 있는 이유다. 최근 이런 테크레디 빌딩을 공유오피스처럼 빌려주는 빌딩이 등장했다. 지난 2월 준공한 서울 성동구 ‘팩토리얼 성수’다. 입주사에 공간을 빌려주고 문화를 공유하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최첨단 정보기술(IT) 인프라까지 제공한다. 다른 기업에 공간·인프라를 공유하는 일종의 오픈형 테스트 베드다. 이런 흐름 계속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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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과 첨단 디지털 장비로 무장한 미래형 오피스인 서울 성동구 팩토리얼 성수의 지하 라운지. 술·말·일이라는 콘셉트로 트렌디한 바와 안락한 소파, 워크데스크 등이 자리 잡고 있어 입주사 직원들이 자유롭게 여가를 즐기며 네트워킹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김경록 기자

◆ 오픈형 ‘테스트 베드’ 뜬 공유오피스=서울 성수동 카페거리 근처에 위치한 팩토리얼 성수에선 로봇을 흔하게 만날 수 있었다. 지난달 23일 오후 이 건물 엘리베이터에 들어가자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로봇 ‘달이 딜리버리’가 졸졸 따라 들어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뒤 정적의 시간, 달이는 이렇게 말을 걸어왔다.

“저는 지금 이동 중이에요. 제 월급이 얼마냐고요? 여러분이 사랑해주시는 만큼이요.”

달이는 무선통신으로 배달해야 할 층수를 눌렀고, 해당 층에 엘리베이터가 멈춰 서자 유유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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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지상 10층, 지하 5층 규모의 팩토리얼 성수 입주사들은 공유차량을 빌려 쓸 수 있다. 앱으로 대여 신청하면 지하 주차장에 있는 주차 로봇이 주차 칸에서 차를 꺼내 바로 몰고 갈 수 있도록 준비해준다. 반납 때는 주차 구역에 아무렇게나 차량을 두기만 해도 주차 로봇이 대신 주차해준다. 현대위아가 제작한 이 주차 로봇은 얇고 넓은 형태의 로봇 한 쌍이 차량 하부에 들어가 바퀴를 들어 올려 차를 옮긴다.

이 건물 화장실에 가봤다. 각 층 화장실엔 대기 줄이 없다. 모바일 앱에서 화장실 사용가능 여부를 미리 확인할 수 있어서다. 모바일 앱은 입주사 직원들에게 ‘리모콘’이나 다름없다. 사무실 출입부터 공간 예약, 차량 대여, 음료배달, 회의실·라운지 등 공용공간의 혼잡도 확인, 냉난방기·조명 제어, 로봇청소기 작동 등 건물을 100% 활용하는 데 필요한 모든 제어가 앱에서 이뤄진다.

코로나 타격 뒤 신기술 무장…국내선 팩토리얼 성수 대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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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동구 팩토리얼 성수에서 자율주행로봇 ‘달이’가 주문받은 커피를 오피스에 배달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이런 테크레디 빌딩을 먼저 선보인 건 IT 대기업 네이버다. 네이버가 지난 2021년 입주한 신사옥 네이버 1784는 이 회사가 개발 중인 신기술을 테스트하고 상용화하는 기술 플랫폼으로 설계됐다. 건물 곳곳엔 네이버의 로보틱스, 자율주행, 인공지능(AI), 5세대(5G) 통신, 클라우드 기술 인프라가 녹아들어 있다.

건물엔 네이버의 자율주행 로봇 루키가 자유롭게 층을 이동할 수 있도록 세계 처음으로 로봇 전용 엘리베이터도 설치돼 있다. 각 출입구에는 얼굴 인식으로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클로바 페이스사인’, 회의실에선 자동으로 회의록을 작성해 공유해주는 ‘클로바노트’ 기능 등을 이용할 수 있다.

팩토리얼 성수는 부동산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이 설계했다. 첨단 기술 인프라 구축엔 현대차그룹 로보틱스랩(자율주행로봇), 현대위아(주차로봇), 삼성전자(비즈니스용 사물인터넷 솔루션) 등이 참여했다. 이들 기업의 목표가 ‘기술의 실제 적용’이었던 만큼 사옥 밖에서 다양한 기술을 테스트해볼 수 있고, 건물주는 부동산 가치를 높일 수 있어 양측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다.

현대차·CJ 등 대기업들도 “신기술 테스트베드”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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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에선 앱으로 화장실 혼잡도까지 미리 확인할 수 있다. 김경록 기자

김현수 이지스자산운용 공간투자그룹 상무는 “새로운 기술과 산업은 부동산 시장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친다. 기존 산업에선 부동산이 총무의 영역이었다면, 신산업에선 인재를 영입할 수 있는 기업의 경쟁력과 결부돼 HR(인사)의 영역이 됐다”며 “이 때문에 ‘팩토리얼 성수’를 3세대 오피스라고 정의하고 싶다”고 말했다.

1세대 오피스가 공간과 전화기·팩스·컴퓨터 등 워크스테이션을 갖추는 데 그쳤다면, 2세대 오피스에선 입주자 커뮤니티를 고려한 각종 부대시설을 갖췄다. 이젠 첨단 기술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3세대 오피스 시장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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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자들은 앱을 통해 공유차량을 예약할 수 있다. 김경록 기자

◆ 인스타·우버도 공유오피스서 창업=초창기 공유오피스는 프리랜서나 소규모 스타트업에게 싸게 공간을 제공하는 게 전부였다. 업무 공간은 구분 지어 사용하되, 회의실·화장실·휴게공간 등은 공용으로 쓰면서 임대료·관리비 등을 절감하는 게 목표였다.

브래드 노이버그가 200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자신의 집을 낮시간 엔지니어들에게 빌려주며 ‘핫 팩토리’(Hot Factory)라고 이름 붙인 게 시작이다. 한 공간에서 다양한 직종의 사람들이 일하도록 한 ‘코워킹 스페이스’의 시초로, 공유오피스의 첫 사례로 알려져 있다.

전 세계에서 공유오피스 산업이 크게 성장한 건 2010년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이후 찾아온 저금리·호황기에 신기술로 돈이 몰렸다. 스타트업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위워크(WeWork)나 IWG(International Workplace Group) 등은 세계 다양한 도시로 뻗어 나갔다.

소셜미디어 인스타그램, 차량공유 서비스 우버, 음악스트리밍 서비스 스포티파이 등이 공유오피스에서 창업해 성공을 거둔 회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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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차량을 예약하면 주차로봇이 차를 꺼내 준다. 로봇 한 쌍이 차량 하부에 들어가 바퀴를 들어 올려 차를 옮긴다. 김경록 기자

◆ 공유오피스, 코로나 때 위기 맞았지만=그러나 2019년 말 코로나19가 터지며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그해 기업공개(IPO)를 추진했던 위워크는 재정적 위기에 직면, 이듬해 IPO 계획을 철회했다. 이후 위워크는 2021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IPO를 했지만, 2년만인 지난해 결국 상장폐지된다.

공유오피스 사업은 통상 부동산을 장기계약으로 확보해 스타트업 등에 단기로 빌려주는 전대(轉貸) 계약이다. 경기가 좋아 수요가 넘칠 땐 사업이 잘 굴러가지만, 경기 침체 땐 단기 입주 기업이 빠져나가는데도 임대료를 계속 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경제 불황이나 팬데믹과 같은 외부 충격에 위워크는 와르르 무너졌다.

“5년안에 글로벌 86조 시장” 공유 오피스 수요 커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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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토리얼 성수의 9~10층은 공유오피스로 꾸며졌다. 스타트업도 이곳에 입주해 첨단 테크 인프라를 이용할 수 있다. 김경록 기자

위워크는 지난해 11월 파산보호(챕터11) 신청을 하고 구조조정 끝에 지난 6월 새 대주주(아난트 야디 야디시스템즈 창업자)를 맞이했다. 800여개에 달하던 지점은 현재는 582개로 줄었다. 한국에는 서울·부산에 각각 17개·2개 지점이 있다.

토종 공유오피스 브랜드인 패스트파이브는 코로나19 팬데믹 전(2019년말) 지점 21곳에서 현재는 44곳으로 늘어났다. 매출도 425억원(2019년)→1261억원(지난해) 등으로 성장했다. 다만 아직 적자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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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근영 디자이너

공유오피스 브랜드 스페이스·리거스 등을 운영하는 세계 1위 사업자 IWG도 코로나19 이후 2020년부터 적자행진을 이어왔지만 최근 반전에 성공했다. 지난 6일 올 상반기 실적발표에선 13.68%의 영업이익률로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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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시장조사업체 GII에 따르면 글로벌 공유오피스 시장은 올해 413억9000만 달러(약 56조5400억원)에서 2029년 627억5000만 달러(약 85조7200억원)까지 성장할 전망이다. 위워크의 기세는 꺾였지만, 한국 등 글로벌 시장에서 공유오피스의 수요 자체는 계속 확대될 것이란 의미다.

최근엔 대기업들도 기술 인프라 같은 고정 비용을 절감하고, 신기술·신사업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공유오피스를 적극 활용한다. 실제로 ‘팩토리얼 성수’엔 현대차그룹 로보틱스랩, 올리브영, 아웃도어기업 컬럼비아 등이 입주해있다. 입주 기업 모두 신기술을 기반으로 사업영역 확장에 도전 중이란 공통점이 있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는 ‘기업’입니다. 기업은 시장과 정부의 한계에 도전하고 기술을 혁신하며 인류 역사와 함께 진화해 왔습니다. ‘기업’을 움직이는 진정한 힘이 무엇인지, 더중플이 더 깊게 캐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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