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새로운 음악이 주는 무한감동, 이 손으로 찾아내는 게 임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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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김혜진은 팬데믹 기간 동안 고민해 음악가들과 페스티벌을 2022년 시작했다. “한 무대에서 연주하는 일이 그리웠다”는 그는 3년째인 올해까지 한국 초연곡을 잇따라 들려준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실은 연주자들이 못한다고, 안 하겠다고 할까봐 그게 제일 걱정이었어요.”

피아니스트 김혜진(37)이 올해로 3년째인 음악제에 대해 설명하며 말했다. 그는 2022년부터 여름마다 ‘랑데뷰 드 라 무지크’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 예술감독을 맡아 매해 주제를 정하고 연주할 곡들을 고르며 연주할 음악가들을 선정해 프로그래밍한다. 지난 16일 서울 상암동에서 만난 그는 “새로운 곡을 소개하는 음악제로 차별화를 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간 연주되지 않았던 새로운 곡들을 골라 소개하다보니 연주자들이 낯설어할까 걱정이었다고 했다.

‘랑데뷰’ 페스티벌은 한국 초연곡을 꾸준히 소개했다. 첫 해에 4곡, 이듬해 2곡을 한국에서 처음 연주했다. 22~25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 IBK챔버홀, 리사이틀홀에서 열리는 올해 음악제에서도 그동안 국내 연주된 적 없었던 4곡을 초연한다. 영화 음악으로 유명한 존 윌리엄스의 ‘아름답고 간결한 선물’을 비롯해 작곡가 윌리엄 그랜드 스틸의 ‘파마나 댄스’, 미국의 1980년대생 작곡가 리나 에스메와 제시 몽고메리의 작품들이다. 특히 존 윌리엄스의 음악은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을 위해 작곡한 것으로 한국에서는 실연을 들을 기회가 없었다.

김혜진이 고르는 한국 초연곡들은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다. 이유 없이 난해한 대신, 신선한 아이디어와 시도가 이어지는 듣기 좋은 작품들이다. 또한 특별히 미국에서 활동하는 작곡가들의 신작이 많다.

“9년 전부터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 살고 있어요. LA는 새로운 것에 대한 탐닉이 활발해요. 젊고 덜 알려진 작곡가를 발굴하고 새로운 곡을 위촉하면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주죠. 거기에서 영감을 얻은 게 사실이에요.”

그는 현재 LA의 예술학교인 콜번 스쿨의 교수이며, 음악가들의 모임인 살라스티나 뮤직 소사이어티의 상주 피아니스트다. 김혜진은 “특히 살라스티나에서 젊은 작곡가들의 새로운 곡을 많이 연주하면서 현대음악에 대한 난해하다는 편견이 많이 깨졌다”고 했다. “어렵지 않으면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많이 찾아내는 일이 저의 임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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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서울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린 ‘랑데뷰 드 라 무지크’ 중의 한 장면. 왼쪽부터 백주영(바이올린), 김혜진(피아노), 임재성(첼로)이 연주하고 있다. [사진 스테이지원]

김혜진은 혼자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로 오랜 시간 살아왔다. 서울예술고등학교 재학 중 베를린으로 유학해 한스아이슬러 국립음대에서 최고연주자과정까지 마쳤다. 17세에 이탈리아의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서 최연소 3위에 입상하며 주목받았다.

“다른 악기 연주자처럼 오케스트라에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내성적인 편이기 때문에 음악제를 만들 생각은 하지 못했다”는 그는 코로나19를 계기로 ‘랑데뷰’ 음악제를 시작했다.

“연주를 하지 못하게 되면서 여럿이 한 무대에 서는 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서 같이 연주하는 일이 그리워졌어요.”

음악제 첫 해에는 연주자 8명으로 시작했고 올해는 40여명이 모인다.

“첫 해에 총 4회 연주를 했는데 다 마치고 나서 독특한 희열을 느꼈어요. 혼자서 독주회를 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기쁨이었죠. 연주자끼리는 동지애를 느끼고 관객에게는 무한한 감사가 솟아올랐어요.”

김혜진은 “앞으로도 새롭게 소개할 작품들이 아주 많다”고 했다.

“매년 공연에서 연주하고 싶은 새로운 곡들을 그때그때 메모해놓고, 거기에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또 새로운 음악들을 찾게 돼요. 이제는 한국 작곡가들의 새로운 곡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그는 ‘랑데뷰 드 라 무지크’라는 제목에 대해 “음악 안에서의 만남을 생각하며 지었다”고 했다.

“오랫동안 호흡을 맞춘 실내악 단체도 있지만, 우리는 새롭게 만나 신선한 곡들을 연주하는 데에 초점을 맞춰요. 이럴 때 생기는 새로운 기운과 에너지가 있어요. 또 어떤 청중이 오느냐에 따라 음악의 분위기도 바뀌죠. 음악이 다양한 만남을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혜진도 올해 음악제에 피아니스트로 참여한다. 바이올리니스트 김현미·백주영·정주은, 첼리스트 김민지·이호찬·이경준, 피아니스트 김준형·예수아·황건영, 클라리네티스트 김상윤 등과 함께다. 또한 지난달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부악장으로 임용된 바이올리니스트 박규민, 6월 프레미오 파올로 보르치아니 국제콩쿠르에서 2위에 오른 이든 콰르텟의 연주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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