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한국보다 출산율 높지만…"일본 사라진다" 10년간 외친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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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시킨 일이 아니었다. 스스로 10년여를 매달렸다. 그래도 그는 "반성한다"고 말했다. 지방 도시의 소멸, 나아가 일본의 소멸까지 닿는 인구 감소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온 미무라 아키오(三村明夫·83) 일본제철 명예회장 얘기다. 지난달 18일 일본제철 본사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그는 “모두가 위기의식을 갖도록 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반성점”이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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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도쿄 일본제철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는 미무라 아키오 일본제철 명예회장.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민간단체인 인구전략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 그는 지난 1월 ‘인구비전 2100’ 보고서를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일본 총리에게 건넸다. 적극적인 출산장려 정책으로 2100년까지 인구 8000만 국가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내용으로, 현재 일본 인구가 1억2000만명대인 것을 감안하면 충격적인 수치다. 10년 전 “이대로라면 일본의 지방 절반은 소멸한다”는 인구문제 화두를 들고나와 일본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던 데 이은 두 번째 경고인 셈이다.

한국(0.72)보다 높은 출산율(1.20)을 보이는데도, 왜 재계 원로는 거듭 경고를 하고 나선 걸까. 그는 “개인과 기업, 지방 정부와 중앙 정부가 인구 감소에 대한 위기의식을 갖는 것이 인구 문제 해결의 시작점”이라고 했다. 전담 부처(인구전략기획부)를 신설하는 한국 정부에 “부처를 만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재계 원로의 고언 왜

미무라 회장은 전쟁이 한창이던 1940년 군마(群馬)현 마에바시(前橋)에서 태어났다. 5남매 중 셋째로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수학과 과학을 잘했다. 대입 시험을 치르던 날 부친이 세상을 떴다. 도쿄대 경제학부에 입학해 주5일 과외를 하며 버텼다. 대학교 3학년 시절, 우연히 철강 경제론 특강을 듣게 된 게 그의 인생을 바꿨다. 강철을 만들어내는 새빨간 고로에 매료된 그는 1963년 일본제철 전신인 후지(富士)제철에 들어가며 철강맨 인생을 선택한다. 사장(2003년), 회장(2008년)으로 승승장구한 그는 일본상공회의소 회장(2013~2022년)으로 일본 재계를 대표하기도 했다. 왜 그는 인구 문제에 발을 들여놓게 된 걸까.

“2014년 아베 정권이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을 때였다. 50년 뒤 일본의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인구문제는 일본에 있어서 심각한 과제라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들의 행동이 미래를 선택한다는 의미로 총리 자문회의 산하 조직으로 2014년 당시 '선택하는 미래'위원회를 세웠다.여기에 3개 워킹 그룹(working group)을 만들었다. 마스다 히로야(增田寬也·2014년 일본 지방 도시 절반 소멸을 처음으로 경고한 ‘마스다 보고서’를 작성한 전 일본 총무상)도 그중 한 개의 워킹그룹장이었다. 인구전략회의는 지난해 출범했는데, 당초 민간인 28명이 자주적인 볼런티어로 시작했다. 정부에서 돈을 받지도 않아 자유로운 발언이 가능했다. 정부 기관이라면 예컨대 2100년에 일본이 이렇게 된다고 할 수 없지 않겠나.”

10년간의 성과를 묻자 미무라 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게도 진전이 없었다. 되돌아보면 위기의식이 없었다. 앞으로 어떤 일본이 될지, 얼마나 힘든 상황이 될지 위기의식을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일을 하지 못했다. 이게 나로선 크게 반성할 점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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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인구 정책과 관련한 보고서인 '인구비전2100'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게 전달하는 미무라 아키오 일본제철 명예회장. 사진 일본 내각홍보실

인구전략회의는 올 1월 마스다 보고서 이후 10년의 변화를 담아 기시다 총리에게 제안서를 전했다. '인구 비전 2100'이다. 76년 뒤의 사회를 대비하지 않으면 돌봄과 같은 사회보장 제도조차 유지될 수 없다는 목소리를 내게 된 배경을 물었다.
“기시다 총리가 어느 날 ”정부 역할은 지금까지 남겨진 구조적 과제를 이번 내각에서 정리하는 것이다. 인구문제는 그 전형적인 예”라고 말하면서 힘을 실어줬다. 이를 계기로 제안서를 정리하고 나섰다. 데이터를 모으고 그간 회의해온 결과를 하나로 정리해 올 1월에 기시다 총리에게 제언했다. 인구문제는 한국도 마찬가지겠지만 매우 기본적이면서 구조적인 과제다.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이 이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갖고 해결책을 구해야 하는데, 거기까지 한 걸음도 나아가질 못했다는 데서 제안서를 만들게 됐다.”

인구 감소가 가져올 일본의 미래 

‘차원이 다른 저출생 대책’을 일본 정부가 내세웠지만 인구가 줄어든다는 위기감을 ‘나’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경제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비즈니스스쿨에서 공부를 한 그는 인구 문제가 가져올 경제 충격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상상력을 발휘해보면 미래 모습은 금방 알 수 있다. 일본 인구가 현재의 반으로 줄어들어, 2100년 인구가 6300만명이 되면, 고령화율이 40%가 된다. 그럼 지방은 어떻게 되겠나. 1729개 시정촌(市町村·기초지방자치단체)이 거의 소멸 가능성이 있는, 말하자면 노인만 남는 곳이 된다. 아마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경제규모일 거다. 생산 가능연령인구(15~64세)도 틀림없이 반이 된다. 일본은 수출 비중이 적으니 개인소비 시장이 중요하다. 하지만 고령자들은 소비가 적다. 1인당 소비가 고령화로 줄어든다. 젊은이들이 장래 일본 경제규모가 줄어든다는 생각에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하게 된다는 거다. 그리된다면 기업들은 어찌 되나. 소비 축소로 설비 투자를 절대 하지 않게 된다. 기업은 점차 생산 능력을 줄이고 업계 전체도 생산 능력을 줄이게 된다. 생산성 증대, 투자가 사라진다. 그리되면 해외 투자로 돌아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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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8일 도쿄 일본제철 본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는 미무라 아키오 일본제철 명예회장.오누키 도모코 특파원

'소멸 가능 도시' 보고서가 발표할 때마다 해당 지자체에선 반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발표했다. 다만 2014년 소멸하는 도시를 896곳으로 꼽았으나 이번엔 744곳으로 줄었다.
“소멸 도시라고 하면 점점 더 소멸해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있는데, 그에 대해선 미안하게 생각한다. 다만 10년 전에 지방 소멸을 발표했을 때 당시 지자체는 큰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도쿄에선 도시마구 등이 특별한 팀을 만들고, 젊은 여성이 늘어나게 하려면 어떻게 할지를 연구했다. 전국에서 모두 이런 것들이 이뤄지면서 전체적으로 위기감이 생겼다. 이건 성과라도 본다. 시간이 흘러 10년 전과 비교가 가능하게 됐다. 200여 곳이 소멸 도시에서 빠졌고, 새롭게 100곳이 추가됐다. 우리로선 효과가 있었다고 본다.”

인구 소멸 위기를 계속 강조하는 데엔 달라질 사회 구조, 붕괴 위기에 놓일 사회보장 정책이 있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인구가 적은 자치단체라도 수도, 전기와 같은 생활 인프라를 유지해야 하지 않나. 상당한 돈이 필요하다. 또 하나는 고령화인데 의료와 개호(돌봄)에 자원을 투입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기에 인구감소 대책을 강구한다고 하면 미래는 어떤 일본의 모습이 될지, 그 모습을 정부가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때문에 2100년 비전을 국가가 만들어 주길 바랐고, 위기감을 사람들과 공유하길 바랐다. 그런데도 정부가 잘 하질 않고 있다. 한국도 좀 더 나서야 한다고 본다.

다음 인구전략회의를 고민하는 그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대책이었다.
“반성은 여러 가지다 있다. 과거 인구 감소 대책이 부족했던 최대 이유는 위기의식을 모든 사람이 공유하지 못했다는 거다. 한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젊은 여성, 젊은 남성에게 먹힐만한 내용이었는가다. 이 점이 또 하나의 반성할 부분이다. 오차노미즈여자대 학생을 불러서 의견을 청취한 적도 있는데 여성 참여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다음 회의에선 이런 점을 포함해 멤버 구성도 조금 균형이 잡히도록 하려 한다.”

자기 변혁 없는 기업 살아남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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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인구 정책과 관련한 보고서인 '인구비전2100'을 기시다 후미오(오른쪽 두번째) 일본 총리에게 전달하는 미무라 아키오(세번째) 일본제철 명예회장. 사진 일본 내각홍보실

인구 문제에 대한 기업의 경각심이 필요하단 이야기도 이어졌다. 정부나 지자체의 힘만으론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저출생은 국내 시장이 줄어드는 것과 같다. 직접 기업에 돌아오는 문제다. 그렇기에 그냥 둘 수는 없다, 정부가 하지 않더라도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일하는 여성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 남성 육아를 어떻게 할 것인가, 비정규직 여성이 늘어나고 있지만 어떻게 급여를 올릴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 직원들에게 ‘아이를 낳아도 좋다. 그 대신 빈자리를 우리가 채우겠다. 그러니 안심하고 출산휴가에 들어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기업이기에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일손 부족 상황을 일본 기업들은 현재 절감하고 있다. 대졸자가 줄어들면 앞으론 사람들이 기업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바뀐다. 결국 급여, 일하는 보람을 주는 기업을 택할 거다. 큰 의미에선 커다란 사회 변혁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기 변혁이 없는 기업은 살아남지 못한다는 위기감이 필요하다.”

미무라 회장은 한국에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일본제철에 몸담은 40년간 포스코와 지분을 상호교차 보유하면서 한국을 자주 오간 덕이기도 하다. 그는 인구전략기획부처 신설에 나선 한국 정부의 움직임도 알고 있었다.
“단지 부처를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 정부가 앞으로 어떤 형태로 대책을 마련할지 관심을 갖고 있다. 우선 모든 사람들이 위기의식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게 첫걸음이다. 한국이 이대로 인구감소가 진행된다면 어떤 나라가 될지, 그 모습을 정부가 솔직하게 제시해야 한다. 한국이 저출생 문제 해결에 있어서 반드시 결과를 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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