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결국 119구급차서 출산…"응급실 환자 못 받아요" 전국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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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공백이 이어진 2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에서 환자들이 응급실을 오가고 있다. 연합뉴스

21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노원구 인제대 상계백병원 응급실 앞은 평소와 달리 조용했다. 그 후 1시간 동안 119 구급대와 사설 구급차가 한 대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 병원 응급의학과 교수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상계백병원 관계자는 “교수 5명으로 응급실을 유지하는데, 오늘 담당 교수가 쉬면서 119 이송 환자를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응급의학과 인력 부재로 모든 환자 수용 불가(8~16시)'. 상계백병원은 이날 아침 중앙응급의료센터에서 운영하는 '응급실 종합상황판' 사이트에 이러한 공지를 올렸다. 병원 관계자는 "하루 동안 구급차가 2~3대 왔었는데 모두 그대로 돌아갔다"면서 "올해 의료공백 사태 이전엔 보기 어려웠던 일"이라고 말했다.

응급실 운영이 사실상 멈추자 환자들은 불편함을 겪었다. 직접 50대 환자를 데리고 온 요양보호사는 "근육이 없어지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환자인데, 갑자기 기력이 없어져서 응급실을 찾았다"면서 "응급의학과 선생님이 안 계시니 당장 진료를 못 본다는 답을 들었다"고 밝혔다. 그나마 이 환자는 대기하다가 어렵게 외래 교수에게 진료를 받았다.

지방에 이어 수도권 응급실 곳곳이 의료공백 장기화 등에 따른 '과부하'로 흔들리고 있다. 앞서 전문의 사직이 이어진 세종충남대병원은 이달부터 응급실을 축소 운영 중이다. 충북대병원은 지난 14일 전문의들이 병가 등으로 빠지면서 하루 동안 운영을 일시 중단했다. 지난 15일 충북에선 임산부가 응급실을 찾지 못해 119구급차 안에서 출산하기도 했다. 이 임산부는 충북 음성군에서 분만 진통을 겪었지만 음성·진천엔 임신부를 받아줄 병원이 없었고, 충북대병원 응급실도 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러한 운영 차질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셈이다.

실제로 상계백병원보다 규모가 큰 상급종합병원 상황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한림대 강남성심병원은 심정지 등 목숨이 위급한 환자 외엔 야간 진료를 축소 운영하고 있다. 전문의 한 명이 추가로 사직하기로 하면서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5명으로 줄어들게 됐다. 사직서를 제출한 교수는 중앙일보에 "전공의 이탈에도 6개월 동안 버텼지만 더는 심리적·체력적으로 힘든 상황"이라면서 "나머지 교수들이 홀로 24시간을 막아야 하는데 미안한 마음뿐"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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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시내 한 대형병원 응급실로 내원객들이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강북삼성병원은 지난 18일 응급실 종합상황판에 '사전 협의 없는 119 (이송) 및 전원 수용 불가'를 공지했다. 강북삼성병원 관계자는 "안과·이비인후과 등 환자를 못 받는 진료과가 생겨 사전에 어떤 환자인지 119에 확인하고 (환자를) 받는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응급실을 찾는 구급대원들도 환자 볼 의사가 없다는 병원 응답이 잦아지면서 피로감을 호소한다. 김종수 전국공무원노조 서울소방지부 지부장은 "병원에서 '환자를 못 받는다'는 답이 크게 늘었다"면서 "한 환자를 이송하기 위해서 전화를 수십 통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랜 시간 고통받는 환자는 물론, 이를 지켜보는 구급대원들도 트라우마를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경기 소방본부 관계자도 "최근 서울 쪽 환자들이 경기도로 이송되는 경우가 부쩍 잦아졌다"고 말했다.

확산하는 응급실 과부하는 전공의 이탈에 이어 코로나19 재유행, 폭염에 따른 온열질환 증가까지 겹친 영향이 크다. 대부분 의료기관이 문을 닫는 다음 달 추석 연휴엔 환자를 받기 어려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서울의 한 응급의학과 교수는 "한동안 줄었던 경증 환자들이 최근 어마어마하게 병원을 찾고 있다"면서 "특히 코로나 환자가 폭증하면서 열이 조금 나도 응급실로 온다. 여기에 경증인 온열 질환자까지 더해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응급실 곳곳의 '환자 수용 불가' 상황을 두고 보건복지부는 "한시적"이라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응급실의 환자 관련 공지는 구급대가 상황판을 보고 원활한 전원을 하기 위해서 만든 정부의 지침"이라면서 "각 의료기관이 모든 환자를 다 수용할 수 없다는 현실적인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일시적으로 진료 제한이 발생한 곳은 전체 응급의료기관 408곳 중 5곳(1.2%)뿐이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지금껏 버텨온 의료진이 더 이탈하면 응급실 운영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만큼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응급의학회는 21일 '현안 개선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응급의료 관련 한시적 수가의 상시화와 전공의·전임의 수련보조수당 지급 등을 정부에 촉구하기로 했다. 송명제 가톨릭 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정부가 2월부터 응급의료 전문의 진찰료 수가를 한시적으로 100% 인상했는데, 이마저 없어져 버리면 응급실에서 버틸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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