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전교생 138명 '한국계高 기적'…日고시엔 꿈의 무대 결승전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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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지마! 달려! 달려!”
머리에 ‘교토국제고’ 글씨를 새긴 빨간 머리띠를 두른 학생들이 연신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질렀다. 34도에 달하는 폭염이 쏟아진 21일 오전 11시 일본 효고(兵庫)현 니시노미야(西宮)에 있는 고시엔(甲子園) 경기장. ‘제106회 일본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 본선 준결승전 경기에서 한국계 학교인 교토국제고와 아오모리를 대표하는 야구 명문고교 아오모리야마다가 맞붙었다. 1회 말 2점을 내주고 5회까지 득점을 올리지 못하자 교토국제고 응원석에서 아쉬움이 담긴 탄식이 이어졌다.

누군가 낮은 목소리로 “오늘따라 플라이(뜬공)이 많다”고 걱정스레 말하던 그 때, 귀를 찢는 듯한 함성이 솟구쳤다. 6회 1사 만루에서 하세가와 하야테(長谷川颯·고2) 선수의 2타점 적시타가 터지며 동점이 됐다. 이어진 1사 1·3루에서 핫토리 후마(服部颯舞·고3) 선수의 내야 땅볼 때 1점을 더해 역전에 성공하자 응원석의 모든 이들이 일어나 서로를 얼싸안았다. 마침내 9회 말,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이 울리며 교토국제고 사상 첫 고시엔 결승 진출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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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내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 야구 선수들이 21일 일본 효고현 니시노미야 한신 고시엔구장에서 열린 전국 고교야구선수권대회(여름 고시엔) 준결승전에서 승리를 확정한 뒤 기뻐하고 있다. 교토국제고는 이날 아오모리야마다고교와 경기에서 3-2로 이겨 처음으로 여름 고시엔 결승에 진출했다. 연합뉴스.

교토국제고가 일본 고교야구 선수들의 ‘꿈의 구장’으로 불리는 고시엔에서 기적을 일궜다. 이 학교에 야구단이 생긴 지 25년만의 일이다. 학교 관계자들은 결승 진출을 "기적”이라고 말했다. 교토국제고는 1947년 재일동포들이 세운 교토조선중학교로 시작해, 한국 정부의 인가(1958년), 일본 정부의 인가(2003년)를 받았다. 학생 수 감소로 현재 중·고과정 재적 학생은 160여 명에 그치는 데, 학생 90%가 일본 국적이다. 고교과정 138명 중 야구선수가 61명에 달하는 '야구 학교'이나, 체육관에 에어컨·난방기가 없는 체육관에서 훈련용 야구공에 테이프를 감아쓰는 형편이다.

시련도 많았다. 2021년 처음 고시엔 4강에 진출했을 땐 한국어 교가를 트집 잡은 극우단체들의 협박 전화가 이어졌다. 학교는 당시 ‘동해바다’로 시작하는 교가를 일본어론 '동쪽의 바다'로 표기해 주최 측에 제공했지만, 얼음장 같던 한·일관계 여파로 극우단체들의 협박을 피할 순 없었다.

이날 승리가 확정되고 교가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자 선수들과 응원단이 일어나 한국어 교가를 합창했다. 관례에 따라 이 장면은 공영방송 NHK의 전파를 타고 일본 전역에 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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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학교인 교토국제고 응원단이 21일 효고현 고시엔 경기장에서 열린 제106회 전국 고교야구선수대회 4강전에서 우승한 뒤 한국어 교가가 울려퍼지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교가를 따라 부르고 있다. 니시노미야=김현예 특파원

이날 약 1200명을 수용 가능한 교토국제고 측 응원석은 가득찼다. 이 학교 학생과 학부모만으로 도저히 채울 수 없는 규모다. 나머지 좌석을 채운 건 재일동포들과 한국인, 그리고 교토지역 주민들과 다른 학교 학생들이었다. 가장 눈에 띈 건 응원악단이었다. 야구부 있는 여느 학교와 달리 악단이 없는 교토국제고를 위해 교토산업대부속고 학생들이 나섰다. 땡볕 아래에서도 북·트럼펫 등을 연주하며 힘을 보탰다. 교토산업대부속고의 고바야시 양은 “같은 고교생으로 응원하고 싶어서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역 예선에서 교토국제고에 석패했던 경쟁고 교토세이쇼고 야구선수 20명도 ‘우정 응원’을 왔다. “우리 몫까지 전력을 다해 끝까지 싸워달라”며 함성을 더했다. 일본에 유학 중인 한국 학생들도 찾아왔다. 조정빈(24) 씨는 “일본에서 한국을 느낄 수 있는 뜻깊은 경험이라고 생각해 경기를 보러 왔다”면서 “우승까지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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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학교인 교토국제고가 21일 일본 고교야구 선수들의 꿈의 구장으로 불리는 '고시엔'에서 야구 명문 아오모리야마다고교를 누르고 사상 첫 결승전에 진출하자 응원에 나선 교토국제고 선수들이 환호하고 있다. 니시노미야=김현예 특파원

직접 출전하지 못한 교토국제고 1~2학년 선수들은 이날 응원석에서 응원단으로 활약했다. 이들은 “응원단 모두가 10번째 선수로서 벤치에 있는 선수들과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고 함께 뛰었다”고 입을 모았다. 응원단에 참여한 이와타 선수는 “우리 응원만으론 이길 수 없었다”면서 “일본인만이 아니라 한국분들도 많이 응원해 이길 수 있는 힘이 나왔다. 이런 응원이 결승까지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교토국제고 학부모 모임의 요코다 회장은 “졸업생 학부모까지 모두 와서 응원했다”면서 “결승전에서도 힘을 내서 우승할 수 있도록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승리투수가 된 니시무라 잇키(西村一毅·고2) 선수는 아사히신문에 “올 봄 선발대회(고시엔)에서 아오모리야마다에 패핬던 만큼 두번 다시 지고 싶지 않았다”며 “결승전은 평소와 같은 마음으로 임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교토국제고는 오는 23일 오전 10시에 간토다이이치(關東 第一)와 결승전을 치른다. 백승환 교장은 “동포분들에게 감동을, 교토국제고를 사랑하는 모든 분께 기쁨을 드릴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라며 “결승까지 최선을 다해 더 큰 기쁨을 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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