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파리 패럴림픽에 나서는 장애인 태권도 국가대표 주정훈. 장애인 태권도는 K44 등급 지체(한팔) 장애 남녀 각각 5개 체급 경기가 열린다. 얼굴 공격은 인정하지 않고, 몸통 공격만 점수를 준다. 한국은 주정훈과 이동호가 출전한다. [사진 대한장애인체육회]

2024 파리 패럴림픽(Paralympics)이 29일(한국시간) 개막해 12일간의 열전에 돌입한다.

장애인 스포츠 최고의 축제인 패럴림픽은 하반신 마비를 뜻하는 ‘패러플레지아(Paraplegia)’와 ‘올림픽(Olympic)’을 합친 말이다. ‘파라(para)’는 장애가 아닌 ‘나란히’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고, 올림픽과 나란히 열린다는 뜻을 담았다. 이번 대회엔 182개국 4000여명의 선수단이 22개 종목에서 549개의 금메달을 놓고 겨룬다.

한국 선수단은 지난 14일 선발대가 떠난 데 이어 21일 본진이 파리행 비행기에 올랐다. 대한장애인체육회는 선수들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처음으로 사전 캠프를 꾸렸다. 이번 대회 목표는 금메달 5개 획득, 종합 순위 20위다.

지난 12일 끝난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태권도는 효자 종목의 위상을 되찾았다. 유서 깊은 그랑팔레에서 박태준과 김유진이 각각 금메달을 따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태권도가 정식 종목이 된 뒤 한국 선수단은 14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패럴림픽에도 태권도는 정식 종목이다. 경기장도 파리 올림픽과 같은 그랑팔레다. 지난 2020 도쿄 패럴림픽에서 장애인 태권도는 처음으로 정식 종목이 됐다. K44 등급 지체(한팔) 장애 남녀 각각 5개 체급 경기가 열린다. 한국은 주정훈(30·80㎏급)과 이동호(21·63㎏급·이상 남자)가 출전한다.

세계랭킹 2위 주정훈은 유력한 메달 후보다. 주정훈은 3년 전 열린 2020 도쿄 패럴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다. 지난해 항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는 금메달, 멕시코 세계선수권에서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두 번째 패럴림픽에 나서는 주정훈은 현재 파리 인근 크레티유의 훈련장에서 컨디션을 가다듬고 있다.

주정훈은 2세 때 사고로 장애인이 됐다. 할머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절단기에 오른손이 잘리는 사고를 당했다. 주정훈은 “철이 들 무렵에 사고 상황에 대해 알았다”고 했다.

8세 때 어머니의 권유로 태권도를 시작한 주정훈은 중학교 때부터 엘리트 선수로 활동하면서 비장애인 선수들과 경쟁했다. 하지만 사춘기를 맞이하면서 방황했다. 주정훈은 “두 번이나 태권도를 그만뒀다. 밸런스가 안 맞으니까 발차기를 한 뒤 곧잘 넘어졌다. 남에게 (장애가 있는) 내 모습을 보이는 게 싫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2학년 때 태권도를 그만뒀다”고 말했다.

다시 도복을 입을 일이 없을 줄 알았던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태권도가 도쿄 패럴림픽에서 처음 정식 종목이 됐다. 그는 올림픽 출전의 꿈을 패럴림픽에서 이루기로 결심했다. 2017년, 그의 나이 스물세 살 때였다.

첫 패럴림픽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출전권을 따냈지만, 코로나 19 상황이라 훈련도 제대로 하기 힘들었다. 주정훈은 “친구가 운영하는 복싱 체육관에 몰래 가서 혼자 운동했다. 패럴림픽에도 혼자 나갔다”고 했다. 첫판에서 패했지만, 패자부활전을 거쳐 동메달을 따냈다.

주정훈은 한국 장애인 태권도 첫 메달을 들고 요양원에 있는 할머니를 찾았다. 평생 손자에게 죄책감을 갖고 살았던 할머니는 손자가 목에 건 메달이 어떤 뜻인지 알지 못했다. 그리고 몇 달 후 세상을 떠났다. 임종을 못 했던 주정훈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내 이름을 불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도쿄 패럴림픽에 다녀온 뒤 그는 더욱 체계적으로 훈련했다. 국제 대회에 자주 나서면서 랭킹 포인트를 쌓은 덕분에 여유 있게 파리행 티켓을 따냈다. 장애인 태권도는 얼굴 공격 득점을 인정하지 않고, 몸통 공격만 점수를 준다. 주정훈은 패럴림픽을 앞두고 비디오 분석을 통해 다양한 기술을 익혔다. 여간해선 지치지 않는 체력도 키웠다.

패럴림픽 출전을 앞두고 주정훈은 고향인 경남 창원으로 내려갔다. 그는 “처음으로 혼자서 할머니, 할아버지 산소를 찾았다”며 “할머니께서 생전에 나를 볼 때마다 안타까워 하셨다. ‘그런 일이 없었으면 남들처럼 부족함 없이 잘 살았을 텐데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하지만 할머니를 원망하지 않는다”며 “파리에서 승리를 거둔 뒤 할머니 묘소를 찾아 ‘지난번에 못 땄던 금메달을 따왔다’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