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시청역 역주행도 ‘최대 금고 5년’…다수인명피해 가중처벌 안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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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지난 20일 시청역 역주행 사고의 운전자인 차모씨를 구속 기소했다. 뉴스1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사망 9명 등 14명의 사상자를 낸 ‘시청역 역주행 참사’ 운전자 차모씨가 재판에 넘겨졌지만 법정형은 최대 금고 5년형이다. 아무리 인명피해가 많아도 현행법상으론 가중처벌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부장 김태헌)는 지난 20일 차씨를 구속기소하는 등의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이번 사건의 법정형은 금고 5년에 불과해 불법과 책임에 상응하는 엄정한 처벌이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다중 인명피해가 발생한 경우 피해 규모나 죄질, 국민 법감정에 맞는 엄중한 처벌이 가능하도록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검찰 수사 결과 차씨는 지난달 2일 서울 시청역 근처에서 차량을 운전하던 도중 인도로 돌진해 9명의 보행자를 사망하게 하고 5명이 다쳤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사고 차량 실험 등의 결과에서도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이 아닌 차씨의 운전 과실이 확인됐다. 하지만 이번 참사에서 다수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은 차씨의 처벌을 무겁게 하는 요소로 작용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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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근처에서 발생한 역주행 사고 현장. 이 사고로 9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다. 연합뉴스

이번 참사는 한 차례의 운전으로 여러 피해가 발생했다. 일방통행 도로를 역주행해 인도에 서 있던 보행자 12명이 죽거나 다쳤고, 추가로 도로에 있던 차량 2대와 추돌하며 운전자 2명이 상해를 입었다. 이에 따라 차씨는 하나의 행위로 여러 죄를 저질렀다는 법률 용어인 ‘상상적 경합범’에 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형법은 상상적 경합범의 경우 여러 범죄 중 가벼운 범죄는 흡수해 처벌 형량이 가장 무거운 범죄로만 처벌한다(‘흡수주의’). 차씨 역시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업무상과실치사상의 법정형인 5년 이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 내에서 형량이 결정된다. 결과적으로 14명이 사망하거나 다친 이번 참사의 죗값은 한 명이 사망한 교통사고와 동일하게 다뤄지는 셈이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검찰이 “처벌의 한계가 확인됐다”는 점을 지적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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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역 역주행 사고를 수사한 검찰은 사고차량 실험을 통해 작동원리를 확인한 끝에 차량 결함으로 인한 급발진이 아니라고 결론냈다. 뉴스1

차씨와 같은 경합범의 가벼운 처벌 논란은 다수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대형참사 때마다 반복됐다. 중한 범죄임에도 처벌 수위가 지나치게 낮다는 비판이 이어지면서다. 실제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당시 501명이 사망하고 937명이 다쳤지만 당시 이준 삼풍건설산업 회장에겐 징역 7년 6월이 선고되는 데 그쳤다.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당시엔 192명이 숨졌는데 당시 기관사 역시 금고 5년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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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직후 다중인명피해가 발생한 사고에 대해 가중처벌이 가능토록 하는 법률 개정을 추진했다. 사진은 2018년 경기도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열린 세월호 4주기 추모식. 연합뉴스

2014년 세월호 참사 땐 경합범 가중처벌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했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심각한 인명피해 사고를 야기하는 사람들에게 엄중한 형벌이 부과될 수 있도록 법률을 개정하겠다”고 말하면서다. 법무부는 곧장 다중인명피해가 발생한 사고나 범죄를 저지른 경우 최대 징역 100년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특례법 입법을 추진했다. 하나의 행위로 여러 죄를 저지른 경합범의 경우 각각의 죄에 따른 형을 모두 더해 가중 처벌하는 내용이었다.

이같은 ‘다중인명피해범죄의 경합범 가중에 관한 특례법’은 국회로 넘어왔지만 논의 시작부터 찬반 대립이 팽팽했다. 2014년 7월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 출석한 당시 김주현 법무부 검찰국장은 “다중인명 피해가 야기된 사건은 단순한 업무상 과실치사라도 중한 형이 선고될 수 있도록 법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국민 법 감정을 반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며 가중처벌 필요성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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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당시 소방이 피해자들을 구조하는 모습. 중앙포토

하지만 법원의 입장은 신중했다. 권순일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은 “(특례법은) 상상적 경합범의 경우 흡수주의를 취하고 있는 (우리) 형법의 기본 원칙상 상당히 예외적 규정”이라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상상적 경합범은 여러 범죄행위 중 가장 무거운 형을 받는 죄목만 적용해 처벌하는 흡수주의와 형법 체계에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였다.

판사 출신의 서기호 전 정의당 의원도 “기본법을 완전히 뒤흔드는 내용이라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법사위에서 뚝딱 처리할 문제는 아니고, 학계와 법조계 전반적인 논의가 충분히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결국 최대 징역 100년형까지 선고 가능토록 한 이 특례법은 19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새로운 미래를 위한 청년변호사 모임의 김지연 변호사는 “사업장 안전사고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을 통해 가중처벌이 가능한 장치가 마련된 것처럼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사건·사고 역시 가중처벌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해야 할 시점”이라며 “여러 참사를 거치며 사회적 분위기 역시 다수 인명피해에 보다 엄중한 책임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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