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딸 살려달라"…항암제 '렉라자&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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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양행의 폐암 치료제 '렉라자' 임상시험을 주도한 조병철 연세대 세브란스 암병원 폐암 센터장. 조 교수는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 치료제가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타그리소보다 사망률을 30% 낮춘다고 설명한다. 장진영 기자

유한양행의 폐암 치료제 '렉라자'가 20일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데 일등공신이 있다. 바로 연세대 세브란스 암병원 폐암센터의 조병철 센터장(연세-유일한 폐암연구소장)이다. 이번에 허가가 난 약은 두 가지 신약의 병용 치료제다. 렉라자와 존슨앤존슨의 리브리반트를 동시에 투여한다. 조 교수는 렉라자·리브리반트의 아버지이자, 두 개를 활용한 병용 치료법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두 약과 병용약의 세 가지 국제 임상시험을 주도해 성공시켰다. 미국 FDA 허가 서류에 조 교수의 서명이 들어갔다.

렉라자 미국 승인 주역 조병철 교수

이번에 승인된 병용약은 비소세포 폐암 치료제다. EGFR이라는 유전자 변이 타입 폐암의 1차 약이다. 이 변이가 전체 폐암 환자의 40~50%를 차지한다. 40~60대의 비교적 젊은 여성에게 많이 걸린다. 병용약은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라는 이 분야 '절대 강자' 약에 맞서게 된다. 타그리소보다 사망률을 30%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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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교수는 2016년 렉라자와 리브리반트의 국제 임상시험을 힘겹게 시작했다. 둘을 따로따로 진행했다. 임상시험에 성공할지 명확하지 않은 데다, 타그리소라는 강자 때문에 제약사의 의지가 약했다. 조 교수는 유한양행 고위 임원을 설득해 임상시험을 시작했고, 2021년 성공했다.

리브리반트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조 교수의 지갑에는 낡은 편지 한 통이 들어있다. 11년 동안 지니고 있다. 메모지에 꾹꾹 눌러쓴 40대 여성 폐암 환자의 어머니가 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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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철 연세대 세브란스 암병원 폐암센터장이 11년 전 40대 폐암 환자의 어머니에게서 받은 편지를 펼치고 있다. 조 교수는 이 편지가 리브리란트라는 신약 개발에 나선 계기가 됐고, 렉라자 병용치료제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신서식 기자

"우리 가족이 길 없는 길 위에 서서 선생님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중략) 제 딸이 추적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주십시오." 딸을 살려보려는 어머니의 간절한 호소였다. 하지만 딸은 그 해(2013년)에 숨을 거뒀다.

조 교수는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 편지가, 그 환자가 왜 나한테 왔을까. 고혈압·당뇨병약은 늘렸는데, 생명을 살리는 항암제가 없어 환자가 사망하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며 "렉라자·리브리반트의 약재료(신약후보물질)에 숨을 불어넣어 생명을 살리기로 결심했다"고 말한다.

조 교수는 특히 리브리반트를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고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보란 듯이 성공했다. 그는 "그 여성 환자가 몇 년만 버텨줬다면 리브리반트 혜택을 봤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한다.

조 교수는 최근 기자와 만났을 때 지갑 속에서 편지를 꺼내 펼쳤다. 접힌 부위가 너덜너덜해진 상태라 조심스럽게 다뤘다. "나의 보물"이라고 말한다. 그는 "리브리반트 임상시험이 나에게 온 게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며 "그게 없었으면 병용치료도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다.

조 교수는 렉라자·리브리반트 임상시험 도중에 두 가지를 함께 투여하는 병용치료 임상시험을 별도로 시작했다. 두 약의 아버지가 조 교수이니 병용치료 임상시험을 그가 맡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30여 개국 의사들과 함께 1200여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했다.

조 교수의 연구소에선 108명의 전문가가 100여개의 신약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연구소다. 조 교수는 취미가 따로 없다. 멍 때리기, 신약 연구가 굳이 취미라면 취미다. 신약 임상시험에 인생을 바친 의사다. 지난 15년간 그리했고, 앞으로도 그리할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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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FDA 승인을 받은 렉라자. 중앙포토

조 교수는 "폐암 4기라고 해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는 "무작정 희망을 가지라는 말이 식상할 것이다. 치료하기 힘든 암이긴 하지만 새로운 약이 계속 나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다"면서 "렉라자·타그리소 같은 약이 불과 몇 년 사이에 나왔다. 그 이후 병용 치료라는 새로운 치료법이 나오지 않았느냐"고 말한다.

폐암은 발견 순간 4기 환자가 60%를 차지한다. 수술은 불가능하고 항암 치료밖에 없다. 렉라자·리브리반트 병용치료는 폐암 4기 환자에게 희망이 될 전망이다. 폐암 4기 환자는 위·대장·유방·전립샘·비뇨기 암 4기 환자를 합한 것보다 많다. 병용치료 약은 미국에서 상업화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언제 들어올지 알 수 없다. 국제 임상을 해서 한국 내 임상시험은 안 해도 된다. 다만 한국에 와도 식약처 승인, 건강보험 등재, 약값 심의 등의 벽을 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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