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치권에 ‘세대교체’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사실상 차기 총리를 뽑는 다음 달 27일 집권 자민당의 총재 선거를 앞두고 40대 소장파들에게 거는 국민적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이 오는 30일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를 표명할 것이라고 일본 언론들이 23일 전했다. 사진은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지난 19일 총리 관저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는 모습. 연합뉴스

무려 11명이 출마를 예고한 상황에서 가장 연배가 어린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郞·43) 전 환경상의 인기가 빠르게 오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TV도쿄가 23일 발표한 긴급 여론조사 결과(차기 총재 적합도 조사, 지난 21~22일 실시)에 따르면 고이즈미 전 환경상이 23%로 수위를 차지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1위를 달리던 이시바 시게루(石破茂·67) 전 간사장은 18%로 2위로 떨어졌다. 지난달 같은 조사에선 이시바가 24%, 고이즈미는 15%였다.

김영희 디자이너

특히 자민당 지지층 조사에선 고이즈미에 대한 기대가 더 높게 나타났다. 고이즈미를 꼽은 응답자는 32%, 2위인 보수 강경파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63) 경제안보 담당상은 15%로 전체 조사 결과보다 1·2위 간 격차가 더 컸다.

고이즈미는 전 연령대에서 골고루 지지를 받는 것으로도 나타났다. 39세 이하, 40~50대, 60세 이상에서 모두 1위였다.

또 다른 40대 주자인 고바야시 다카유키(小林鷹之·49) 전 경제안보 담당상의 인기도 급등세다. 지난달 같은 조사에서 1%였던 고바야시는 이번에 8%로 뛰며 4위에 올랐다. 지난 총재선 2위였던 고노 다로(河野太郞·61) 디지털 담당상(7%)이나 기시다파 출신 가미카와 요코(上川陽子·71) 외무상(6%) 등 쟁쟁한 현역 각료도 제쳤다.

고바야시 다카유키 전 경제안보 담당상이 지난 19일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 의사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와 관련, 나카키타 고지(中北浩爾) 주오대 법학부 교수는 “상승세를 고려하면 (후보군 중) 가장 먼저 출마를 선언한 것이 주효했다고 볼 수 있다”며 “현재 세대교체(론)에 큰 탄력을 받고 있다”(닛케이 관련 기사에 대한 코멘트)고 짚었다.

실제로 고바야시는 지난 19일 공식 출마 선언을 하며 세대교체를 강조했다. 그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조르자 멜로니(47) 이탈리아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46) 프랑스 대통령을 거론하며 “내가 G7(주요 7개국) 정상회의에 가도 더는 젊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고이즈미도 출사표를 던질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23일 아사히신문은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30일 출마를 공식 표명할 방침을 굳혔다”며 “같은 가나가와현에 (지역구를 둔)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전 총리가 전면 지지에 나설 것”이라고 전했다.

무파벌인 스가 전 총리는 지난 총재선에선 고노를 지지했었다. 하지만 고노가 유일하게 남은 파벌(아소파)에 매여 있자, 이번 선거에선 같은 무파벌의 ‘개혁’ 이미지가 강한 고이즈미를 밀기로 했단 후문이 나온다.

일본 집권 자민당은 다음 달 27일 총재 선거를 실시해 사실상 차기 총리를 정한다. 사진은 자민당 출신 역대 총리들의 얼굴로 꾸민 총재선 홍보 그래픽. 사진 자민당 홈페이지 캡처

다만 세대교체 여론이 총재선에 실제 얼마나 반영될진 미지수다. 자민당 총재선은 소속 국회의원(367표)과 당원·당우(367표)가 투표권을 절반씩 갖는다. 그런데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득표한 후보가 없을 경우 상위 2명만 치르는 결선투표에선 국회의원들의 영향력이 훨씬 커진다. 결선에선 의원이 367표로, 여론을 반영한 47표(47개 도·도·부·현 지역당별 1표)를 압도한다. 사실상 의원들이 총재 선출의 키를 쥐고 있는 셈이다.

고이즈미와 고바야시의 경우 소장파 의원들의 지지를 받고 있지만, 당 3역(간사장·정조회장·총무회장)이나 주요 각료로서 경험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결국 본선에서 “중책을 맡기기엔 역부족”이란 판단이 나올 수 있단 얘기다.

하지만 이전 선거와 달리 파벌이 해체된 상황이고, 정치자금 사태 여파로 최근 여러 선거에서 잇달아 패배했던 자민당 사정으로 볼 때 여론과 동떨어진 투표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이란 예상도 있다. 당장 총재선 직후 ‘당의 새로운 얼굴’로 총선(중의원 선거)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의원들 입장에선 정치 생명이 걸린 문제인 만큼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투표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