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무늬만 쌀빵·쌀피자·쌀과자…수입 밀 대체 갈 길 먼 ‘가루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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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서울 송파구 가락몰에서 열린 빵 축제 '전국빵지자랑'에서 방문객이 가루쌀로 만든 빵을 둘러보고 있다. 뉴스1

가루쌀을 넣었다고 표시한 빵·과자·라면에 정작 쌀이 10% 안팎 들어간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쌀 소비를 늘리고자 가루쌀 가공식품 생산을 장려하고 있지만, 갈 길이 멀다.

24일 식품업체가 만든 가루쌀 가공식품의 성분표를 분석한 결과 실제 쌀 함유량은 10% 안팎에 그쳤다. 예를 들어 A사가 출시한 쌀 라면의 쌀 함유량은 11.5%, B사가 만든 쌀 볶음면은 13%였다. C사가 개발한 쌀 식빵은 7.35%, D사가 만든 쌀 과자는 7.77%였다. E사가 파는 피자의 쌀 도우는 쌀 함유량이 1.5%에 불과했다.

소비자가 혼동하기 쉽도록 ‘쌀로 만들었다’ ‘소화가 잘된다’ 식으로 홍보하고 있으나, 대부분 수입산 밀가루와 감자전분 등으로 만들었다. 제품에 성분 함량표만 명시하면 제품명에 쌀을 넣을 수 있도록 한 규정 때문에 가능하다. 쌀 과자를 즐겨 찾는 김모(42) 씨는 “제품명에 쌀을 적었길래 최소 30~40% 이상 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했다”며 “광고 문구에 비해 쌀 함유량이 너무 적은 데다 밀가루가 대부분이라니 속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99% 이상 수입에 의존하는 밀을 대체하기 위해 가루쌀 보급을 추진해왔다. 올해 예산 40억원을 들여 식품사, 지역 제과점 등과 가루쌀 식품을 개발한다. 연말까지 30곳에서 가루쌀 제품 111종을 개발해 출시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가루쌀을 지난해 ㎏당 2470원에 수매해 업체에 ㎏당 1000원에 공급했다. 당초 공급가는 ㎏당 1500원이었다. 하지만 밀가루와 비슷한 수준 가격으로 조정해달라는 식품업계 요청을 받아들여 지난 3월부터 가루쌀을 ㎏당 1000원에 공급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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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정부가 예산을 들여 적자를 봐서라도 가루쌀을 장려하는 건 ‘식량 안보’ 차원에서다. 1990년 70%를 넘겼던 식량자급률은 2019년부터 50% 아래로 떨어졌다. 국산 쌀 소비를 늘리고 수입산 밀 수입을 줄이면 식량자급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

식품업계의 ‘상술’이라고만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큰 이익을 내려고 쌀 제품을 개발하기보다 정부 취지에 동참하는 차원이라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가루쌀을 시장에 초기 안착시키는 게 중요하다”며 “쌀 가공식품의 식감과 맛 등을 보장하려다 보니 쌀가루보다 밀가루 함유량이 많다”고 설명했다.

일반 쌀을 밥이 아닌 빵·면의 원료로 쓰려면 가루로 빻기 전 물에 불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쌀가루 1t을 생산하려면 물 5t이 들어간다. 시간과 비용 면에서 쌀을 가공용으로 선호하지 않은 이유다. 반면 가루쌀은 물에 불리지 않고도 가루로 빻을 수 있는 가공용 쌀이다. 멥쌀과 밀의 중간 성질을 띤 품종으로 개량해 쌀의 단점을 보완했다. 밥으로 쓸 수 없기 때문에 밥쌀 시장과는 경쟁하지 않는다.

하지만 높은 가격이 걸림돌이다. 결국 경쟁 상대가 값싼 밀가루라서다. 수입산 밀 대비 우리 밀 가격은 최대 2배 수준이다. 쌀은 국산 밀보다, 가루쌀은 쌀보다도 비싸다. 가루쌀로 빵·과자·라면 등을 만드는 식품사가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어려운 구조다. 국산 밀보다 비싸고 가공하기도 어려운 가루쌀로 수입 밀가루를 대체하겠다는 정부 대책의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훈 충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는 “과거에도 가루쌀에 대한 시장의 관심이 높았던 적이 있었지만, 원료 가격이 밀가루보다 너무 비싸고 맛도 떨어져 경쟁에서 뒤졌다”며 “쉬운 과제는 아니지만, 생산·유통·가공 과정 전반에서 가격을 낮추고 맛은 더 낫게 만든 다양한 제품을 개발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정책으로 뒷받침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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