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30년 된 공장, 손도 못대…"수도권 제조업 말려죽인다"는 이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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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과밀억제권역 규제로 인한 중과세 등으로 기업 유치에 어려움을 겪는 지자체들이 공동대응협의체를 구성해 국회를 상대로 입법 건의를 추진하고 있다. 사진은 과밀억제권역 내 수원델타플렉스(수원산업단지)에서 제조업체를 운영하는 이기현 미경테크 대표이사와 20여년 된 스탬프(stamp) 기계. 손성배 기자

지난 25일 오후 경기 하남시의 한 금속가공 업체. 30년 된 공장엔 산업용 부품 및 금속을 만들어내는 틀이 수백가지 종류 별로 있어 공장 증·개축을 하려는데, 중과세 때문에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이 업체 임원 이모(50)씨는 “게다가 2028년 준공 예정인 3기 신도시 교산지구 부지 안에 있어 도심 친화 업종으로 전환하거나 이전해야 하는 데 제조업이 어떻게 도심 친화 업종이 될 수 있겠느냐”며 “이전하려고 해도 갈 곳도 없어 기업을 말려 죽인다”고 말했다.

기업인들은 수도권 역차별을 부른 가장 큰 규제로 과밀억제권역을 꼽는다. 40년 전인 1984년 시행된 수도권정비계획법에서 처음 등장한 용어다. 인구·산업이 과도하게 집중됐거나 집중될 우려가 있어 정비가 필요한 지역을 과밀억제권역으로 지정해 성장관리권역이나 지방으로의 공장 이전을 유도한다는 취지다.

과밀억제권역엔 원칙적으로 공장을 신설할 수 없다. 증·개설할 경우 중과세를 부과한다. 지방세법에 따라 인구 유입이나 경제성 집중 효과를 새롭게 유발한다고 볼 수 없는데도 예외 없이 취득세를 부과한다. 원래 공장이 있던 자리에 개축을 해도 세금을 통상 2.8%가 아니라 6.8%로 계산해서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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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밀억제권역 내 수원델타플렉스(수원산업단지)에서 스마트폰 PCB 기판 연결 회로, 자동차 전장 부품 등을 개발·생산하는 수원 미경테크 기계 설비. 손성배 기자

과밀억제권역은 서울, 인천(강화·옹진·인천경제자유구역·남동 국가산단 등 제외) 전역과 경기도 12개 지자체에 적용된다. 당장 공장 증·개축이 시급한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내 제조업 기업인은 경기 수원을 ‘우수 인재 영입’의 마지노선으로 본다.

수원델타플렉스(수원산업단지) 입주 기업인 미경테크의 이기현 대표이사는 “수도권에서 인재 수급이 가능한 마지노선이 수원이어서 10년 전 화성에서 이전했는데 여기서도 수도권정비법 때문에 공장을 신축·확장할 수가 없다”며 “중소기업이 자체 연구·개발로 성장하려는데 제약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수원산단엔 700여개 중소기업이 입주해있다.

이 대표는 “수원 산업단지도 SKC(옛 선경석유)가 충북 진천으로 이전하면서 그 물량을 1 대 1로 받아 수원시가 조성한 공단이었다”며 “과밀억제권역 때문에 누군가 나가야 공장을 증설할 수 있는 그야말로 제로섬 게임이다. 피를 토하는 심정”이라고 강조했다.

수도권 역차별은 기업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 인접 지자체가 공통적으로 겪는 ‘베드타운’(bed town)화는 세수 부족을 야기하고 도시의 질 자체를 떨어뜨리고 있다. 마냥 손 놓고 있을 수 없었던 경기도 내 수원·성남·고양·부천·안양·의정부·하남·광명·군포·구리·의왕 등 12개 지자체는 지난해 11월 공동대응협의회를 구성했다. 다음 달부턴 22대 국회와 정부를 상대로 입법 건의 등 규제 개선을 요구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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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과밀억제권역 내 수원델타플렉스(수원산업단지)에서 스마트폰 PCB 기판 연결 회로, 자동차 전장 부품 등을 개발·생산하는 경기 수원 미경테크 직원들이 현미경으로 제품 검수를 하고 있다. 손성배 기자

공장 노후화 문제는 서울과 가까울수록 심하다. 성남시 관계자는 “1976년 준공된 성남일반산업단지의 경우 서울 외곽 산업단지에서 시작했지만, 도시가 커지면서 주민들이 공장 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그러나 과밀억제권역 규제로 원래 있던 공장을 옮길 수 있는 대체용지를 마련할 여건이 전혀 되지 않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권역 지정을 피한 지자체는 40년간 성장했는데 그 동안 억제권역에 속한 지자체만 역차별을 당했다는 불만이 크다. 과밀억제권역엔 해외로 진출했다가 국내로 돌아오는 ‘리턴 기업’에 대한 혜택도 전혀 없다. 특히 수원시는 성장관리권역인 용인·화성에 비해 인구 증가, 산업 발전에 차별을 당했다는 입장이다.

수원시 관계자는 “서수원권은 과밀억제권역뿐 아니라 소음대책지역, 개발제한구역, 비행안전구역 등 4중 규제를 받고 있어 기업이 들어오거나 현재 있는 기업도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라며 “반면에 용인과 화성은 수원보다 더 많은 산업이 집중돼있는데도 과밀억제권역이 아니어서 유입 인구가 늘어났다”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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