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온종일 폐지 주워야 1만원…이젠 어르신들, 바리스타도 맡는다

본문

지난달 8일 부산 동구 ‘우리동네 ESG 센터’ 2층 작업장. 부산 동구가 만든 노인일자리 사업장이다. 주로 중고 플라스틱 장난감을 재활용할 수 있도록 만든다. 60대 이상 작업자 10여명은 플라스틱 장난감에 붙은 스티커와 금속 나사를 제거했다. 플라스틱만 남은 장난감에 열을 가해 새로운 형태로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플라스틱은 장갑, 작업용 조끼, 안전손잡이 등을 만들 수 있는 원료로 쓴다고 한다.

17247035575978.jpg

지난달 일 부산 동구 ESG센터에서 진행하는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어르신들이 장난감에서 플라스틱 분리 작업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이 작업장 직원 50여명 가운데 대부분은 65세 이상이다. 일부 직원은 60대 초중반이다. 이들은 한 달에 60시간 일하고 급여로 약 76만원을 받는다. 플라스틱 작업 이외에 제품 배달이나 센터에 견학 오는 학생 도우미로도 일한다. 급여는 국비와 지방비로 충당하고, 사회적 협동조합 ‘코즈’가 센터에 입주해 작업 상황을 관리한다. 센터에서 만난 나명숙(66·여)씨는 “센터에 견학 오는 아이들을 안내해 주는 일을 주로 한다"라며 "이미 은퇴해 집에서 쉴 나이지만 보람 있는 일이고, 급여가 생활비에도 보탬이 된다”라고 전했다.

노인 인구 1000만 시대, 일자리 만들기
노인 인구가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자치단체가 이들을 위한 일자리 만들기에 나섰다. 특히 은퇴 이후에도 부모와 자녀 모두를 경제적으로 부양해야 하는 이른바 '더불케어' 연령층이 많은 것도 노인 일자리 만들기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한다. 재단법인 돌봄과미래가 지난 6월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1960년대생 남녀 980명 중 15%가 더블케어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올해 노인 일자리를 지난해보다 14만7000여개 많은 103만개를 만들 계획이다. 일자리 보수도 휴지줍기 등 공익형은 월 27만원에서 29만원, 편의점 취업 등 사회서비스형은 71만3000원에서 76만1000원으로 올린다.

통계청에 따르면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지난 7월 1000만명을 넘어섰다. 내년에는 총인구에서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20.3%(1051만명)로 증가한다. 실질적인 초고령사회 진입이다. 노인 인구 비율은 2030년 25.3%, 2040년 34.4%까지 높아질 것으로 정부는 전망하고 있다.

17247035577447.jpg

지난해 12월 서울 마포구청에서 열린 '2023 마포구 노인 일자리 박람회'에서 한 노인이 일자리 목록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노인 일자리도 휴지나 낙엽 줍기 등 단순 일자리에서 벗어나 편의점·커피숍 운영까지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 새로 생긴 노인 일자리는 사회 참여와 교류를 강화한 게 특징이다. 편의점과 카페·식당 아르바이트, 전문직 퇴직자 재고용 등이 대표적이다. 충남 당진시와 천안시·공주시 등은 GS25 편의점을 운영하는 ㈜GS리테일과 업무 협약을 체결하고 노인 일자리 창출에 공동으로 나섰다. ‘시니어 동행 편의점’이라는 사업으로 자치단체가 편의점 가맹사업주로 가입한 뒤 노인을 채용하는 방식이다. 직원은 편의점을 직접 운영한다. 수익금으로 급여를 지급하고 초과 수익이 발생하면 직원을 추가로 채용한다. 장사가 잘되면 일자리가 그만큼 더 늘어나는 구조다.

낙엽줍기에서 커피숍 운영까지 다양화
오성환 당진시장은 “어르신이 일자리를 갖는 것은 생활비 마련을 통한 안정적인 노후생활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라며 "다양한 노인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17247035578848.jpg

지난 7월 대전 서구의 한 도로에서 노인이 손수레에 폐지를 싣고 있다. 신진호 기자

천안시는 시니어 카페 4곳을 운영하고 있다. 바리스타 자격증을 취득한 노인 34명이 교대로 커피를 내린다. 카페 4곳 중 2곳은 스타벅스로부터 레시피와 재료를 받아 계절 음료도 선보이다. 지난해에는 스타벅스와 협업으로 출시한 시니어 상생음료 ‘우리쑥! 곡물라떼’ 500잔을 계절 한정 메뉴로 판매했다.

아산 '할머니 국수' 맛집으로 소문
충남 아산에 있는 ‘할머니국수’는 지역 주민은 물론 관광객에게 국수 맛집으로 인기가 많다. 비교적 싼 가격에 엄마 손맛이 알려지면서 점심시간에는 줄을 서야 할 정도다. 2011년 문을 연 식당에는 60세 이상 여성 13명이 교대로 일한다. 식당 준비과정에는 아산시에서 예산을 지원했지만, 이후에는 수익을 통해 직원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 중이다. 개점 때부터 지금까지 일하고 있는 윤춘자(73·여)씨는 “식당에 나와 친구들과 음식을 만드는 일이 즐겁고 수익도 생겨서 좋다”라고 말했다.

17247035580266.jpg

광주광역시 광산구 우산동의 천원한끼 식당에서 노인일자리 참여자들이 재료를 준비하고 있다. 뉴스1

울산에서는 경험을 공공부문에 활용하는 사회서비스형 일자리가 확대됐다. 전기와 가스 등 전문 자격증을 소지한 퇴직자를 경로당 시설 안전 매니저로 채용하고 퇴직 경찰관을 활용한 ‘어르신 안전 지킴이 사업’도 추진한다.

정부·지자체, 폐지줍는 노인에 지원금
정부와 지자체는 폐지 줍는 노인 대책도 마련한다. 폐지 줍는 것을 포기하면 새로운 일자리를 마련하고, 계속 폐지 줍기를 원하면 수입을 보조하는 방식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국에서 폐지 줍는 노인은 1만4831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2~5월  전국 229개 시·군·구가 자체 조사한 결과다. 조사 대상자의 평균 연령은 약 78.1세였다. 65세 이상의 연령대를 5세 단위로 구분하면 80~84세 비중이 28.2%로 가장 컸다. 성별로는 여성이 55.3%로 남성보다 많았다. 이들의 월평균 소득은 기초연금 등을 합쳐 76만6000원이었다. 지난해 조사 때는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1주일에 32.4시간을 일하고 한 달에 15만9000원을 버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시는 폐지 줍는 노인을 지원하기 위해 전담기관을 운영하고 평균 수입의 2배를 지급할 계획이다. 폐지 수집 활동이 오래되지 않은 60대는 복지시설 도우미 등 공공 일자리와 도보 배달원 등 민간 일자리를 연계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서울 종로구에서 폐지를 줍는 이모(77) 할머니는 "온종일 폐지를 주워 팔면 1만원 정도 번다"라며 "이 돈은 주로 병원비로 쓴다"라고 전했다.

17247035581893.jpg

서울 마포구청에서 열린 '2023 마포구 노인 일자리 박람회'가 일자리를 구하려는 노인들로 북적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시 관계자는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노년층이 무작정 폐지 수집에 뛰어들어 빈곤이 가속하는 것을 막겠다"라고 말했다. 대구시는 폐지를 줍는 노인 200명을 선발, 기존 수입의 2배를 지급하기로 했다. ‘폐지 수집 일자리 사업단’을 편성하고 수집한 폐지를 고물상에 넘기면 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일자리 통해 고립·고독 예방하는 효과"
한남대 박미은(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재 65세~70대 초 사이 노인은 자신보다 더 고령인 부모를 보살피는 동시에 자녀의 경제적 부담을 떠안은 샌드위치 세대”라며 “이들의 사회 경력과 연령을 고려해서 생계 보장이 가능한 노인전용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전문 경력을 갖춘 노인이 많아지고 있지만, 이들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족한 것 같다”며 “가칭 ‘노인 일자리 플랫폼’을 구축해 기업에서 요구하는 시니어 인력을 당사자와 매칭해 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36,334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