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딥페이크·마약 마구 번지는데…텔레그램 11년간 압수수색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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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은 익명성과 이용자의 개인정보를 최우선 원칙으로 한다. 각국 수사기관이 범죄 수사 과정에서 협조 요청을 해도 텔레그램은 대부분 이를 거절하거나 무시한다. 이미지는 익명의 이용자들이 텔레그램을 사용하는 모습. 일러스트 챗GPT

텔레그램은 각국 수사기관을 비롯한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치외법권 지대다. 2013년 8월 출시 이후 한국 검·경이 성착취물 유포, 마약·자금세탁 등의 범죄 수사 과정에서 여러 차례 협조를 요청하거나 국제공조를 활용한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한 번도 성사되지 않았다. 2020년 ‘N번방 사건’ 수사 때도 경찰은 신원 확인 등을 위해 텔레그램에 지속적으로 수사협조를 요청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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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기자

수사기관이 메시지 내용은 물론 가입자 정보조차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은 텔레그램을 온갖 범죄의 온상으로 만들었다. 지금도 텔레그램 한 켠에선 마약이 공공연하게 거래되고 성착취물이 유통된다.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국내 텔레그램 월간 활성 이용자 수는 2021년 12월 286만명에서 지난 7월 316만명으로 2년여 만에 30만명가량 늘었다.ㅍ

압수수색도 수사협조도, '무대응' 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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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가 17개 시도교육청을 통해 파악한 결과 올해 학생들과 교원의 딥페이크 피해 건수는 총 196건으로 집계됐다. 중앙포토

‘서울대 N번방’ 등 대학가에 이어 일선 초·중·고등학교와 군부대까지 퍼진 딥페이크 성착취물 확산 사태에도 텔레그램이 활용되며 피해 규모가 커졌다. 결과적으로 텔레그램이 지향하는 “모든 정보가 유통될 수 있는 완전한 자유”는 범죄자들이 수사망을 피해 범행을 모의·실행할 수 철옹성이 돼 주고 있는 셈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딥페이크 사태를 계기로 텔레그램과 핫라인을 구축해 신속한 영상 삭제를 요청한다는 계획이지만, 텔레그램 측이 핫라인 구축 및 영상 삭제 요청에 응할지는 현재까진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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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기자

프라이버시를 앞세워 범죄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텔레그램의 원칙은 카카오·파인·왓츠앱 등 다른 메신저·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업체와 대비된다. 카카오의 경우 지난해 검·경 등 수사기관으로부터 총 3만 4250건의 압수수색 영장을 받았고, 이 중 법적 요건을 갖추지 않았거나 서버에 저장돼 있지 않은 정보 등을 제외한 2만 9167건의 압수수색에 응했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왓츠앱의 모회사인 메타도 지난해 압수수색을 포함해 정부기관의 협조 요청에 응한 사례만 3081건에 달한다. 성착취물 등 불법 콘텐츠가 유통되는 채널이나 계정에 대한 긴급 폐쇄 조치에도 적극적이다. 서버를 일본에 둔 라인 메신저의 경우 아예 “인터폴 또는 외교 경로를 통해 개인정보 공개 요청 등이 접수될 경우 대응한다”는 가이드라인까지 있다. 이에 따라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가 필요할 경우 수사기관이 수사협조를 요청하거나 일본과 국제공조해 영장을 보내면 가입자 정보나 메시지 내용 등을 확보할 수 있다.

검찰 관계자는 “네이버·카카오톡 등은 아이디를 조회해서 영장을 보내면 가입자 정보가 바로 나와 신속한 수사가 가능하지만 텔레그램은 아무런 정보가 나오지 않는다”며 “원칙적으로 수사에 협조하지 않아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받아도 이를 집행할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대놓고 마약 거래. 손 쓸 방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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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그램은 마약 판매와 유통, 구매 등 사실상 마약 거래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텔레그램 캡쳐

실제 텔레그램을 활용할 경우 가입자 정보조차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은 범죄 수사 과정의 크고 작은 어려움으로 이어진다. 텔레그램을 통한 거래가 상수(常數)로 굳어진 마약 범죄가 대표적이다. 과거 단순한 연락 수단에 그쳤던 텔레그램은 수년 전부터 마약 판매업자들의 광고 플랫폼이자 밀수부터 구매까지 거래의 모든 과정이 이뤄지는 마약 유통 플랫폼으로 활용되고 있다.

텔레그램을 활용할 경우 공급·유통·판매에 가담한 이들과 구매자 모두 서로의 신원을 모른 채 비대면으로 마약을 거래할 수 있다. 수사 과정에서 ‘드라퍼(dropper)’라고 불리는 말단 유통책이나 구매자를 검거하더라도 마약을 공급한 상선을 추적하기 어려운 이유다.

2억 6000만원 상당의 대마 2.5kg을 판매한 혐의로 지난 27일 1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이 선고된 20대 A씨 사건 역시 검찰은 텔레그램의 벽에 막혀 상선을 향한 수사로 타고 올라가지 못했다. 서울중앙지검 다크웹 전문수사팀은 이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A씨와 텔레그램으로 소통하며 대마를 공급한 상선의 존재를 확인했다. 문제는 텔레그램 닉네임만으론 상선의 신원을 특정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법원에서 해당 계정의 가입자 정보를 확인하기 위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는다 해도 텔레그램에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마약 수사의 목표는 유통망 차단인데, 마약 유통책이나 딜러들은 텔레그램 네트워크 뒤에 숨어 있어서 마약 공급 라인을 차단하는 것이 점점 어려운 상황이 돼가고 있다”며 “텔레그램엔 수십~수백개의 마약방이 있고 대놓고 마약 광고를 하거나 구인·구직도 이뤄지는데 잡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서 수사 과정에서 한계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e드러그 ‘사전예방’ 총력…언더커버도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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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텔레그램을 활용한 마약 범죄에 대응해 사전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한편 마약류 범죄에 대해 언더커버 수사를 가능케 하는 입법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뉴스1

텔레그램의 벽에 막혀 점차 마약 범죄 수사가 어려워지는 만큼 검찰은 사전 예방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개발이 완료돼 올해 초부터 본격 도입한 e드러그 모니터링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e드러그는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해 텔레그램 내에서 이뤄지는 마약 광고·거래 등을 자동으로 추적하는 시스템이다. 전국 42개 지방검찰청에서 운용중이고, 대검찰청은 각 검찰청에서 가동되는 e드러그 모니터링을 총괄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다.

검찰은 텔레그램으로 인한 수사의 어려움 등을 감안할 때 마약류 범죄에 대한 ‘언더커버(위장) 수사’ 역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대부분의 마약 범죄가 텔레그램을 활용해 수사망을 피해가고 있는 만큼 이를 파훼하기 위해선 잠입 취재가 사실상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현재 언더커버 수사는 아동성착취물 등 미성년자 대상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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