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국가채무 질도 악화…정부 ‘내부거래’에 적자성 채무 700조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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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은 29일 ‘국정브리핑’에서 “지난 5년간(문재인 정부) 국가채무가 무려 400조원 이상 크게 늘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내년도 에산안을 보면 현 정부 3년 동안에도 국가채무는 200조 넘게 불어난다. 국가채무의 규모가 늘어날 뿐만 아니라 ‘국가채무의 질’이 악화하고 있다. 국민 부담으로 이어지는 ‘적자성 채무’가 빠르게 늘어나면서다.

국가채무는 금융성 채무와 적자성 채무로 나뉜다. 금융성 채무가 늘어날 때는 외화 매입 등으로 자산도 증가하기 때문에 상환을 위한 재정적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러나 적자성 채무는 대응하는 자산이 없어 국민 세금으로 상환해야 하는 채무다.

정부 내부거래에 적자성 채무 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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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기자

적자성 채무는 코로나19가 확산한 2020년 이후 최근까지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예정처)에 따르면 적자성 채무는 2019년(413조2000억원) 대비 2023년(726조4000억원)으로 313조2000억원 증가했다. 같은 기간 금융성 채무가 90조3000억원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3.5배 큰 증가 폭이다.

적자성 채무가 계속 늘어난 것은 정부가 지난해 56조4000억원에 이르는 역대급 세수 구멍을 메우는 과정에서 진행한 ‘내부거래’ 탓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건전재정 기조’를 강조하는 정부가 지난해 국가채무 전체 규모를 늘리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반회계’와 ‘기금’ 간 거래를 통해 돈을 끌어다 썼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금융성 채무가 돼야 할 돈이 적자성 채무로 변했다.

지난해 부족한 세입을 보전하기 위해 정부는 공공 목적의 자금을 모아둔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에서 각종 사업 예산을 처리하는 ‘일반회계’로 돈을 넣어줘야 했다. 예정처 결산 결과 지난해에는 공자기금이 외환시장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외국환평형기금(외평기금)’에 빌려준 돈을 미리 받고(14조4000억원), 빌려줄 돈도 줄여서(5조5000억원 감축) 이를 일반회계로 예탁(9조6000억원)했다. ‘공자기금→외평기금’ 예탁 금액은 대응하는 외화 자산이 있으므로 금융성 채무가 되는데, 지난해엔 이 돈이 ‘외평기금→공자기금→일반회계’로 예탁되며 대응 자산이 없는 적자성 채무로 전환됐다는 게 예정처의 분석이다.

내년 국고채 발행도 급증…적자국채 86.7조

내부거래를 통해 재원을 끌어다 쓴 탓에, 내년에는 국고채 발행 외에는 여력이 부족한 상황이다. 기획재정부는 내년 국고채 발행을 역대 최대 수준인 201조3000억원으로 계획했다. 올해 본예산 대비 42조8000원(27%) 급증한 규모다. 일반회계의 세입 부족분을 보전하기 위한 ‘적자국채’가 86조7000억원으로, 대부분을 순증분(83조7000억원)에서 충당할 전망이다.

정부 기금이 민간 자금에 가까운 우체국보험 적립금에서까지 돈을 빌렸다는 점도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난해 ‘정보통신진흥기금(정진기금)’이 수입 부족을 겪자 우체국보험 적립금 2500억원을 차입했는데, 예정처는 “정진기금의 차입 가능 여부가 명확하지 않다”며 “우체국보험 적립금의 조성 목적‧운용 원칙에 맞지 않고, 정진기금도 공자기금으로부터 자금을 예수할 때보다 이자 부담이 심화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국가채무에 해당 금액을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런 차입이 국가재정법을 어긴 ‘위법 차입’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기재부는 “기본적으로 현행법에서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운용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전문가는 정부가 ‘악성 채무’인 적자성 채무를 중심으로 국가채무를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수 보전 대책으로 국고채를 발행하면 재정 지표가 나빠지니까 기금을 당겨 쓴 것”이라며 “재정 지표가 건전한 것처럼 만들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건전하지 않게 되고, 이는 국민이 재정 상태를 알기 어렵게 한 것이기 때문에 분식(粉飾)이라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손종필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정부가 부족한 재원을 마련하면서 정부 채무 규모에 영향을 미치는 국고채 발행 대신 공자기금으로부터 돈을 받는 것은 꼼수”라며 “이런 재정 운용은 건전재정을 기조로 삼는 윤석열 정부에서 국가채무 지표 관리에 얽매이면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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