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퓰리처상 받은 한국인, 그를 사진기자의 길로 이끈 카파[BOOK]

본문

17249953488395.jpg

책표지

로버트 카파
김경훈 지음
아르테

스페인 공화파 정부군과 프랑코의 파시스트 반란군이 내전을 벌이고 있던 1936년 9월 5일. 정부군에 가담한 한 민병대 병사가 참호를 빠져나와 언덕을 기어오르는 순간 적군의 총탄을 맞고 손에 쥐었던 소총을 놓치며 뒤로 쓰러진다. 바로 이 장면을 참호에 같이 있던 종군 사진기자가 카메라로 포착했다. 그 유명한 ‘쓰러지는 병사’ 사진이다.

1724995349142.jpg

'쓰러지는 병사'. 카파의 대표작이자 스페인 내전의 아이콘이 된 사진이다. [사진 로버트 카파]

목숨을 걸고 전장 속에 뛰어들어 이 모습을 셔터로 잡은 사람은 로버트 카파. 당시까지만 해도 무명이었던 카파는 이 사진 한 장으로 20대 초반의 나이에 일약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전쟁사진가‘가 됐다.

신간 『로버트 카파』는 ‘쓰러지는 병사’를 비롯해 세기의 전쟁사진을 다수 남긴 카파의 생전 행적을 좇아 직접 현장을 답사하며 그의 작품과 삶을 오늘에 되새겨 본 책이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김경훈 로이터통신 도쿄지국 수석 사진기자가 펴냈다. 고교생 때 카파의 사진을 보고 사진기자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지은이의 카파에 대한 단순한 ‘헌사’만은 아니다. 전장의 최전선에서 취재하며 겪었을 공포와 트라우마를 도박과 알코올로 달래며 연약한 인간의 얼굴을 했던 카파의 드라마틱한 인생을 솔직하게 들여다봤다.

17249953494263.jpg

프랑스 파리 에펠탑을 배경으로 스마트폰에 띄워져 있는 사진은 '매그넘' 회원들과의 점심 모임에서 루스 오킨이 촬영한 로버트 카파의 모습이다. [사진 김경훈]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난 카파의 원래 이름은 앙드레 에르노 프리드먼. 로버트 카파는 그가 프랑스 파리에서 난민생활을 하던 중 만난 연인 게르다 타로가 둘의 사진 비즈니스를 위해 ‘미국에서 온 유명 사진사’라며 홍보용으로 내세웠던 가공의 인물이다. 앙드레가 찍은 스페인 내전 사진들은 로버트 카파의 이름으로 사진 잡지 ‘라이프’ 등 각종 매체에 실리면서 전 세계 독자들에게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7249953497445.jpg

1936년 스페인 내전 당시 길가의 묘비에 기대어 있는 게르타 타로. 타로는 전쟁에서 사망한 최초의 여성 종군 사진기자로도 알려져 잇다. [사진 로버트 카파] '

지금은 총탄이 빗발치는 우크라이나 전쟁터에서 병사들이 몸에 설치한 카메라로 동영상까지 촬영해 유튜브 등을 통해 살육전을 전 세계에 보여 주는 시대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전장의 병사가 총탄을 맞고 전사하는 장면의 사진은 전대미문의 광경이었다. ‘쓰러지는 병사’를 두고 연출된 게 아니냐는 논란도 있었지만 카파의 명성은 여전했다.

17249953501537.jpg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위해 오마하 해변의 바다에 뛰어든 미군 병사의 모습. 전쟁이라는 격랑에 휩쓸린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사진으로 평가 받고 있다. [사진 로버트 카파]'

2차 세계 대전의 판을 뒤집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찍은 사진 11장은 카파의 대표작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이다. 카파는 1944년 6월 6일 프랑스 오마하 해변에서 공격부대의 제1진과 함께 맨 앞에서 상륙정을 타고 침투해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살벌한 현장을 촬영했다. 아수라장의 공포 속에서 거의 정신이 나간 상태로 찍어 댄 사진들은 초점이 흔들렸지만 그 자체로 전쟁의 잔혹성을 고발하는 효과가 극적이었다.

17249953504403.jpg

카파의 카메라에 남아 있던 흑백필름의 마지막 컷. 카파는 이 사진을 활영하고 얼마 뒤 숨졌다. [사진 로버트 카파]

2차 대전 막바지에는 미군 제17공정사단 소속 병사들과 합류해 카메라를 다리에 묶은 채 낙하산을 타고 적지에 함께 뛰어들기도 했다. 세계 대전에서도 살아남은 카파는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1954년 베트남과 프랑스 간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종군 취재 도중 대인지뢰를 밟아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17249953508439.jpg

1948년 프랑스 파리의 센 강변에서 크리스찬 디올의 의상을 입고 있는 모델. 전쟁 중에 거의 대부분 흑백으로 시잔을 찍었던 카파는 패션 사진은 주로 컬러로 찍었다. 그의 패션 사진은 다큐멘터리풍의 느낌을 준다. [사진 로버트 카파]

카파이즘이라 불리는 그의 사진은 지금도 저널리스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카파의 사진에는 전쟁 속에서 인류가 겪었던 고통, 공포, 파렴치함 그리고 상실의 아픔이 그대로 담겨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은이 김경훈 기자는 카파의 사진이 전쟁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어떻게 바꿨는지, 그리고 현대 포토저널리즘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깊이 있게 짚어 봤다. 중동에서, 우크라이나에서 아직도 전쟁은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카파의 후배들은 여전히 전쟁터에서 셔터를 누르며 그를 기억한다.

1724995351259.jpg

카파가 1948년 여름 프랑스 코트다쥐르에서 촬영한 피카소 가족의 모습. 화가 피카소가 40세 연하의 연인 프랑수아즈 질로에게 파라솔을 씌워주고 있다. [사진 로버트 카파]

이 책에는 카파의 대표작이 여럿 실려 있다. 그가 남긴 사진만 훑어봐도 카파의 체온을 느낄 수 있다. 사진과 현대사, 저널리즘에 관심을 가진 독자들이라면 카파의 세계에 깊숙이 침투해 격동의 20세기 전반기를 함께 호흡할 수 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37,220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