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日 총리 다시 한번”…'아베의 정적' 노다 전 총리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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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67) 전 총리가 일본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 당대표 출마를 선언했다. 집권당인 자민당의 총재 선거가 다음 달 27일로 예정된 가운데 “다시 총리를 목표로 한다”며 전면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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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대만에서 열린 한 포럼에 참석한 노다 요시히코 전 총리. EPA=연합뉴스

아베의 정적, 정권 내줬다 비판도

일본 마이니치신문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노다 전 총리는 지난 29일 지바(千葉)현 나라시노(習志野)시에서 “입헌민주당 대표 선거에 도전해 다시 총리를 노리는 결의를 굳혔다”고 밝혔다. 입헌민주당의 당대표 선거는 다음 달 23일 치러진다.

동일본 대지진 이후인 2011년 9월부터 이듬해 12월까지 1년간 총리로 옛 민주당 정권을 이끌었다. 그는 자위관의 아들로 태어나 와세다대를 졸업하고 가정교사, 도시가스 점검원을 하다 1987년 정계에 입문했다.

그는 정치적 적수였던 고(故)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총리와 주요 사안마다 논쟁을 벌여 ‘아베의 정적’으로 불리곤 했다. 그의 행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2011년 11월14일 국회에서 열린 아베와의 토론이었다. 그는 개혁 관련 법안 등에 자민당 총재인 아베가 협력한다면 같은 달 16일 중의원(하원)을 해산하겠다고 말했다. 내각제인 일본에선 다수당의 총재가 총리가 되는데, 중의원을 해산해 총선거를 실시하게 되면 다수당이 바뀔 수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상 이틀 뒤 해산할 수 있다는 거침없는 노다 총리의 발언에 아베는 놀란 표정을 짓기도 했는데, 결국 노다 총리는 중의원 선거에서 참패해 정권을 자민당에게 뺏겼다.

그는 이날 당시 일을 언급하며 “그 판단으로 많은 동료를 잃었다. 가슴 아프기 짝이 없다”고 돌아봤다. 아베 정권과 스가 정권, 기시다 정권으로 이어지는 자민당 집권기를 거치며 일본의 중산층이 얇아졌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말 불거진 자민당의 정치자금 스캔들로 돌아선 민심을 “수십년에 한번 올까 말까 한 기회”라고 칭했다. “자민당을 지지하다 실망한 보수층을 우리의 메시지로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필요하다”면서다.

'대례의궤' 들고 방한한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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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2월 이명박 대통령과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정상회담을 마친 후 료안지(龍安寺) 경내를 둘러보고 있다. 두 정상은 당초 20분간 산책을 할 예정이었으나 당시 위안부 문제를 놓고 두 정상의 의견이 충돌하면서 이 대통령은 10여 분 만에 일정을 마쳤다.교토 AP=연합뉴스

그의 총리 재임 시 한·일 관계는 부침을 겪었다. 그는 총리직에 오른 직후 첫 외교 순방지로 한국을 찾았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만나 한·일 통화스와프를 합의하는 등 성과가 있었는데,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하는 과정이 담긴 ’대례의궤(大禮儀軌)’ 등 5권을 직접 들고 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으로 양국 정상 간 의견이 충돌했다. 2011년 12월 일본 교토를 찾은 이 대통령은 친교 일정을 단축하기도 했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 가려 주목도가 덜했던 입헌민주당 당대표 선거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지만, 그의 출마를 바라보는 시선은 복잡하다. ‘정권을 내준 총리’라는 인식이 야당 내에 여전하기 때문이다. 당 대표 선거에서 패할 경우 정치적 입지가 좁아질 것이란 시각도 나온다.

자민당 지지층을 빼앗아 다음 선거에서 자민당이 단독으로 과반수를 점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노다 전 총리의 생각에도 일본 언론은 의구심을 드러냈다. 마이니치는 노다 전 총리가 보수층을 노리지만, 기존 입헌민주당 지지층이 떠날 수 있는 위험 요소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폭넓은 지지를 얻기 위한 밸런스(균형)가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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