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번아웃 위기 심장의사 “제발 중증 받지 말라" 응급실에 요청 [폭풍전야 응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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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응급실 운영난의 핵심 원인이 ‘배후 진료’라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의료 현장에선 응급 의사가 있어도 내과·외과·소아청소년과 등 세부 과목 전문의가 없어 치료를 못 받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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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심한 의정 갈등이 6개월 이상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3일 오후 대전의 한 대학병원 권역응급의료센터에 도착한 119구급대원들이 환자를 응급실로 급히 이송하고 있다.ㅡ김성태

정부와 의료계는 ‘응급실 위기설’과 관련해선 의견이 엇갈리지만 “배후 진료가 위험하다”는 인식은 같다. 복지부가 3일 공개한 통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복지부는 생명과 직결된 27개 질환을 진료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102곳으로 전공의 이탈 이전(109곳)보다 7곳 줄었다. 뇌·심장 같은 초응급 질환의 진료 가능 병원이 줄었다. 뇌출혈 수술(거미막하 출혈) 진료기관이 139곳에서 135곳으로, 다른 뇌출혈 수술(거미막하 출혈 외) 기관이 167곳에서 161곳으로, 뇌경색 중재술 기관이 139곳에서 132곳으로 줄었다. 흉부 대동맥 수술은 72→69곳으로 줄었다. 그 외 영유아 장중첩 및 폐색 수술은 93→83곳으로, 사지접합 수술 기관도 82곳에서 69곳으로 줄었다.

수도권 응급실 11곳에서 진료를 거부당해 의식 불명에 빠진 2세 여아도 “소아과 의사가 없거나 소아신경과 의사가 없다”는 이유였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소아가 계속 경련을 하고 있다면 수용을 하지만 멈춘 상황이라면 우리 병원도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병원에선 얼마 전 소아신경파트 교수가 ‘번아웃’을 호소하며 나가는 바람에 소아과 전문의가 부족한 상황이다.

수년 전부터 거론된 흉부외과·신경외과·소아과 등 필수의료 과목의 의사 수가 부족한 문제도 배후진료의 위기를 가속화하고 있다. 특히 소아과 의사 수 부족은 심각하다. 대한소아청소년외과의사학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 실질적으로 진료가 가능한 소아신경외과 의사는 10명이다. 소아정형외과 의사는 15~20명, 소아흉부외과는 15명이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소아흉부외과 교수는 “소아 응급실에서 수술할 수 있는 교수는 전멸”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복지부에선 ‘응급실에 의사가 있다’ 이러는데, 의사가 있어도 소아과에선 수술이 필요한 환자는 못 받고 있다”면서 “그러니까 결국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로 올라와 수술을 받은 사례도 있다. 이 교수는 “얼마 전 경북 경주에서 복막염에 걸린 한 아이가 수술이 필요한 응급 환자였는데, 경북・경남은 물론 인근 지역에서 수술할 수 있는 의사가 없어 서울까지 올라와 수술을 받았다”면서 “올라오는 과정에서 장이 다 썩어서 잘라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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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연휴 기간 응급실 유지에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3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 상황실에서 의료진과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뉴스1

이러한 세부 전문의가 없으면 응급실에선 소송 우려 등으로 환자를 받기 어렵다고 호소한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성인과 소아가 뭐가 다르냐고 하지만, 전혀 다르다”면서 “응급실에서 환자 제대로 치료 못 했다는 이유로 소송당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배후 진료 의사들의 피로가 폭발 직전에 왔다. 서울의 빅5 병원의 심장내과 의사는 "밤새 당직 서고 다음날 심장 시술을 하고 외래 진료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중증 환자를 진료하기 더 힘들어졌다. 중증 환자가 오면 시술하고 중환자실·일반병실에서 케어해야 한다. 이게 점점 쉽지 않게 돼 응급실에 '중증 환자를 제발 받지 말아달라'고 요청한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실은 ‘교통 정리’를 하는 곳”이라면서 “수술을 할 의사가 없으면 응급실이 문만 연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없다”고 말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응급의료 등 비상진료 대응현황 브리핑에서 중증·응급질환 진료 제한과 관련 “필수의료 인력 부족에 기인한 오래된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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