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소에게 총을 겨누는 사내, 칼을 들고 사냥감을 찾아 나서는 사냥꾼, 물고기를 낚시하는 인어…. 강철규 작가가 그리는 숲속은 기이하고 수상하다. 그런 미스테리한 분위기 때문인지 자꾸만 화면 속 상황을 주시하게 된다. 누가 사냥을 하고, 누가 쫓기는 것일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강철규 작가 [사진 아라리오갤러리]

강철규 작가는 숲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다. 정확하게는 숲이 아닌 자연이 배경이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사람이 어딘가에 서 있는 풍경, 초원을 달려가거나, 자동차 헤드라이트 앞에 서 있는 모습들은 스산하고 의문스럽지만, 왠지 모를 기시감도 느껴진다. 그 출처는 영화나 사진 혹은 소설 같은 매체일 수도 혹은 무의식 속에 떠오른 내면의 풍경일 수도 있다. 작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감정, 표상, 소망을 외부 세계나 타인에게 이전시켜 그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만드는 ‘투사’와 문학에서 다른 주제를 사용해 은유적으로 의미를 전하는 수사법인 ‘알레고리'를 통해 독창적이고 풍부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하는 중이다.

강철규, 적(Enemy), 2023, oil on canvas, 145.5x227cm

“알다시피 알레고리는 본질적으로 읽기의 특성을 지닌다. 알레고리적 이미지 또한 수많은 의미가 존재하는 하나의 입구로서 해독해야 하는 문자다. 작업을 자꾸만 읽어내고 싶다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직관적인 서사를 숨기는 데엔 미학적인 의도도 있겠지만 사건보다 감각과 심리에 관점을 맞추려고 하기 때문이다. 아마 사건이 중요했다면 작업은 현실적인 기록에 충실했을 테고, 상상을 제한하는 이미지가 됐을 것이다. 보는 사람마다 각자의 시각으로 접근하면 좋겠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경험이나 감각을 투사한 것은 변함없다. 투사의 개수가 단수인지 복수인지에 따라 사건 혹은 내러티브로 보일 수 있겠다. 점차 여러 개의 투사를 작업에 표현하는 건 일부러 난해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다. 삶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 들수록 복잡한 형식이 되는 아이러니가 있다. 작품활동을 하면서 고전에 등장하는 도상이나 표현을 연구하고 있다. 동경하는 작가들에 대한 경의를 담아 그들의 작업을 오마주하는 부분이 있다.”

강철규, 사냥일지(Hunting Note), 2023, oil on canvas, 227x145.5 cm

“어디까지나 소소한 취미다. 명확하게는 글쓰기보다 이야기를 좋아한다. 내러티브에 충실한 영화·소설을 좋아한다. 그 취향이 지나쳐서 글을 써봤다. 쓰는 동안은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듯 진귀한 경험을 한다.”

“가급적 작업 외의 나는 드러내고 싶지 않다. 이런 태도 때문에 종종 교정을 요구받기도 하는데 쉽지 않다. 그래서 더 그림으로 그려낸다. 자신을 완벽히 드러내면서도 완벽하게 모르게 하는 것이 그림이다. 이것이 그림의 큰 매력이다. 나의 성향상 그림을 택한 건 필연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처음엔 단순했지만 점차 복합적인 원동력이 작용하고 있다. 이제 작업이 주된 노동이 되었고, 작업을 통해 나의 여러 모습을 알리고 있다. 결국 생존과 가장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지 않나 싶다.”

강철규, 내몰리는 염소와 낚시하는 인어(Mermaids Fishing, Goats Falling), 2024, oil on canvas, 160x130.3cm

“‘내몰리는 염소와 낚시하는 인어’는 과거와 현재 상황이 역전되면서 겪는 모순에 관련된 것이다. 지금까지 동물의 특성과 인간의 자아를 대입한 비현실적인 도상을 그려왔는데, 이번에 주된 도상은 인어다. 인어가 물고기를 낚시하는 아이러니한 상황, 염소를 밀어내거나 목을 잘라내는 장면이 연출된다. 이런 상황의 모순과 기시감은 나의 현재 상황을 잘 드러낸다.
소품(작은 크기의 회화나 드로잉)으로는 ‘헌팅트로피’를 출품했다. 높은 가격을 주고 샀지만 결국 관상용이 되어버린 물건들이 작품의 배경이다. 욕심을 내서 산 비싼 값의 신발, 평소 신발 가격의 세 배는 되지만 언젠가 예쁘게 신고 싶어 샀던 신발을 샀던 경험이 담겼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에 관해 탐구 중이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알레고리를 통해 세상 밖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