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도촬 300장 내놔야 입장" 딥페이크, 텔레그램 떠나 여기 숨는다

본문

17255675929019.jpg

익명의 청소년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텔레그램을 사용하는 생성 이미지. 일러스트 챗GPT

최근 텔레그램이 딥페이크 성착취물 유통의 온상으로 지목된 가운데 또 다른 채팅 앱인 디스코드·라인과 다크웹 등 보다 더 은밀하게 접속할 수 있는 플랫폼에서 성범죄가 활개치고 있다. 경찰의 텔레그램 법인 내사 등 수사에 착수하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하위방’에서 일부 선별된 이용자만 입장할 수 있는 ‘폐쇄형 상위방’으로 이동하며 범죄 구조가 진화하는 모습이다.

5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X에서 ‘지인 능욕’ 등 디지털 성범죄 관련 키워드를 검색해보니 불법 합성물을 보여주겠다는 라인 계정이나 디스코드 참여코드 등이 다수 나왔다. “지인·연예인·인스타그램 유명 인플루언서를 지능(지인 능욕)할 사람 DM(메시지) 달라”는 글도 있었다. X는 사용자를 일대일 채팅 플랫폼으로 유입시켜 각종 성범죄물을 볼 수 있게 하는 ‘관문’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게시글에 공개된 한 라인 계정에는 불법 촬영·합성물을 공유한 대가로 문화상품권·가상화폐 등 금전 거래를 유도한 정황도 담겼다.

게임용 채팅 앱 디스코드에선 우선 ‘입장방’으로 초대된 뒤, 새로운 이용자를 초대하거나 성착취물을 업로드하는 등 일정 조건을 충족한 이들에게만 수위가 더 센 성착취물을 볼 수 있는 ‘본방’의 링크가 공유되고 있었다. 일부 은폐된 지인 능욕방은 ‘도촬(불법촬영) 300장’ 등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며 불법 촬영을 종용하기도 했다. 일부 이용자만 입장 가능한 이른바 상위방에 들어가기 위해 수천 명이 대기 중인 곳도 있었다.

17255675930374.jpg

불법 합성물을 공유하는 방으로 연결되는 라인 계정과 디스코드 참여코드를 홍보하는 글이 X에 올라와있다. 사진 X 캡처

사이버 보안 전문가인 김지연 대구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는 “실제 범죄가 이뤄진 채팅방 등이 노출될 경우 경찰에 발각되기 쉽기 때문에 나름의 검증을 거친 이용자들끼리 더 은밀하게 숨어드는 것”이라며 “수사가 시작돼도 본래 방은 폭파시키고 그 이후에 다른 방(입장방)에 도달한 사람에게만 새 링크를 공유하며 범죄를 이어간다”고 말했다.

일대일 채팅 앱뿐 아니라 다크웹(전용 브라우저 등을 통해 접속 가능한 숨겨진 사이트)도 딥페이크 성범죄의 또 다른 온상으로 지목된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 따르면, 다크웹을 포함해 성인 사이트에서 디지털 성범죄물을 삭제 지원한 건수는 지난해 11만 4672건으로, 2022년 9만 5485건에서 20%가량 증가했다. 여성인권진흥원 관계자는 “다크웹의 경우, 공유 운영자 정보와 삭제를 요청할 창구가 없는 등 피해자 지원책의 실효성이 다른 플랫폼에 비해 낮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다크웹에 접속하는 국내 이용자 수는 올해 들어 급증했다. 박충권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인터넷진흥원(KISA)으로부터 제출받아 지난달 30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들어 7월까지 대표적인 다크웹 접속 브라우저인 ‘토르’의 일평균 국내 이용자 수는 4만 3757명이었다. 지난해(1만 8801명)보다 2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김 교수는 “10대 등 젊은이들이 이용하는 모든 온라인 플랫폼은 하나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텔레그램만의 문제는 아니다”며 “오픈 검색창에서 홍보 링크를 타고 들어가 점점 더 깊숙이 숨어 들어가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고 했다.

경찰이 딥페이크 성범죄 방조 혐의로 텔레그램에 대한 내사에 착수한 가운데, 관련 범죄를 저지른 이들도 잇따라 검거되고 있다. 지난 4일 부산경찰청은 디스코드를 통해 딥페이크 영상 등 불법 음란물을 판매한 자들과 구매자들을 검거했다. 이날 경기 안산에서도 텔레그램을 통해 불법 딥페이크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판매한 고등학생이 경찰에 형사 입건됐다. 서울청 사이버수사대 관계자는 “다수가 이용하는 플랫폼에선 전부 범죄가 횡행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텔레그램 피해가 가장 크다 보니 우선 텔레그램 위주로 집중 수사를 벌이는 중”이라고 말했다.

앞서 2020년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성착취물을 공유하던 이들은 이른바 ‘대피소’ 채널을 만들어 범죄를 이어갔다. 당시에도 디스코드가 새로운 유통 경로로 떠오른 바 있다. 채다은 법무법인 한중 변호사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가해자들은 어떤 앱을 활용해야 수사망에 안 걸리는지를 미리 알고 움직인다”며 “연예인을 대상으로 한 딥페이크 범죄가 일반인에게까지 확대된 만큼 제3의 범죄를 막고 성범죄 가담자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라도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0
로그인 후 추천을 하실 수 있습니다.
SNS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38,675 건 - 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