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세계는 변화무쌍 생명체”…하나로 정의될 수 없는 진짜 세상을 그린다 [더 하이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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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나는 한국의 아티스트다 ⑤ 이세준 작가

지난 2022년부터 9월은 ‘예술의 달’이 되었습니다. 국내 대표 아트 페어 키아프와 세계적으로 가장 ‘힙’하다는 아트 페어 프리즈가 함께 열리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막이 열리는 4일부터 서울은 예술에 대한 열정과 관심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겠죠. 한국 아티스트에 대한 관심도 증폭됩니다.

더 하이엔드가 올해도 ‘나는 한국의 아티스트다’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키아프 하이라이트 작가들 중 주목할만한 이들을 선정, 묵묵히 예술의 길을 걷고 있는 한국 아티스트들을 다시 한번 조명합니다.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The way to understand the world)."

이세준 작가의 홈페이지는 이 문장으로 시작된다. 그가 어떻게 작업을 해나가는지, 그의 예술 세계를 함축하는 문구다. 이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세계의 구조를 반영한 ‘그리기의 형식’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모두 우리가 사는, 바로 지금의 세상을 표현한 것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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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구조를 반영한 그리기 형식을 만들어 가는 작가 이세준. 본인 제공

어떤 작업을 하나.

“나는 회화라는 오래된 미디어를 다룬다. '그림'과 '그리기'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소재로 삼기도 하고, 내가 바라본 세계의 모습을 닮은 그리기의 형식을 구축하려 하고 있다.”

이 작가의 작품은 어렵다. 아니, 복잡하다. 통념상 알고 있는 조화로운 색감 대신 서로 어우러지지 않는 색 조합은 물론이고, 작품 안에 들어있는 사물과 풍경, 세밀하고 거친 그리기 기법이 하나의 화폭에 섞여 충돌한다. 봄·여름·가을·겨울의 사계절을 하나의 화면에 담는다든지, 해가 내리쬐는 정오와 해 질 녘을 동시에 선보이며 시간의 흐름을 하나의 세상으로 그려내는가 하면, 추상화와 구상화를 한 번에 섞는 식이다. 각자의 개성을 가지고 있는 색과 사물, 기법이 한데 모여 하나의 ‘세계’를 이루는 것, “하나의 개념이나 사물로 정의 내릴 수 없는 진짜 세상을 그리겠다”는 게 이 작가의 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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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 세계의 그림_랍스터 편지(진행 중) Oil, Acrylic and fluorescent pigments on Linen, 112.1x145.5cm 2024


여러 기법과 사물 등이 복잡다단하게 섞여 있다.

“다양한 사건과 행위·감각·감정 그리고 온갖 형상들이 가득 차 쏟아지고 있는 이 세계의 어떤 일부분만이 아닌, 전체를 왜곡 없이 온전히 표현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작업에 임한다. 이 세계는 서로 다른 것들이 동시에 함께 존재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계속해서 변화하는 일종의 거대한 생명체 같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그리기로 구현하기 위해 여러 조형 요소의 대비를 보여주고 충돌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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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을 유한 속에 담는 방법. Oil on canvas 183.3x738.1cm 10pcs, xxxx-xxxx

이 작가는 다양한 주제를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작품 구조를 실현하기 위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고 이어서 새로운 캔버스를 붙여가며 크기를 확장하는 회화 설치 작업을 즐긴다. 2010년대 초반에 그렸던 이 작가의 초기작들은 하나의 내용으로 한 점의 그림을 완성하고, 이를 이어 다른 주제를 가졌지만, 끝말잇기처럼 연결할 수 있는 또 다른 작품을 그려 이어 붙여가며 캔버스의 전체 크기를 키워갔다. 최근엔 ‘확장’이란 방식은 같지만 이야기가 흘러가듯 옆으로 이어지는 작품을 그려 두 그림 사이를 연결하는 또 다른 그림을 그려 끼워 넣는 방식으로 작업 스타일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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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공간초월의 가능성 연구를 위한 회화. Acrylic and fluorescent pigments on canvas Panel 391x521.3cm (6pcs.), xxxx-xxxx

확장 작업이 흥미롭다. 어떻게 만들어지나

“초기작은 정확하게 몇장을 그리겠다는 결정이나 계획 없이, 말을 토해내듯이 그림을 그려나갔다. 더는 할 말이 없을 때까지 쏟아낸 작업이었다. 최근엔 약간 방법론의 변화가 생겨서 똑같이 여러 점의 그림이 붙어 있지만, 하나의 그림에서 출발한다. 각각 독립된 완성된 그림,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리고 두 그림 사이에 들어가는 이미지를 상상해서 한점을 더 그린다. 그 작품은 서로 다른 두 작품을 연결하는 브릿지 역할을 한다.”

다리 역할을 하는 그림은 마름모꼴이나 부채꼴 모양의 캔버스를 사용한다. 좌우에 있는 그림을 잇는 브릿지 작업이라는 것을 보는 사람에게 확실히 인식시키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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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마침내 너와 내가 만나면'의 1부 전시 전경. [사진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브릿지의 모양을 다르게 만든 이유는.

“브릿지 역할을 확실히 하는 것도 있지만, 관람객이 의문을 갖게 하고 싶었다. 관람객은 이 그림을 보면 ‘왜 이 캔버스는 이렇게 생겼을까’ 생각하고 고민하게 된다. 작품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고민하고 답을 스스로 찾아내는 시간, 그것이 예술을 즐기는 것이고 그 시간을 제공하고 싶었다.”

작업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이 외부 세계와 사람, 여러 대상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과 더 알고 싶다는 열망 같은 것이 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 자체를 정말 좋아한다.”

그는 이번 키아프 서울에 '가능 세계의 그림' 시리즈 중 '까마귀의 밤'을 처음으로 선보인다. 이 시리즈는 하나의 캔버스 안에 다양한 이야기와 사건들을 동시에 담는 것이 특징이다. 이 외에도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계속해서 새로운 이미지의 그림을 덮어 그리며 마치 지층처럼 물감층을 쌓아가는 ‘지질학적 회화(Geological Painting)’ 시리즈의 작은 그림들도 공개했다.

작품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가능 세계의 그림’ 시리즈에선 내 선택으로 이어져 온 여러 사건과 내가 선택하지 않아서 일어나지 않은 모든 가능성의 사건들을 동시에 담았다. 복잡하고 다의적인 내 그림을 감상하면서 오래전에 잊고 지냈던 가능성의 기억을 떠올리는 시간이 되길 기대한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나.

“얼마 전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가 예술을 통해서 감동을 하는 것은 일종의 교통사고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어떤 작품이 마음에 들어오고, 의미 있게 느껴지는 것은 결코 작품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작품과 만났을 때 그 순간의 상황, 그리고 자신의 주관적인 경험이 함께 정확하게 맞아떨어졌을 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예술을 하기보다는 단 한 명에게라도 영혼의 울림을 주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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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세준은...

홍익대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서울시립미술관 신진작가 지원프로그램 SeMA 제5기(2012)에 선정된 것을 시작으로, 뉴욕 아트 쇼 최우수 작가상(2013), ‘Art in Culture’ 동방의 요괴들 Best10(2013), 제1회 KSD 미술상 대상(2019), 제23회 송은미술대상(2023) 등을 수상했다.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 「픽션+미토콘드리아+시스템_ 김상소, 이세준, 정성진 3인전」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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