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청담·한남동 대신 강북 골목이 떴다…요즘 뜬다는 브랜드 총집합 [비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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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가봤어?” 요즘 공간은 브랜드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요소입니다.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장소를 넘어 브랜드를 설명하고, 태도와 세계관을 녹여내니까요. 온라인 홍수 시대에 직접 보고 듣고, 만지며 감각할 수 있는 공간은 좋은 마케팅 도구가 되기도 하죠. 비크닉이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매력적인 공간을 탐색합니다. 화제의 공간을 만든 기획의 디테일을 들여다봅니다.

쉽게 와주지 않을 것 같았던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산책하기 좋은 이 계절, 여러분은 어떤 길을 좋아하나요? 걷기 좋은 길은 다양하지만, 자연과 함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서울 경복궁 일대 서촌과 북촌, 삼청동은 이전부터 많은 이들이 찾았던 도심의 대표적 산책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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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종로구 윤보선길에 문을 연 라이프 에티켓 브랜드 '희녹'의 북촌 플래그십 스토어. 출입문이 있는 한쪽 벽면을 모두 열 수 있도록 해 골목의 풍경을 내부로 들였다. 사진 희녹

그런데 요즘 북촌 일대에 새로운 변화가 나타나고 있어요. 미술관과 갤러리, 카페와 식당이 자리를 잡아 온 오밀조밀한 길에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가 스니커즈 매장을 내고, 대형 뷰티 브랜드도 플래그십 스토어(대표 매장)를 열었죠. 문화유산이 가득한 거리인 만큼, 한국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도 새롭게 자리를 잡았고요.

오늘 비크닉은 서울을 찾는 외국인에게도, 내국인에게도 사랑받는 삼청동·가회동 일대 북촌의 상권 변화를 짚어보려고 해요. 브랜드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플래그십 스토어가 이곳에 자리를 잡는 이유는 무엇인지도요.

너른 차경으로 한국의 골목 품다

지난 1일 라이프 에티켓 브랜드 ‘희녹’이 북촌에 첫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어요. 안국역에서 내려 서울 공예박물관을 왼편에 두고 골목을 쭉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나오는 작은 가게죠. 희녹은 편백 수를 담은 패브릭 스프레이 등을 선보이는 국내 신생 브랜드에요. 주로 편집 매장과 온라인을 통해 선보이다가 처음으로 매장을 열었어요.

희녹 매장의 첫인상은 ‘비어있다’는 것이에요. 10㎡(3평) 남짓 작은 면적이지만, 길에 면한 출입문을 모두 창으로 만든 데다 공간 안에 들어서도 제품이 작품처럼 하나씩 놓여있어 한가한 느낌마저 들죠. 압권은 커다란 창으로 들어오는 골목의 풍경이에요. 나지막한 돌담길 사이로 기와가 조화를 이루는 멋진 차경은 왜 이곳을 브랜드의 첫 매장으로 삼았는지 짐작게 하죠. 박소희 희녹 대표는 “한국 브랜드로서 첫 매장을 의미 있는 곳에 내고 싶어 가장 한국적인 정취를 지닌 이 지역을 선택했다”며 “특히 외국인들이 많은 거리인 만큼 브랜드의 첫인상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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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제품을 보여주기보다 브랜드 정체성을 드러내는 데 중점을 뒀다. 사진 희녹

근처에는 또 다른 한국 화장품 브랜드 ‘탬버린즈’도 있어요. 지난해 3월 문을 연 4층 규모의 삼청 플래그십 스토어죠. 미술관과 박물관에 둘러싸인 입지답게, 제품뿐 아니라 다양한 오브제들이 전시돼 있어 눈길을 끌어요. 또 다른 한국의 향 브랜드 ‘논픽션’도 지난 2022년 국립현대미술관 앞에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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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뷰티 브랜드 탬버린즈가 삼청동에 두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사진 탬버린즈

‘현지화’에 제격, 글로벌 브랜드도 선호

한국 브랜드만 삼청동에 몰리는 건 아니에요. 지난달 14일에는 아디다스 북촌 헤리티지 스토어가 문을 열었어요. 이른바 ‘가장 한국적인’ 아디다스 매장이에요. 쇼윈도의 마네킹은 노리개를 달고 있고, 출입문도 한지 바탕의 격자무늬 디자인으로 되어 있죠. 내부 천장에는 한지를 연상시키는 마감이, 곳곳에 조명이나 기물 역시 한국 전통 디자인에서 따 온 것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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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서울 종로구 북촌로에 새롭게 문을 연 아디다스 북촌 헤리티지 스토어 전경. 사진 아디다스 코리아

한국적 색을 입힌 제품도 눈에 띕니다. 한국의 전통춤인 탈춤을 기반으로 아디다스 인기 모델 ‘삼바’를 재해석한 ‘삼바 탈(SAMBA TAL)’ 스니커즈가 대표적이죠. 기와가 인상적인 북촌 거리를 새긴 티셔츠 등 북촌 매장에서만 판매하는 한정판도 있고요.

아디다스 맞은 편에 자리한 뉴발란스는 이보다 앞서 2021년 스니커즈 전문 북촌 직영점 ‘그레이 하우스’를 열었어요. 국내 유일 콘셉트 스토어로 뉴발란스의 다양한 시그너처 운동화가 한옥 처마 밑에 진열돼 있어요. 이밖에 지난해 문 연 영국 브랜드 ‘닥터마틴’(삼청점)에 이어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뉴에라’도 북촌 스토어 오픈을 준비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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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북촌로에 자리한 뉴발란스 북촌점 '그레이 하우스' 전경. 사진 뉴발란스

왜 이들이 속속 이 지역에 입성했나 싶지만 이유가 있답니다. 요즘 글로벌 브랜드의 매장 전략 중 필수적인 요소가 바로 ‘현지화(localizing)’이기 때문이죠. 과거에는 전 세계 어딜 가나 똑같은 매장 전략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지역마다 개성을 담은 매장으로 차별화하는 경향이 강해요. 삼청동 일대는 이런 ‘현지화’에 가장 적합한 동네고요.

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업체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에서 공간 기획을 담당하는 정원욱 부장도 최근 플래그십 공간 기획의 특징 중 하나로 ‘현지화’를 꼽아요. 정 부장은 “구찌가 한남동에 한국의 전통 주택을 의미하는 ‘구찌 가옥’을 낸 것처럼 고유한 지역성과 문화를 담아 특별한 매장 경험을 선사하는 대표 매장에 대한 요구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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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준비 중인 뉴에라 북촌 스토어 전경. 한국적 디자인 요소가 돋보인다. 유지연 기자

외국인 몰리는 역사적 장소

지금까지 플래그십 스토어는 많은 유동인구를 등에 업고 대규모 매장에서 높은 매출을 끌어내는 역할을 했어요. 하지만 온라인으로 물건을 충분히 파는 요즘에는 오프라인 매장이 판매보다 쇼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죠. 많은 물건을 가져다 놓을 필요가 없으니 굳이 대형이 아니어도 되고, 반드시 높은 매출을 올려야 하는 것도 아니니 유동인구에 대한 요구도 줄었어요. 작지만 뾰족하게 브랜드의 정체성을 보여줄 수 있는 공간적 힘이 있는 곳. 바로 삼청동과 북촌, 서촌 같은 강북의 골목 상권이 뜬 이유에요.

또한 문화적 유산이 풍부한 지역은 브랜드의 유산(헤리티지)을 강조하는 최근 브랜딩 경향과도 맞물려요. 실제로 삼청동 일대에 들어선 브랜드 매장은 유독 ‘역사’를 강조해요. 아디다스는 매장 이름에 ‘헤리티지(유산)’라는 단어를 넣었고, 뉴발란스도 브랜드의 역사를 전시하는 형태로 매장을 구성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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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와 내부 기물, 집기 등에도 한국의 전통 요소가 반영돼 있다. 사진 아디다스코리아

게다가 외국인 유동인구의 숫자도 무시 못 할 요인입니다. 이 지역은 서울 시내에서도 관광객이 많은 지역으로, 과거보다 그 수가 늘고 있어요. 서울열린데이터광장의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9년 5월 대비, 올해 5월 지하철 3호선 안국역의 월간 하차 인원이 77만 1969명에서 89만 6701명으로 상당수 늘었어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가 더 있죠. 바로 최근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의 여행 추세인 ‘데일리케이션(daily+vacation)’입니다. 일상과 여행을 합한 신조어로 한국인의 일상을 경험하려는 젊은 외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다는 거죠. 이는 경복궁이나 한옥마을 등 목적지 위주의 관광이 아니라, 골목 사이 작은 가게를 체험하려는 수요가 높아졌다는 의미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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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공사는 지난 6월 한국 방문 외국인 관광객이 142만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47.5% 늘었다고 밝혔다. 사진 연합뉴스

새롭게 북촌 상권의 문을 두드리는 브랜드들이 향·라이프스타일·스니커즈 등 젊은 층이 즐기는 품목과 브랜드로 모이고 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해요. 남신구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리테일 임차자문팀 이사는 “북촌 일대는 젊은 내국인 방문과 함께 외국인 관광객까지 더해져 유동인구가 충분하면서 동시에 고즈넉하고 소모적이지 않은 느낌을 줄 수 있는 상권”이라고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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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향 브랜드 논픽션은 지난 2022년 삼청동에 네 번째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사진 논픽션

‘플래그십’이 갖춰야 할 품격

요즘 팝업·플래그십·쇼룸·일반 매장에 이르기까지 브랜드의 오프라인 채널이 다양해졌어요. 모두 소비자와 만나는 접점이지만, 매장 성격에 따라 그 소통 방식이 달라요. 이 중 플래그십 스토어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둬요. 얼마나 브랜드 이미지를 잘 표현할 수 있는지, 얼마나 브랜드의 품격을 올려줄 수 있는지가 중요하죠.

브랜드의 정수를 담는 오프라인 플래그십의 장소가 삼청동이나 북촌만 적합한 건 아닐 거에요. 브랜드가 사람이라면 스타일은 물론 말투부터 걸음걸이도 모두 다르니까요. 작은 상권이라도 자기다움을 녹일 수 있다면 선택할법해요. 이런 개성 있는 브랜드 덕분에 도시의 골목이 한층 재밌어지는 것은 물론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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