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피아노 선율로 썼다…반가사유상에 바치는 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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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전용극장 ‘용’에서 열린 ‘초월’ 공연에서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양방언이 연주하고 있다. [사진 국립박물관문화재단]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의 ‘사유의 방’은 국보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 두 점만을 위한 전용 공간이다. 2021년 11월 개관 이래 180여만명이 ‘불멍’(불상을 멍하게 바라봄)을 즐기면서 박물관 대표 유물로 사랑받고 있다.

재일교포 출신의 양방언(64) 음악감독 역시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받았다. 작곡할 땐 일본 나가노현의 해발 1000m 휴양지 가루이자와에 은둔하는 그는 이 감동을 사색적인 뉴에이지 선율로 빚어냈다. 지난해 세 곡을 발표한 데 이어 올해 세 곡을 추가로 썼다. 새로운 형식의 콘서트형 음악극도 만들었다. 지난 7일과 8일 박물관 전용극장 ‘용’에서 초연한 ‘초월’(연출 민새롬)이다.

박물관 유물을 테마로 한 공연은 국내에서 이례적인 시도다. 양방언은 애초에 사유의 방에서 공연을 희망했지만 여의치 않자 이를 테마로 한 연작 작곡에 매달렸고 지난해 맛보기 콘서트에 이어 올해 정식으로 선보였다. 6일 리허설 현장에서 만난 그는 “지난해 세 곡이 감동을 고백하는 느낌이었다면 올해는 그걸 넘어서 ‘초월’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했다.

특히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크리스천스’ 등 화제작을 선보인 민새롬(45) 연출과 협업하면서 이 같은 테마가 선명해졌다. 민 연출은 “양방언 음악을 워낙 좋아한다. 동서양의 경계,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양방언의 음악이 반가사유상이라는 유물과 통하는 게 많다”고 했다. 이를 전달하기 위해 양방언의 기존 곡들 가운데 ‘차마고도’ ‘정선아리랑’ 등을 연주 리스트에 추가해 유기적이면서 웅장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7일 관람한 공연은 음악·영상·조명·무대디자인이 어우러진 가운데 그를 포함한 7명의 연주자가 80분간 총 15곡을 중단 없이 들려줬다. 영상엔 반가사유상 이미지가 직접 등장하는 대신 사유의 방을 암시하는 황토벽과 금속봉 영상이 너울댔다. 옵아트(기하학적 형태를 강조하는 시각예술) 풍의 그래픽디자인이 몽환적인 우주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했다.

기존 양방언 콘서트와 달리 직접 진행발언 없이 클래식 음악연주회처럼 진행된 점도 이채롭다. 대신에 녹음된 그의 어눌한 한국어가 흘러나와 “오늘은 사유의 모양과 색을, 그 정서와 생명력을, 마음으로 천천히 알아차리는 감각의 여정이 되셨으면 한다” 등의 메시지를 전했다. 음악을 통해 반가사유상을 되새긴다는 콘셉트가 다소 모호할 수 있는데 이 같은 내레이션을 통해 보완했다. 양방언은 “내가 꼭 전하고 싶은 말이라 창피함을 무릅쓰고 직접 녹음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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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국보 금동반가사유상이 전시된 ‘사유의 방’에서 포즈를 취한 양방언(오른쪽)과 민새롬 연출. [사진 국립박물관문화재단]

1960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난 양방언은 아버지가 제주 출신, 어머니는 신의주 출신이다. 북한 국적을 지닌 채 일본에서 성장기를 보냈고, 서른살 넘어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1980년대 일본 록가수 하마다 쇼고의 키보드세션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해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을 넘나들며 작곡가·연주가·편곡가·프로듀서 등으로 왕성하게 활동해왔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공식 주제곡 ‘프런티어’로 국내외에서 명성을 얻었고,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음악감독 등을 지냈다.

그는 일본 고교 재학 시절 고류지(廣隆寺) 목조미륵반가사유상을 본 적 있다고 한다. 일본 국보1호인 이 불상은 623년 무렵 신라에서 제작해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어렸을 땐 잘 몰랐지만, 한국에 와서 우리 반가사유상을 보니 감동적이고, 둘 사이에 비슷한 듯 다른 분위기가 놀라웠다”고 했다.

“동양의 공통적인 정서가 표현되길 바랐어요. 앞으로도 반가사유상과 사유의 방을 테마로 한 곡을 계속 써서 저의 인생 작업(life work)으로 삼을 생각입니다.”(양방언)

“해외에선 도시의 오래된 유적과 현대음악·전시를 접목시키는 게 활발한데, 이 공연을 통해 나이 들어가는 도시(서울)에 새로운 활력이 되길 바랍니다.”(민새롬)

공연을 관람한 이현재 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장은 “유물을 매개로 한 공연 시도가 신선했다. 이걸 보니 다시 사유의 방에 들러보고 싶어졌다”고 말했다. 공연 후 앙코르가 없는 등 관객과 소통 없이 진행되는 무대 형식에 다소 혼란스러워하는 관객도 보였다. 극장을 운영하는 국립박물관문화재단의 안상민 공연예술팀장은 “관객 반응을 토대로 극장 용의 연례 레퍼터리로 정착시키도록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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